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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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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해리의 소동>2019-08-16
Review 8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Their Unexpected Films 2019.8.16(금) - 9.1(일)

 

 

히치콕, 웃음의 서스펜스를 창조하다

- 히치콕 스릴러의 코믹한 변주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1.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이 글에서 소개할 1955년 작 <해리의 소동>의 앞뒤로 그의 전성기가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1954년에 <다이얼 M을 돌려라><이창>이 개봉되었고, 1956년에 <나는 비밀을 안다>의 리메이크와 <누명 쓴 사나이>, 1958<현기증>, 1959<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960<사이코>, 1963<>로 이어지는 아찔한 걸작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정말 거를 타선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해리의 소동>은 대체 무슨 영화인가? 걸러도 그만인 히치콕의 만만한 범작인가?

이 영화는 히치콕이 재미삼아, 기분전환도 할 겸해서 만든 영화로 알려져 있다. 예산을 많이 쓰지도 않았고, 스타가 출연하지도 않으며, 영화가 펼쳐지는 장소는 시골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 저예산 규모의 소품 같은 영화다.

 

 

    작품은 제목대로 흘러간다는 말은 미신인가 과학인가. 히치콕은 <해리의 소동>의 원제 ‘The Trouble With Harry’처럼 제작 과정에서 여러 트러블을 겪어야 했다. 당대의 스타인 그레이스 켈리, 캐리 그랜트, 윌리엄 홀덴에게 캐스팅을 제의했지만 모두 무산되고 인지도가 높지 않은 중견 배우들과 신인 여자 배우로 캐스팅을 해야 했다. 버몬트의 단풍이 절정인 가을 풍경 속에서 촬영하려던 계획은 버몬트에 들이닥친 허리케인 때문에 무산되어 미술 스텝들은 스튜디오 내에 인공 나무와 단풍을 만들어야 했다. 후반 작업 때는 히치콕이 점찍은 음악감독이 스케줄상 같이 할 수 없게 되어 대타로 추천받은 음악감독과 작업해야 했다. 개봉 뒤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긴 했지만 미국 내 흥행도 지지부진했다.

 

2.

 

    <해리의 소동>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청년과 중년, 두 남녀 커플이 등장하는 로맨스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해리라는 남자의 시체가 장애물로 끼어드는 구조다. 그들은 다들 각자의 이유로 자신이 해리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시체를 파묻었다가 다시 꺼냈다가를 반복한다. 그들은 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를 지었다고 믿으며, 그 짓지도 않은 죄를 숨기려는 죄를 범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 여기에서 블랙코미디와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웃기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기엔 뭔가 찜찜하기도 하다.

 

    이 영화엔 히치콕의 모든 게 들어있다. 시체, 오인, 그것을 숨기려는 행위들, 그것을 들추려는 시도들... 그렇지만 영화 속엔 폭력이 전혀 없으며 그 모든 것들은 코미디로 귀결되고 있다. 히치콕의 스릴러에서 볼 수 있는 서스펜스가 긴장과 불안, 공포를 일으킨다면 <해리의 소동>에서는 히치콕이 그 서스펜스의 공식을 이용해서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마치 히치콕의 영화를 그 자신이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화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예를 들면 불법으로 사냥을 한 앨버트가 숨진 해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 자신이 실수로 죽였다고 믿고는 그를 숨기려는 장면이 그렇다. 조용한 산길에 인적이 드물 법도 한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온갖 동네 사람들이 다 지나간다. 앨버트는 그때마다 긴장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지는 시체를 발견하지만 구두만 훔쳐 신은 채로 가버린다. 지독한 근시인 동네 의사는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만 안경이 벗겨져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처럼 위기처럼 보이는 상황이 허탈하게 넘어가거나, 그냥 넘어갈 법한 상황이 갑자기 꼬이면서 다시 위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네 남녀는 시체를 다시 싱글맘 제니퍼의 집으로 들고 온다. 시체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제자리에 눕히기 위해, 그들은 시체를 청소하고 그가 입은 옷을 빨래한다. 그때 마을의 보안관이 들이닥친다. 이런저런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찰나에, 제니퍼의 어린 아들이 외친다. “왜 저 아저씨가 우리 집 욕조에 누워있어요?”

 

 

    이 네 남녀의 이야기로 히치콕을 무얼 전하려고 했을까. 그들은 친근하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양심쯤은 곱게 접어두는 사람들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시체를 둘러싼 헛소동을 통해서 그들을 놀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뭐가 됐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히치콕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서스펜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리고 히치콕은 <해리의 소동>에서 그의 영화들 중에서도 아주 유별난 서스펜스를 창조하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좋게 평가를 한다고 해도 <해리의 소동><이창>,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 같은 히치콕의 최고작들의 반열에 올려놓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무시해도 좋을 만한 영화인 것도 아니다. <해리의 소동>은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 속 모든 요소들을 코미디로 변주한 드문 사례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히치콕은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 중 하나로 이 영화를 꼽았다고 한다.

 

 

사족. <해리의 소동>은 영화감독 히치콕이 영화로 이룩한 것만큼이나 영화음악으로 그에 맞먹는 것을 해낸, 영화음악계의 거장 버나드 허만이 히치콕과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이다. 둘 다 한 성격(?)하는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주위에선 둘이 잘 안 맞을 거라고 했지만 둘은 의외로 잘 맞았고, 1964년 작 <마니>까지 일곱 편의 영화를 같이 작업했다. 또 이 영화는 배우 셜리 매클레인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정다감한 것처럼 보여도 놀랍도록 차갑고 영악한 면이 있는 싱글맘 제니퍼의 캐릭터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매클레인이 연기한 엘리베이터 걸 프랜 큐벨릭이란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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