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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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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되면 떨어질 단풍잎 <정말 먼 곳>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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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되면 떨어질 단풍잎 :<정말 먼 곳>

 

구형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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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우(강길우 분)와 현민(홍경 분)은 연인사이다. 진우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중만(기주봉 분)의 목장에서 일하며 조카인 설(김시하 분)을 딸처럼 키우고, 중만의 딸 문경(기도영 분), 치매에 걸린 중만의 어머니 명순(최금순 분)과 함께 지내고 있다. 초반부 시인인 현민은 진우를 만나러 목장에 방문하고, 마을 성당에서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진우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진우의 쌍둥이 동생이자 설의 엄마인 은영(이상희 분)이 설을 데려가기 위해 목장에 오면서 7명의 인물들이 목장에서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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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만 설명하면 이 영화의 인물구성과 관계가 다소 복잡하고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삼촌을 엄마라 부르는 조카와 그렇게 엄마가 된 성소수자 삼촌, 그 삼촌의 연인, 그리고 그나마 보편적 가족의 외양을 갖춘 듯해도 되레 이들 사이에선 가장 어정쩡한 진짜 엄마가 있다. 또 한편엔 치매에 걸린 조모와 홀아버지, 그리고 똑같이 짝이 없는 손녀딸이 함께하고 있다. 요컨대 인물들의 모든 관계 속엔 어떤 낯섦과 난감함, 껄끄러움과 데면데면함이 조금씩 희석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편성으로 부터 조금, 혹은 많이 떨어져있는 사람들의 어색하고 난데없는 동거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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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먼 곳>은 이 5명 혹은 6, 7명의 인물들이 좌식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그들을 마치 일일드라마 속 가족처럼 보여준다. 모든 인물들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도록 멀찍이 떨어진 카메라는 둘러앉은 인물들에게 모종의 기시감이 스민 가족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찌개를 끓여 나눠먹고, 유사-할머니는 유사-손녀에게 반찬을 먹여주며, 유사-이모는 유사-조카의 머리를 묶어준다. 그 외에도 명순은 은영에게 식혜 끓이는 법에 대해 설명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문경은 진우에게 찐옥수수를 가져다 주기도 하며, 문경과 명순, 설이가 함께 대형 고무대야에서 목욕을 하기도 한다.

   봉건적 가족공동체의 외양 속에 그와 대척점을 지닌 인물들 각각의 면면. 그리고 그 괴리를 품은 아이러니가 여기 있다. 이 중 몇몇은 겉보기에 끈끈한 가족 같지만, 가족이 되기엔 해결 불가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실제 가족이지만 정상적인 가족이 되기엔 화해 불가한 딜레마에 처해있기도 하다. 여기서 누가 가족이고 누가 아닌가. 만약 나눌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며, 어떻게 근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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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이 괴리를 가장 직접적이고 괴롭게 받아들이는 이는 진우다. 그는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엄마이자 아빠지만 실제론 삼촌이고, 사람들의 편견을 피해 조용하고 먼 곳으로 떠나온 이방인이자 노동자다. 그런데 이 복합적 정체성이 우발적으로 커밍아웃 되면서 고즈넉하고도 친절했던 마을은 진우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환경 속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정말 먼 곳>이 이런 인물관계를 통해 퀴어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현대 가족의 의미를 재고하면서 전통적 가족공동체의 분열을 드러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소수자가 부모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사회적 의제가 진우의 서사와 결부되어 있긴 하지만, 영화는 그런 정치적 쟁점을 극화하여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절제하는 쪽을 택한다. 영화는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를 강조하기보다 딸이자 조카인 설이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진우의 심리적 절망과 불안을 묘사하는데 훨씬 집중한다.

