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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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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미국 작가들 <굿타임>2020-09-25
Review 젊은 미국 작가들 2020.9.29.(화)~10.11.(일)

 

 

<굿 타임> : 분산과 집중의 전략

강원우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서로를 아끼는 니카스 형제는 은행을 턴다. 돈을 챙기고 알람을 울리지 않은 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계획은 성공할 것 같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동생 닉(베니 샤프디)은 잡히고 형 코니(로버트 패티슨)는 동생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보석금은 부족하고 구출 시도는 꼬이기만 한다. 최악으로만 나아가는 <굿타임>(2017)의 이야기는 많은 관객들이 얘기하듯 하룻밤의 끔찍한 꿈, 또는 영화의 중요 소재이기도 한 LSD가 만들어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환상 같다.

여기서 LSD란 소재를 위해 영화가 무엇을 하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우선 <굿 타임>은 독특한 색()을 쓴다. 니카스 형제는 진한 분홍색 가루를 뒤집어쓰고 경찰에게서 도망치며, 코니가 몸을 숨기기 위해 방문한 조손 가정은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없는 빛깔의 조명을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LSD 하면 떠오르는 색을 보여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든다.

두 번째로 LSD 판매상 레이를 등장시킨다. 그는 코니의 닉 탈출 계획을 꼬아버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엉뚱한 타이밍에 회상을 하는 등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속 비튼다. 그는 LSD 같은 사람이다.

 

   소위 약 한 듯한이야기, 어디로 튈지 모르고 이상한 색을 사용해서 관객의 정신을 분산시키는 이야기가 <굿타임>의 매력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이 영화의 매력의 삼분의 일 정도 밖에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영화가 끊임없이 자신의 독특한 점을 강조하며 정신 사납게 군다면, 처음엔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흥미를 유지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는 틈틈이 자신이 어떤 이야기이며, 주인공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관객에게 상기시켜줘야 한다. 즉 분산과 대비되는 집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굿타임>은 집중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두 가지 예시만 들어보자. 우선 주인공 코니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생을 되찾는다는 목적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두 번째로 샤프디 형제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 확대하는 카메라가 있다. 영화는 긴 확대를 통해 정신과 창문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숏과, 코니가 동생이 갇힌 엘름허스트 병원을 찾을 때 병원이 있는 전철역을 노선도 상에서 확대하는 숏을 가지고 있다. <굿타임>은 동생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를 축으로 삼아 관객의 정신을 분산시키며, 카메라로 직접적인 집중을 유발한다.

따라서 코니에게 이 영화의 산만한 색은 벗어나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그는 분홍 가루를 씻어내기 위해 피자집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조손 가정의 집에서 머리를 탈색한다. 하지만 <굿타임>은 분산의 영화이기도 하기에 그는 색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탈색(脫色), 색에서 벗어난 그의 머리칼은 무색이 되긴 커녕 영화 전반의 색과 어울리는 샛노란 색이 된다. 영화는 그렇게 분산과 집중 사이를 오간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약상 레이는 <굿타임>의 분산적인 면을, 코니는 집중적인 면을 대표하며, 우리는 영화 내내 이 둘의 호흡을 본다. 하지만 정신없던 밤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버렸다. 영화가 끝나야하니 양립할 수 없던 두 남자는 결판을 지어야 한다. 레이는 밤을 새 초췌한 코니에게 마주한 시간이 얼만지 묻는다(“So how much time are you facing?”). 코니는 과연 동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이 결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묘사하지 않겠다. 단지 두 남자 중 누구도 서로에게 이기지 못했다고만 말해두자. 그리고 영화는 첫 신과 같이 정신과에서 치료받는 닉의 모습으로 끝난다. 일종의 수미상관이면서, 동시에 이 처음과 끝은 영화의 주된 이야기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관절 왜 영화는 그 고생을 하며 이야기를 만든 것인가. 간단한 답은 어쨌든 관객에게 분산과 집중을 통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그것으로 족하단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굿타임>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영화의 첫 신과 마지막 신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부수적인 것은 쳐내도 된다.

 

   난 여기서 <굿타임>의 매력의 나머지 삼분의 일을 말하고자 한다. 이 영화엔 분산과 집중의 이야기를 위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사람들이 있다. 코니의 여자친구는 코니에게 자금책으로 쓰이다가 버려지고, 놀이공원 경비원은 코니와 레이에 의해 모함 당한다. 이런 식으로 조연을 다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위해서 인물은 사용되어야 한다. 주연들 외에 조연들은 이 과정에서 특히나 더 소모적이다.

하지만 <굿타임>에선 주연이라고 여겨지는 인물들조차도 이용당한다. 첫 번째 인물로 코니가 조손 가정에서 만난 흑인 소녀 크리스탈(탈리아 웹스터)이다. 관객은 그녀와 코니가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녀가 이야기에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코니에게 이용당하기만 한다. 차를 빌려 달래서 빌려주고, 햄버거 좀 사와래서 사오고, 잠시 기다리래서 기다리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코니는 붙잡힌 그녀를 보고 모른 척 한다. 그리고 그녀는 코니를 보고도 아무 말도 없이 경찰차에 들어간다.

두 번째 인물은, 예상했겠지만 닉이다. 그는 영화의 이야기 진행을 위해 목적으로서 이용당했을 뿐, 극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영화 처음과 끝 신에 동떨어져 정신과에서 치료받고 있다. 그가 이야기에 섞이지 못했듯이, 마지막 신의 집단 치료에서의 그는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 정신과 신들이 영화 본편과 이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굿타임>은 영화 속 세상에 레이와 코니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관객은 크리스탈과 닉을 본다. 샤프디 형제 영화의 특징이 수다스런 인물들이라 해도, 이 두 사람은 말이 없다. 경찰차에 들어가기 전 크리스탈의 얼굴과, 마지막 신에서 치료를 받는 닉의 얼굴은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침묵하는 얼굴들은 강렬하다. 그렇다면 <굿타임>은 분산과 집중, 그리고 소외를 눈여겨 봐야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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