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평론가 비평

영화평론가 비평

오디오 해설 영화관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평론글로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영화의 거리> : 김민근의 이행과 확장2021-09-16
영화의 거리 스틸 이미지

 

 

 

<영화의 거리> : 김민근의 이행과 확장

 

이상경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영화의 거리>(2021)는 김민근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은 이미 부산에서 세 편의 단편 영화 <엄마 풍경 집>(2016), <나는 보았다>(2017), <손님>(2017)을 연출한 바 있다. 그런데 그의 첫 장편과 세 단편 사이의 혈연관계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첫 번째 단편 <엄마 풍경 집>만 고려한다면 두 영화의 연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나 나머지 단편들에서는 최근작인 장편과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감독의 모든 영화가 일정한 혈연관계를 가질 필요도 없고 단편에서 장편으로의 이행에는 어떤 비약이 있을 수 있긴 하다. 그의 세 단편 영화들도 주제나 스타일의 측면에서 그다지 유사성을 갖지 않으니 그를 이행 과정에 있는 감독이라 보는 게 옳을까.

 

 

엄마 풍경집 스틸

<엄마 풍경 집>(2016) 스틸 이미지

 

 

삶에 스며 있는 아픔이라든가 코믹 코드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두 단편과의 연관을 거론할 수도 있지만 <엄마 풍경 집><영화의 거리>의 거리가 더 가까워 보이는 이유가 있다. 두 영화는 풍경의 영화라는 측면을 공유한다. 사실 <엄마 풍경 집>의 풍경은 경치, 경관이라는 의미의 풍경이 아니라 엄마 집에 매달린 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음이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김민근의 첫 단편영화는 풍경 소리보다는 롱숏의 풍경으로 우리의 눈을 끌어당겼다. <영화의 거리>의 여주인공은 영화를 보며 봐봐, 풍경이 좋다며 남자친구에게 풍경 사랑을 뿜어내는 선화(한선화)이다. 그녀의 직업은 영화 촬영을 위해 영화 장면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는, 즉 풍경을 찾아내는 로케이션 매니저다. 영화는 부산과 근교의 그림 같은 촬영지를 담고 있으며, 첫 영화처럼 롱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선화가 극 중에서 만든 로케이션 북의 일부를 펼쳐 보이는 것 같다.

 

 

영화의 거리 스틸

 

 

   대부분의 단편 영화들이 그러하듯 김민근의 세 단편들도 특별히 구분되는 장르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냥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자신을 구분 짓는 명칭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장편은 많은 장편 데뷔작이 그러하듯 장르영화적 지향성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 초반에는 장르를 오인하게끔 가벼운 농담을 구사하기도 한다. 사이렌 소리에 더한 긴박한 타악기 소리, 개울에 버려진 장화, 비닐 옷, 그것을 촬영하고 기록하는 여자의 모습은 영락없이 범죄물이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행여 이런 떡밥을 놓칠세라 영화는 지나가는 촌부를 동원하여 사진 찍는 선화에게 비밀수삽니까?”라고 묻게 하는가 하면, 이장에게 전화하면서 형사님 한 분 와 계신데라고 말하게 하며 확인 사살을 시도한다. 이때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다 위장된 연출의 존재를 노출하는 마지막 순간,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는 진행자처럼 영화는 코믹한 사운드를 발산한다. 이렇듯 영화의 초반에는 일상적인 드라마에 코미디적 감성을 부여하는 온건한 전술 대신, 시트콤처럼 과장하며 효과음이나 배경음으로 코미디 장르로 프레이밍하는 적극적 전술을 펼친다.

 

 

영화의 거리 스틸이미지

 

 

영화 초반 코미디물로서의 정체성을 담보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배우 한선화가 아니라 선화가 일하는 회사의 대표 역을 맡은 박세기 배우이다. 과장되고 변화무쌍하며 사기성이 있어 보이면서도 귀여운 순진함을 가진 것 같은 복합적 캐릭터의 대표는 선화를 추켜세우면서 선화의 능력을 뽑아내는 데 유능해 보인다. 인물을 통한 장르의 강조는 이 영화를 기존의 김민근 영화와 차별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런 차별화나 낯섦은 각본과 기획에 크레디트를 올린 김예솔 프로듀서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한다.