   무수한 퀴어 멜로물이 멜로드라마적 기류를 형성하다가도, 인물이 주변의 이성애자 커뮤니티에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지를 딜레마로 삼으며 사회적 의제를 멜로드라마에 결부시키곤 했던 것과 달리, <정말 먼 곳>의 진우는 자신이 이성애자들에게 수용 될 수 있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애당초 다수자들의 박해와 멸시에 무심해 보이는 진우는 모닥불 앞에서 학교 다닐 때 지긋지긋했다고 나직이 말할 뿐이다. 다만 문제없이 부모 역할을 해왔던 그가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딸이나 다름없는 설이를 잃어야하는 것이 못내 괴로울 따름이다. 요컨대 전자의 영화들이 성소수자와 다수자의 사회적 격차 사이에서 해소가능성의 탐색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정말 먼 곳>은 그 격차의 해소보다 그들이 이미 해내고 있는 사회적 일원으로서, 부모로서, 노동자로서의 역량과 현존에 더 집중한다. 이성애자가 그들을 받아들이고 말고를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은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며, 동료이기 때문이다.

   김소희 평론가는 근래의 한국영화들 속에서 이성애적 멜로가 실종되고 그 자리를 빠르게 퀴어 멜로가 대체하고있다며, “퀴어 남성과 다가올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다른 세대의 아이들을 품어내려 한다.”고 지적한다(씨네211298, ‘<정말 먼 곳>의 거리두기가 의미하는 것’). 이는 최근 한국영화에서 이후 세대에 속한 아이 인물들이 성소수자와 맺는 관계의 다양한 양태들이 모종의 조류를 이루고 있음을 짚어낸 것이고, 확실히 <정말 먼 곳>도 그 경향을 공유하고 있는 영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 먼 곳>은 장르규범 속에 퀴어 코드를 은유적으로 기입하는 동시대 한국영화들과 달리 성소수자인 인물을 다루면서도, 정치적 의제의 강렬한 파토스 속에 서사가 휘발되지 않도록 인물을 세밀하게 세공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이미 충분히 훌륭한 엄마-삼촌이자 누군가의 연인이며, 성실한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고, 나아가 그의 고뇌를 온전하게 공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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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끝마치기 전에 앞선 내용과 관련해 <정말 먼 곳>이 만들어 낸 특별한 감흥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박근영 감독은 <정말 먼 곳>에 대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영화 속에서 거리감을 주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먼저 인물관계에 관한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결핍이나 입장 차이를 가진 인물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여러 상대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얽히고설키며 빚어내는 거리감이 의심의 여지없이 이 영화의 중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엔 또 다른 거리감들이 감각된다. 인물들의 위상차가 빚어내는 심리적 거리감 뿐 아니라 풍경과 인물 사이의 거리감, 풍경과 풍경 사이의 거리감, 그리고 그 외에도 이미지 내부에 수놓아진 무수한 거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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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영화는 이따금씩 화보와 같이 강렬한 매혹을 품고 있는 풍경들을 보여준다. 도입부의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의 풍경, 샛노랗게 물든 거대한 은행나무, 스위스를 연상케하는 굽은 강과 산등성이, 반짝이는 노을을 뒤로한 채 역광으로 그림자만 남은 진우와 현민의 모습, 안개 낀 숲에서 신비감을 풍기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양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이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회화나 사진작품을 보는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며, 일순간 서사의 지난한 현실로부터 관객을 떨어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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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이 그림 같은 장면들은 스스로 진귀한 정취를 품은 채 인물들의 세계가 거기 있음에도 마치 일순간 그로부터 소거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풍경 속에만 머물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정말 먼 곳>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미지에 단독적인 힘을 불어넣으며 인물들과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박근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시의 행간을 더듬듯, 장면과 장면의 사이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씨네211297, ‘잠시, 영화의 안식처에 머물다’) 이 아름다운 이미지와 인물들 사이엔 마치 시의 행간과 같은 골짜기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건장하고 투박한 외모의 사내가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이토록 자연스러운, 시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정말 먼 곳>이 만들어낸 소중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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