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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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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위대한 이상2022-05-02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 이미지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 위대한 이상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파주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반사적으로 떠올린 것은 안개 자욱한 재개발 지역의 이미지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전, 파주는 극영화의 배경으로 그려져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형부와 처제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박찬옥 감독의 2009년 작품 <파주>에서 파주는 인물들의 모호한 내면이 투영된 심리적 공간으로 묘사된다. 인물들의 불투명한 속내는 파주가 안개의 도시라는 설정과 효과적으로 조응하면서 파주라는 공간은 인물 못지않은 주인공처럼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안개 낀 파주라는 이미지가 허구적 재현이라면, 금지된 욕망이 드리운 장막 너머의 노골적 욕망으로 점철된 개발의 풍경은 2009년 현실 속 파주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기도 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

 

   이처럼 2009년의 극영화 속 파주가 얼마간 파주라는 도시의 우울한 표정에 빚지고 있으면서 개인의 욕망에 집중했다면, 2020년대 다큐멘터리 속 파주에는 공동체적 꿈과 이를 향해 빛나는 도시의 표정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 파주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이상이 실현된 도시로, 영화 <파주>와는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다운, 김종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이하 <위대한 계약>)는 어떻게 해서 파주가 출판도시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무후무한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품이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

 

   30여 년에 이르는 긴 역사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 안에 정리한 <위대한 계약>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지점이다. 먼저, <위대한 계약><이타미 준의 바다>라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추구했던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의 생애를 다루기도 했던 감독의 이력대로, 철새가 날아들고 갈대가 우거진 파주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시와 공존하게 할 것인가를 출판도시 구성원들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민하는 모습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에 따라 카메라 역시 건물의 내부보다는 건물의 외관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며, 건축물과 자연의 어울림을 관조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더불어, 건물의 전경만큼 자주 등장하는 드론을 활용한 넓은 조망의 시선은 군사경계선에 자리했기 때문에 낮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물들이 도시의 한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경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에 담긴 파주의 사계절이 특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습지를 메우지 않고, 갈대를 베어내지 않은 자리에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파주 출판도시 프로젝트에서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지점은 첫 번째 지점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보다 근본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것은 출판도시가 도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과 대답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는 다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공동성이다. 공동성은 출판인과 건축인 사이를 하나로 묶어준 공적 가치다. 공동성은 부동산의 가치로 환원되는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 가능하도록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된다.

   출판인과 건축인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위대한 계약인 것은 공동성의 가치가 계약이라는 법적 구속력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와 참여 아래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한계약으로 보이기도 했던 이들의 시도가 위대한 계약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선언에 가까운 추상적 계약에 서명하는 순간이 아니라 서명의 내용이 구체화 되고 실현되는 과정에 있었음을 영화는 인터뷰와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착실하게 제시한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파주라는 도시와 도시를 이루고 있는 출판사(), 건축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건물이나 도시의 경관보다도 인상에 깊이 각인되는 것은 결국 프로젝트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말과 표정 속에서 이상에 가까운 계획을 향한 들뜬 열망이 30여 년의 시차를 넘어 전달된다. 그것이 무척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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