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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오렌지필름 <침묵의 언어> - 소수의 언어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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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필름 <침묵의 언어>
소수의 언어
김나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국적과 성별, 과거의 이력이 인물들을 사회적 약자로 위치시킬 때,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라 부른다. 오렌지필름 8월 기획전 [침묵의 언어]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의 눈에 띄는 공통점은 작품의 주인공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라는 점이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인 문혜인 감독의 <트랜짓>(2022)은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김군>(2019)으로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은 바 있는 감독 강상우의 <클린 미>(2014)는 출소 후 법무보호복지공단에 입소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오두막>(2016)으로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 부산 출신의 감독 이상환의 <파테르>(2019)는 미등록 체류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개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사회 고발적 성격의 드라마를 예상하기 좋을 텐데, 세 작품 중 이를 가장 정공법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는 이상환의 <파테르>다.
<파테르>는 몽골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한 주인공 오성(이한주)이 국적의 제약 때문에 부딪히는 갖가지 부조리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오성은 고등학생 레슬링 선수로 이삿짐 업체에서 일하면서 사장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훔치면서 생활한다. 오성이 사장의 강압적인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오성의 한국 국적 취득이 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출중한 실력에도 몽골 국적이라는 이유로 전국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오성의 상황에서 국적은 오성이 레슬링 선수로서 경력을 이어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요소다.
카메라는 레슬링 시합을 벌이는 오성의 육체를 땀방울이 보일 만큼 가까이에서 잡아내는데, 시합 장면은 오성이 그를 괴롭히는 주변 상황으로부터 멀어져 순수하게 그 자신의 싸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인상적으로 시각화한다. 한편으로 이는 오성이 처한 상황과 그 안에서 그가 벌이는 힘겨운 분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레슬링 장면이 담고 있는 이와 같은 양면적 함의는 경기의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펼쳐지는 스포츠와 달리 세상의 규칙은 결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랜짓>은 <파테르>에 비해 비교적 가볍고 따뜻한 톤으로 소수자 주인공 사이의 우정을 다룬다. 수술 후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복귀한 트랜스젠더 조명기사 미호(우지현)를 둘러싼 현장 사람들은 조명기사로서 미호가 가진 능력에 존경심을 보이지만 때때로 트랜스젠더인 그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현장의 어수선함과 작은 소동들 속에서 미호는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장 뒤편에 혼자 남겨진 시간이 많은 아역 배우 백호(김규나)는 아이 특유의 거침없는 질문, 허물없는 솔직함으로 미호를 대하고 백호는 금세 미호와 우정을 쌓는다.
조명기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답게 빛을 활용한 장면이 부드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부고를 들은 미호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는다”고 말하며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장면이 마음을 붙들기도 한다. 영화는 그것이 어떤 죽음인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소수자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클린 미>는 재소자들이 출소 후 부딪힐 수 있는 사회 적응의 문제를 돕기 위해 마련된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불친절한 작품일지 모른다. 영화의 중심 내러티브를 한마디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특별한 사건도 없고 영화가 인물의 전사(前史)를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는 그저 인물들이 먹고 자고 씻고 청소하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관객이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서사적인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두는 일반적인 영화들과 달리 <클린 미>는 인물을 둘러싼 장소의 공기와 소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빈 복도 혹은 인물들이 머무는 방안을 비추는 카메라가 미끄러져 들어가듯 움직일 때 전해지는 것은 일상적인 장면의 표면 밖으로 스며 나오는 이질적인 감각이다. 이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출소 후 새롭게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이들이 느끼는 부적응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쓰레기 수거 후 쓰레기차 뒤에 매달린 준영(민찬기)을 따라가는 카메라에 담긴 밤의 이미지가 대단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출소자들이 느끼는 감각을 한쪽 면으로만 단순화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 후 펼쳐지는 밤의 도심 풍경은 이들이 느끼는 감각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청소라는 행위가 출소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낙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영화는 이미지의 이면보다 이미지와 사운드 자체가 전달하는 감각에 더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세 영화의 색채는 무척 다르다. 소수자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은 주류의 것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된다는 점에서 세 영화 사이의 차이와 다양함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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