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영화평론가 비평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평론글로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 <언더그라운드> : 환승하는 카메라2021-08-26
-
<언더그라운드>: 환승하는 카메라
이동윤 (부산영화평론가협회)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2021)를 본 후 여러 장면과 소리들이 떠올랐다. 소실점을 향해 뻗치는 지하 공간의 아득함. 노동자들의 육체와 쇠와 쇠가 부딪히며 촉발되는 파열음. 청소노동자들의 낮잠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카메라와 부유하듯 흘러가는 시간. 산업현장에 투입되기 직전 학생들의 복합적인 감정….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중반의 카메라의 패닝이 등장하는 숏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22분이 지난 시점에서 부산 2호선 지하철이 수영역으로 진입한다. (2호선과 3호선의 환승역이기도 한 수영역은 2020년 기준, 2호선에서 승하차 인원이 네 번째로 많은 역이다) 기관사 칸에서 지하철이 나아가는 철로를 보여주던 화면은 중간 정도의 지점에서 승객 쪽으로 시선을 이동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승객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 연두색 복장의 청소노동자들이 짧게 화면 안에 잡힌다. 영화의 다음 숏은 우리가 익히 경험한, 스크린도어 안으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풍경이다. 각각의 사연들을 가진 승객들이 오르내리고 지하철이 역사를 빠져나간 뒤 잠깐의 고요함 사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이 저 멀리서 밀려들어온다. 이 일련의 숏들은 영화를 향해 다가가는 실타래 역할을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카메라는 지하철의 환승객처럼 움직인다. 환승객의 여정이 역과 역을 교차하며 거점에서 잠시 기다리듯 이 영화의 카메라 역시 지하철 내 노동자의 궤적을 잠시 멈추거나 우회하며 세계를 응시한다. 두 개념의 공통점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 공간 사이에 놓인 정차 공간이다. 환승객의 여정에서 출발과 도착 사이에 놓인 역들은 말 그대로 ‘지나치는 역’이다. 반면 <언더그라운드>는 ‘지나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고,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숙명처럼 보인다.
환승하는 카메라는 고정된 틀이 없다. 앞서 밝힌 대로 지하를 관통하는 지하철 내 기관사가 역사 내의 청소노동자로 옮겨 가는 것처럼 <언더그라운드>의 공간은 정형화된 형식을 토대로 움직이지 않고 지하 속 노동자들의 발걸음을 이곳저곳 따라가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있다. 영화 속 세계의 모호함은 영화 속 인물들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특질이 강화된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대한 결단일 것이다. 특히 김정근의 데뷔작 <버스를 타라>(2012)와 <그림자들의 섬>(2014)이 노동자의 생생한 얼굴과 말이 가지는 온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다소 놀라운 구석이 있다. 아마도 김정근은 이번 영화에서 소우주와 같은 지하 내부, 그 곳에서 노동하는 육체를 전면화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렇기에 많은 말과 해설은 최소화 되는 과정을 거친다. 김정근은 인터뷰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지우는 대신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현장을 호출하며 이들 사이에 특별한 위계를 두지 않으려 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하를 오르내린다. 지하철이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역사는 문을 닫지만 노동은 지속된다. 운행이 끝난 지하철을 점검하는 노동자, 객차를 청소하는 노동자, 부속에 기름칠을 하고 볼트와 너트를 조이며 관리하는 노동자…. 카메라는 기계-육체노동이 맞부딪히는 아득한 감각을 선보이지만 언제나 노동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에 해당 이미지가 단순히 스펙터클로 소모되지 않는다.
물론 모호함과 불균질한 감각들이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김정근의 태도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림자들의 섬> 마지막 장면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우리 조합원을 믿어요. 끝까지.”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노동, 더 나아가 노동자에 대한 연대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이러한 지점이 드러나는 장면은 청소노동자와의 대화 장면에서 등장한다. 한 청소노동자가 역사 내 청소 도구함에서 걸레를 빨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감독에게 말하고, 묻는다. “이거 하면서 대박나소. 이것도 힘들제, 그죠? 무슨 일이든지 그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돼요. 그러면 성공하더라.” 웅장하면서도 서늘한 지하 세계 노동의 반복 속에서 슬며시 틈입하는 이 장면은 찍는 자와 찍히는 자라는 영화적 관계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와 노동자가 만나는 현실의 관계로 확장하며 김정근이 해당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특히 청소노동자들이 좁디좁은 휴게실에 모여 낮잠을 자는 숏은 더 없이 유려하다. 이 장면은 카메라가 좌측에서 우측으로 아주 천천히 패닝하며 청소노동자들을 담아낸다. 이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운동의 세기와 지하철을 타려는 승객들의 속도감과 대비되며 카메라가 머물고 있는 그 시간 자체를 멈춰버린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 장면은 카메라가 청소노동자들의 넉넉하지 않은 휴식을 기다려주고, 나아가 쉴 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노동은 이상적인 꿈보다는 노곤한 현실에 더욱 가깝다. 당장 실적과 영업이익이 분기에 한번 씩 사장의 목을 옥죄고, 사장은 생산성 향상을 근거로 노동자의 목을 재차 옥죈다. 노동은 숭고하지만 그렇기에 종종 비루해진다. <언더그라운드>가 노동에 대해 추가된 것이 있다면 이 같은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구조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언더그라운드>의 결단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노동 투쟁으로서의 현장이 아닌 교육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사회로 진입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 엄우철과 사회로 진입할 공업고등학교 소년 강성운을 등장시키며 노동 현장에서의 갈등과 투쟁이 단순히 현재의 머물지 않고 미래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김정근은 이 사실에 대해 근심 어린 태도로 그들과 함께 고민한다.
영화의 후반부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실습을 나온 공고생들은 지하철 산업 현장에 도착한다. 학생들은 현장의 거대한 면적과 빽빽이 놓인 기계들이 주는 매혹에 감응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 엄우철과 공고생들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거기에 한 차례 더 카메라는 들어가 엄우철의 클로즈업이 이뤄지고, 이례적으로 인물과 인물 간의 아웃포커싱이 발생한다. 각각 작업복과 교복을 입은 두 사이의 거리는 1m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두 집단은 한 프레임 안에 담겨야 할까. 아마도 그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각기 질문은 다를지라도 강성운과 엄우철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생각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비정규직인 엄우철은 정규직 전환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자기 밥그릇이 항상 작다고 생각하잖아요. 거기다가 배고픈 놈이 숟가락 얹은 격인데, 그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 같은 생각은 강성운도 유사하다. 친구가 “우리 취업하면 정규직이가?”라고 묻자 강성운은 “근데 모든 회사가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 라고 대답한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어른들’ 역시 노동 투쟁의 치열함을 말하기보다 되려 회상에 젖거나, 자동화가 될 미래 변화 속 대체 될 불안감을 역설한다. 김정근은 단순히 투쟁의 치열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시류와 변화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질문을 던진다. IMF 이후 한국의 노동자는 죽음마저 외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간다. 노동 시장은 지난 20년간 기업의 유연화를 핑계로 비정규직 문제를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2년 간 비정규직 신분이 보장이 되더라도 1년 11개월 차에 새 직원을 뽑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가 IMF 전후에 태어난 강성운과 엄우철의 말과 감정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그렇기에 의미심장하면서도 씁쓸하다.
- 다음글 <영화의 거리> : 김민근의 이행과 확장
- 이전글 줄의 단말마 : <클라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