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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언니 유정> 혹은, 엄마 유정2024-12-23
영화 <언니 유정> 스틸컷 이미지



<언니 유정> 혹은, 엄마 유정


김경욱 (영화평론가)


엄마 또는 아빠의 여자 형제는 이모 또는 고모로 불린다. 요즘 세태와는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어미 ‘모(母)’자가 들어간 건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언니’라는 호칭에는 ‘모’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생에게 언니는 어떤 존재일까? 정해일 감독이 연출한 <언니 유정>의 유정(박예영)이 던지게 된 질문이다.

유정에게는 나이가 많이 차이 나는 여동생 기정(이하은)이 있다. 자매의 엄마는 기정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고, 고모가 간간이 들러 반찬을 챙겨주며 돌봐주는 상태다. 유정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기정은 속 썩이는 일 없이 공부 잘하는 착한 고3 학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은 박 형사로부터 기정이 미숙아를 낳고 학교 화장실에 버려서 죽게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큰 충격에 빠진다. 오랜 야간 근무로 생리 불순까지 겪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 탓인지 유정은 기정의 임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데다 기정이 전혀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정은 기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기정에게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엄마 역할을 해주었어야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 <언니 유정> 스틸컷 2, 3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유정이 기정의 고통을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기정의 절친 희진(김이경)은 기정이 하고 싶었던 질문을 대신해서 묻는다. “언니는 기정이 좋아하는 게 뭔지, 힘들어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유정이 간호를 맡게 된 임신중독증에 걸린 산모 수진은 “아이가 엄마 없이 자라느니 차라리 잘못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에 유정은 새삼 기정이 엄마 얼굴에 대한 기억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수진의 아이는 태어나지 못한 채 사산되는데, 이 사건이 기정에게 걸린 ‘유기치사 아동학대 특례법’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기정의 아기를 유기할 때 옆에서 도왔던 희진의 진술에 따르면, 아기는 죽은 채 태어났다.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산모의 신체 일부로 분류하기 때문에 ‘유기치사 아동학대 특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기정은 석방되고, 자매는 서로 얼싸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영화 <언니 유정> 스틸컷 이미지 4


영화는 기정이 어떻게 임신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임신 상태를 방치하고 사산에 이르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유정이 기정의 언니이자 엄마의 자리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면 바람직한 선택인 것 같다(그런데 기정의 임신에 관련된 남자뿐만 아니라 고모는 등장하는데 유정 자매의 아빠에 대한 언급도 없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수진의 남편도 보이지 않는다). 기정의 임신을 둘러싼 서사가 주제를 흐트러트릴 염려가 있어 생략하다 보니 기정이라는 인물의 비중도 줄어들게 되면서 다소 부자연스럽게 전개된 대목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언니와 엄마에 대한 기정의 감정을 알게 되는 장면은 세 번에 걸친 플래시백을 통해서이다. 예전에 기정과 희진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모두 기정의 플래시백이어야 할 것 같은데 희정의 플래시백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 기정이 진술을 하게 되면 임신에 관련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기정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 따라서 사건에 관한 전모는 모두 다른 인물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관객은 기정이 임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왜 침묵하는지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정이 언니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아이를 낳아 키우려던 생각이었을까? 아이에게 모성애 같은 어떤 감정이 있었는데 죽어서 태어나자 큰 충격을 받고 화장실에 버렸던 것일까?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유정의 깨달음을 위해 고등학생 임신과 사산아 유기라는 설정이 적합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또 기정을 무죄로 하는 실마리를 극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수진의 이야기가 너무 쉽게 소비된 건 아닌가 싶다. 수진이 아이를 잃은 다음, 카메라는 수진의 고통을 비추는 대신 그녀에게 사산아 처리를 알리는 유정에게 집중하면서 기정의 무죄 근거를 찾아내도록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정과 기정 그리고 희진이 함께 모여 행복한 표정으로 미역국에 밥을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기정이 겪은 사건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들처럼 수진도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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