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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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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으로의 여행 <사랑과 희망의 거리>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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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의 거리> : 죽은 아버지 죽이기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가난은 소년 마사오에게 돌아온 비둘기를 되팔도록 한다. 교코가 마사오를 돕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소년의 비도덕적 행동이나 이에 대한 오빠의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교코의 아버지는 마사오를 채용할 수 있는 지위를 가졌으면서도, 왜 자식들이 가난한 소년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마치 자신과 무관한 일인 것처럼 물러서 있는가. 소년의 가정을 책임져야할 아버지는 부재하고, 소년을 구재할 수 있을 회사의 책임자인 아버지는 부재하는 것처럼 존재한다.
아버지와 책임의 문제는 전후 일본사회의 정치적 쟁점이었던 천황을 둘러싼 전쟁 책임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절대천황제 아래 천황은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명령자였으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러나 패전 후 천황은 처형되거나 폐위되지 않는다. 대신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한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록 이전의 권력을 빼앗긴 상징적 형태로 그 자리를 보전한다. 천황의 전쟁 책임은 항전 결정과 지위 변화라는 불충분한 형태로 종결된 채, 일본 국민 개개인에게 떠넘겨진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1959)에서 책임져야할 아버지의 부재는 소년이 비도덕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만,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는 소년의 가난을 외면하고 싶기 때문에 소년의 비도덕적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의 아버지는 책임의 자리에서는 명백히 부재하지만, 권력의 자리에서는 은밀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회사의 중역으로 소개되는 아버지는 후경에서 잠깐 얼굴을 비췄다 사라질 뿐이고, 딸의 투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권위 대신 온화함만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오시마 나기사는 아버지의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도록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자식들의 대화에서 아버지는 분명 부재중이지만 자식들은 언제나 집안의 계단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시선 아래 놓여 있다. 교코가 소년을 돕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의 결정으로 보이는 까닭은 아버지가 이처럼 은밀하게만 권위를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과 희망의 거리>에서 오시마 나기사가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재현이다. 이는 1954년 쇼치쿠에 입사하여 영화 경력을 시작한 오시마 나기사에게 오즈 야스지로라는 아버지 세대의 일본영화를 공격하는 것과 연결된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에서 재현되는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적 얼굴은 류 치슈로 대변되는 오즈 야스지로 세계의 아버지와 적잖이 닮아있다. 그러나 오즈의 온화한 아버지는 회사 중역의 자리에서 딸의 결혼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게다가 그는 종종 전쟁의 기억을 지나가버린 추억처럼 회상하기도 한다.
오시마는 오즈의 세계와 비둘기를 되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한 소년 마사오를 만나도록 함으로써, 영화가 딸의 결혼이 아니라 낯선 소년의 가난을 두고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는 외면하기 힘든 현실의 문제 앞에서 아버지가 여전히 오즈의 세계처럼 재현될 때, 그래서 교코의 고민이 단지 철없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질 때, 소년소녀들이 마주치는 절망과 무력감을 보여주고 있다.
책임지는 아버지가 없는 세계에서 소년소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소년은 비둘기의 집을 파괴하고 빈곤 계급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교코는 소년을 도울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교코가 마사오를 돕고 싶다면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교코는 아버지 대신 비둘기를 죽인다. 그러나 이미 비둘기가 돌아갈 집을 파괴한 소년에게 비둘기를 죽이는 부르주아 계급의 충격적 결정은 무능한 스스로에 대한 비관적 정념의 분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오시마가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르주아 계층의 무능한 휴머니티와 비관적 인식은 오시마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부적 비판자로서의 그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1950년대 좌파 학생 운동에 깊이 가담했던 그가 겪었던 운동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 이듬해에 만들어진 <청춘 잔혹 이야기>에서 운동의 실패 이후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실패할 꿈도 없다. 같은 해, <일본의 밤과 안개>는 좌파 운동이 겪은 좌절의 원인을 좌파 내부의 갈등에서 찾고 있다.
한편으로 아버지의 재현을 비판하는 문제에서도 오시마가 마주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1959년 오시마 나기사가 쇼치쿠라는 보수적 전통의 스튜디오에서 데뷔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스튜디오 시스템이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연출자들이 얻은 기회는 영화산업의 위기를 타개할 방안의 하나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시마 나기사를 필두로 한 새로운 세대의 일본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죽여야 할 아버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일본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사실상 스스로 문을 열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쇼치쿠 누벨바그로 불리던 그의 세대가 프랑스 누벨바그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기도 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아버지를 향한 공격이 실패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재현을 향한 공격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는 교코가 결코 아버지를 죽일 수 없음을 알고 있던, 실패가 예정된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를 달리 말하면, 오시마 나기사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비둘기를 향한 총질일 뿐일지라도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가 단지 체념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하는 것은 오시마 나기사가 계속되는 실패와 비관에도 불구하고 공격과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정치가 전면화된 <일본의 밤과 안개>가 쇼치쿠에 의해 조기 종영된 직후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온 오시마 나기사는 1960년대 내내 영화를 통해 일본의 국가주의와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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