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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영화의 새로운 시대 <기묘한 이야기들>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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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변주되는 모험담: <기묘한 이야기들>
홍은미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마리아노 이나스는 <기묘한 이야기들>(2008)과 <라 플로르>(2018) 두 편만으로 픽션의 영토에 진귀한 풍경을 새겨 넣었다. 특히 1970년대 B급 영화와 스파이 영화 등 영화사에 굵직한 궤적을 남긴 장르 영화들의 쾌감을 최고로 끌어내고, 사랑해 마지않는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1936)를 무성영화로 리메이크하며 무한 생성 가능한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낸 <라 플로르>는, 영화사를 새롭게 이야기 하며 영화사에 새로운 궤적을 남긴 21세기 최고 영화 중 한 편이다. 그리고 보이는 이야기를 끝없이 펼치는 영화계의 셰에라자드와도 같은 마리아노 이나스는 21세기에 등장한 특별한 감독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이다. 다만 이나스의 독보적인 면모를 독창성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나스의 영화적 재능과 자질은 독특한 스타일과 형식에서 확인되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스토리텔링 기술을 전용하고 변용하며 무한 변주 가능한 이야기의 세계를 활성화 시키는 비상한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어떤 면에서 <라 플로르>의 예행연습처럼 보이는 영화다. X(마리아노 이나스), Z(월터 야콥), H(아구스틴 멘디라하르주) 세 인물의 개별 이야기를 병렬하는 중에도,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들로 잔가지를 뻗어가는 이 영화의 서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이야기에 생성의 기운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4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동안 영화 속에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의 전무후무한 여정이 이어지는데, 18개의 챕터로 구성된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르헨티나 팜파스(‘평평한 면’이라는 뜻의 남아메리카 초원 지대)를 가로지르고, 살라도 강을 따라 흐르며 급기야 대륙을 건너 아프리카에도 이르지만, 영화의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우리는 마지막까지 영화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일견 서부극의 장소를 연상시키는 황량한 들판 사이에 놓인 길에서 시작해 각종 대결과 결투를 벌이고, 일상에서 괴이한 모험으로 훌쩍 넘어들어 범죄영화와 추적극의 형식을 따르는 듯하다가 별안간 멜로드라마를 펼치기도 하는 다종의 장르 영화, 또는 비상한 로드무비를 간단히 정리하고 조망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러니 지금은 우선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아르헨티나의 단단한 땅 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로 보이는 이야기를 활성화 시키고 또는 역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들의 생생한 모험이자, 무한 변주 가능한 스토리텔링의 세계를 현시하는 풍경이라고. 그렇다면 이야기들의 생생한 모험과 스토리텔링의 변주는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인가.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교접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 여기서 우선 ‘기묘한 이야기들’을 아주 단순하게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X와 Z, 그리고 H의 이야기는 교차되는 지점은 없지만 공유하는 장르와 모티프가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대결과 추적으로 이뤄진 미스터리 영화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X는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해 남아있는 예전의 사건파일과 신문기사들로 사건을 추적해 나가고, Z는 새로 부임한 협회의 전임자의 전사를 추적하며, H는 도시 개발을 논하는 사교 모임에서 살라도 강의 수로 개발 가능성에 대해 논쟁이 붙자 그 가능성을 증명하려는 측에 고용되어 과거 수로 건설을 시도했던 업체에서 남긴 초석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도 든다. 세 이야기를 그냥 개별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나스는 이야기의 내용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이야기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과 서사구조에 관심이 있다. 단순하게는 세 이야기가 공유하는 서사 구조, 그러니까 사건의 발생과 추적과 상황의 전환점을 맞는 국면을 서사 안에 배치시키는 보편적인 서사구조로 병렬되는 이야기에 응집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를 체험하게 만드는 세부 방식이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시각으로도 보고 청각으로도 보는 이야기들이다. 영화 내도록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화면 안에서는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확히 시각적인 이미지로 구현하고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양상에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이는 이야기를 정확히 일치시키는 이나스의 스토리텔링 기술에 대한 놀라움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이미지와 청각이미지를 과포화 상태로 만들어 우리의 감각을 간혹 몽롱하게 만들고 어떨 땐 감정의 황홀경으로 이끄는 과용된 스토리텔링 기술의 이상한 매혹이다. 이 놀라움과 이상한 매혹은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묘한 이야기들>의 주된 동력이 되어 우리를 각종 결투의 장과, 비애와 사랑이 교차하는 감정의 풍경들로, 그리고 팜파스의 대지와 살라도 강과 일상과 이야기의 모험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라 플로르>에서 더 장대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이야기의 영토에 전무후무한 모험의 풍경을 새긴 이나스의 소박하고도 위대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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