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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언더그라운드> : 더 낮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 카메라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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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 더 낮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 카메라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1.
김정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2021)는 그의 전작 <그림자들의 섬>(2016)과는 매우 다른 영화다. 아니 사실상 정 반대의 성취를 지향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의 30년 노동조합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들의 투쟁의 역사, 사측의 용의주도한 방해공작, 그 과정에서 세상을 스스로 등진 노동자, 그 슬픔을 딛고 기어이 이어가는 투쟁의 순간들이 하나의 드라마가 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림자들의 섬>은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명백한 주인공들이 있고, 주인공을 방해하는 ‘빌런’이 존재하며, 그 양자의 치열한 갈등과 투쟁을 통해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언더그라운드>를 봤을 때 첫 번째로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영화는 이야기, 서사, 드라마, 감동을 지향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런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들을 일부러 해체하고 있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부산 지하철 노동자들이 각각의 일터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담은 순간들이다. 또 하나는 그들 중 몇몇의 짧은 인터뷰와 그들의 일상을 담은 순간들이다. 그 장면들은 영화 속의 등장인물, 어떤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림자들의 섬>을 보고 나면 ‘김진숙’이라는 생생한 인물이 기억에 남게 된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를 보고 나면 노동자들은 그저 익명의 노동자로만 기억된다. 당연하다. 감독이 일부러 그들을 친숙하게 느낄 수 없도록 이런저런 방법으로 막아서기 때문이다. 노동의 순간을 담은 영상들 역시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그것은 숭고하거나 혹은 비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장면들은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미화, 혹은 폄하의 의도가 들어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반복되는 일일 뿐이다. 인터뷰 역시도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전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 수 있는 것에 그친다. 감독의 어머니뻘 되는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감독이 촬영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영화 대박나소.”라며 덕담을 건네는,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장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일종의 휴식 같은 순간으로만 잠깐 존재할 뿐이다. <그림자들의 섬>에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윤영배의 ‘위험한 세계’ 같은 노래가 나오며 그 노래들은 영화의 장면과 맞물려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언더그라운드>에는 어떤 음악도 사용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더그라운드>는 드라마틱한 영화, 감동적인 영화가 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럼 이쯤 돼서 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왜 김정근 감독은 영화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2.
영화의 시작은 부산공고 학생들이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한 사람씩 자리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사회 초년생이며 곧 노동자가 될 소년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게 될 일터를 방문해 견학을 하고, 곧 졸업을 하고, 그 일터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이 지하철 정비공장을 견학하는 장면처럼, 관객들도 영화를 보며 마치 지하철의 여러 일터들을 견학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된다. 노동의 현장을 직접 바라보는 것. <언더그라운드>의 첫 번째 목표는 이것이다. 노동자보다 노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인간적인 면모 대신, 노동의 지난한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림자들의 섬>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녀의 그 말이 <언더그라운드>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본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다. 지하철을 뜻하는 말이면서 비주류를 은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김정근 감독은 여러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지만 영화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정규직의 수는 적고 비정규직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김정근 감독은 어떤 해답을 준비해 두고 관객에게 그 해답을 향해 가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지하철 노동자들의 처지를 최대한 광범위하게 담아낸 다음, 관객 스스로 의문을 갖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좀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림자들의 섬>은 우리에게 감성을 요구하고, <언더그라운드>는 이성을 요구한다. 이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3.
<언더그라운드>를 보고 나면, 영화 속의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현실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벽은 공고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이며 예상 외로 보수적이다. 지하철 역사를 청소하는 미화원 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한다. 좁은 휴식 공간 속에서 다닥다닥 붙어 쪽잠을 자는 미화원 노동자들을 보면 누가 봐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도 말이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을 강조하는 민주노총의 교육 장면에서도 그것은 잘 드러난다. 다 같이 시위구호를 외쳐보는 연습을 해보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자들의 섬>과 <언더그라운드>를 나란히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결하며 투쟁하는데,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뭉치지 못하는가? 이 글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글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더 깊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비정규직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정규직에게도 현실이 녹록치는 않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인화와 자동화라는 시스템이다. 직장을 잃게 된 지하철 역사의 매표소 직원과 기관사는 무인화, 자동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에 좀 더 인간적인 배려를 할 수는 없었느냐고 항변한다. 점진적인 변화 말이다.
이 모든 지하철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나서 섣불리 어떤 답을 내기란 사실상 힘들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들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영화를 만든 김정근 감독도, 이 글을 쓴 나도 이 현실 앞에서 명쾌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이 난감하고 곤란한, 거대한 질문덩어리 같은 현실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언더그라운드>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촬영에 대한 언급을 하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대부분 김정근 감독이 직접 촬영한 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한 장면도 대충 찍었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촬영의 구도가 안정적이다. 특히 지하철 정비공장 같은 경우는 많은 노동자들이 오고 가며 지하철이라는 큰 차량의 분해와 조립, 정비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노동자의 작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촬영이나 편집에 있어서 산만해지거나 우왕좌왕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근 감독은 공장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노동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에서 최적의 구도를 잡아서 촬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동의 순간을 담아낸 감독의 노동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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