대표에 의한 초반의 코미디적 연행은 영화의 주된 정체성인 로맨틱 코미디를 위해 새로운 인물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대체로 로맨틱 코미디는 사회, 경제적 신분의 차이가 나는 남녀 주인공들이 그들의 배경과 성격적 차이로 인해 티격태격하다 낭만적 사랑을 성취하는 도식을 갖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헤어진 연인들이 일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미묘한 갈등과 감정의 변화를, 과거에 사랑하던 시절의 장면들과 대비하면서 보여준다. 대표가 선화의 다음 영화 작업을 위해 소개한 감독은 선화의 전 남자 친구인 도영(이완)이고 선화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며 새로운 장르의 출발을 알린다.

 

 

영화의 거리 스틸 이미지

 

 

대표의 읍소로 결국 함께 작업에 합류한 선화와 도영에게 주어진 시간은 부산 로케이션을 준비하는 단 며칠뿐이다. 이 기간은 그들이 불치의 병이나 심각한 시련을 마주하는 멜로드라마의 비극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표와 도영의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들이 로맨틱 코미디의 선조 격인 스크루볼 코미디의 속사포 실력을 뽐내기에도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는 열전 대신 냉전과 냉소가 교차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현대적 트렌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모습은 선화가 로케이션 후보지에 일행을 데려가면 감독 도영이 이런 느낌 아닌데라고 말할 때 선화가 그냥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라며 맞받을 때 같은 경우다. 선화는 대표에게 전 남친에게 미련이 남았거나 감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감독도 영문을 모르는 스태프들 앞에서 지방의 로케이션 담당 스테프와 티격태격하며 모양 빠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들은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완벽히 감싸는데 그다지 성공하진 못한다.

 

 

영화의 거리 스틸

 

 

대신에 그들은 과거의 회상 장면에서 제대로 사랑하고 다툰다. 에로틱함이 배제된, 어리고 풋풋한 그들의 사랑은 함께 영화 보고 농담하는 친구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다툼은 그들이 헤어진 연인들이 된 이유와 연관된다. 도영이 영화를 위해서 서울로 가려고 하다 영화과 편입에 성공하면서 그들 사이의 틈은 회복 불가능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둘은 완전히 전형적이진 않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표준적 주인공들의 모습을 살짝 내비치게 된다. 서울에서 감독이 된 도영(차도영이라는 이름이 차가운 도시 영화인에서 온 것은 아닐까?)과 부산에 남아서 로케이션 매니저가 된 선화는 어느 정도의 기울기를 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영은 작은 성취는 이루었지만 스스로 고백하듯 생각해봤는데 목적지 없이 간 적이 없는영화 내에서 매력이 살짝 떨어지는 불완전한 인격체로 묘사된다. 반면에 선화는 상대적 열세에 있지만 나는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 지낼 거다라고 말하며 올바르고 당찬 매력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하듯 선악의 이분법적이고도 극단적인 설정을 지양하면서도 영화에는 전형적 장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영과 ()화 사이에 존재하는 궁극의 거리는 그들이 영화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어떻게 될까?

 

 

영화의 거리 스틸

 

 

   고향인 부산의 현지어(영화에 나오는 가공의 사투리로서가 아닌)를 찰지게 구사하며 호연한 한선화와 불완전한 이중언어 구사자처럼 서울말과 경상도말을 오가며 어느 한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로서의 캐릭터를 잘 소화한 이완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부산의 풍경을 담고, ‘부산에서 영화한다는 것의 비장함과 결의가 자칫 지나치게 거친 표면으로 보일 우려도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동남방언이 자기의 매력을 뿜어내는 대사는 달달하고 아픔을 간직한 연애의 속살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변신하고 확장되며 서사를 더 머금으면서도 이미지의 힘을 간직한 김민근 월드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계속되길 바란다.

 

 

다음글 <좋은 사람> : 마주치지 않았던 두 사람
이전글 <언더그라운드> : 환승하는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