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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을 했다면,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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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을 했다면,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관람하기 전 살짝 긴장됐다. 박찬욱 감독의 이전 영화를 보며, 여러 이유로 크고 작게 놀랐던 기억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차가 있겠지만) <헤어질 결심>을 보며 놀랄 일은 거의 없다. ‘15세이상관람가’ 영화답게, 이전 영화 대비 강한 충격을 주진 않는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영화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은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을 했다면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팁을 가볍게 정리해볼까 한다. 왠지 긴장되는 관객을 위한 <헤어질 결심>을 볼 마음가짐 제안이라 하겠다.
충격의 원인 미리 알아두기
먼저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를 알아두면 유용하다. <헤어질 결심>을 보기 시작하면 곧 예상할 수 있게 된다. 몇 가지 이유가 제거되어, 놀랄 일이 적겠다는 걸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주는 충격이나 놀람은 주로 비현실적인 괴상함과 잔혹성에서 기인한다. 충격과 놀람의 대표작인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도 내용과 형식 즉 스토리와 영상, 소리 모두 강렬했다. 아이의 유괴, 본인의 납치, 수감 등 매우 센 상황이 초반부터 등장한다.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안겨준 <박쥐>도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가 된 가톨릭 신부 상현(송강호)이라는 설정은 기구했고, 옛 친구 강우(신하균),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 어머니 라여사(김해숙) 등은 딴 세상 사람들처럼 성격과 외모, 행동, 표정 등은 기괴했다.
2016년 영화 <아가씨>도 ‘충격과 놀람’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히데코(김민희)가 사는 공간, 가족과 식구 중 소위 정상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숙희(김태리)도 속을 알기 힘들었다. 영화 마지막의 반전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을 주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현재를 배경으로 하든, 과거를 배경으로 하든,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초반부터 주인공은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한다. 그들 본인, 그리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성격, 행동, 말,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공간마저 특이하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의 초반은 여느 범죄 물과 비슷하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은 총성이고,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 경찰 해준(박해일)과 수완(고경표)은 사격 훈련 중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행동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낯설기까지 했다.
뒤이어 웅장한 산 절벽 아래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지만, 시신을 보여주는 방식이 자극적이진 않다. 주인공도 희생자나 희생자 주변인, 가해자가 아니라 제3자이다. 게다가 경찰이다.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양복 차림의 멀끔한 형사 해준은 기괴하거니 미스터리하지 않다. 파트너 수완은 웃기기까지 하다.
이후 등장하는 피해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도 사연은 많아 보이나 이상하거나 괴상해 보이지 않는다. 남편 살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지만, 도통 알 길은 없다. 서툰 한국어 때문일 거라 넘어갈 만하고, 무엇보다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라 의심이 드는 대신 매혹되기 쉽다.
적어도 <헤어질 결심>이 초반에 알려주는 상황과 주인공들을 봤을 때, 희한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비교할 준비
<헤어질 결심>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 이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미리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 곳곳에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래의 집 벽지를 보며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의 벽지가 떠오르고, 번민하는 해준을 보며 <박쥐>(2009)의 상현(송강호)이 떠오른다. <아가씨>가 떠오르는 음악이 들리고,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션 목소리도 들려온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발견한 보물은 이 정도까지만)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전 영화에서 종종 나타났던 공권력에 대한 의심은 줄었다. 특히 ‘복수 3부작’에서 경찰 등의 공권력은 주인공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대신 주인공의 사적 복수가 진행된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주인공이 경찰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하는 인물은 전혀 아니다.
또 다른 영화도 소환해 비교가 가능하다. 영화 내내 여러 차례 들려오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주제곡으로 나왔던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가 먼저 생각난다. 흑백 영화 <안개> 속 무진의 해변에서 인숙(윤정희)은 기준(신성일)에게 그 노래를 불러줬다.
해준이 서래를 취조하고, 잠복 감시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더 많은 영화가 떠오른다. 히치콕 감독의 <이창>(1954), <현기증>(1959) 등의 고전이나 <원초적 본능>(폴 버호벤, 1992) 등 몰래 엿봄, 신비로운(미스터리한) 여성, 경찰과 용의자 관계 등과 관련이 있는 영화는 다 떠오를 수 있다. 박찬욱 감독과 박해일, 탕웨이가 만들어낸 장면과 비교하는 묘미가 크다. 감시당한 걸 알게 된 서래의 반응 등은 의외다.
- 예상은 빗나가기 마련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을 하고, 이런 예상을 했었다. ‘헤어지냐 마냐를 고민하는 멜로드라마는 아닐 것’, ‘경찰이 주인공이지만, 모든 걸 해결하는 영화는 아닐 것’ 즉 익숙한 멜로물이나 수사물은 아닐 거란 예상이었다.
위 두 예상은 모두 어느 정도 맞았다. 어느 정도라 표현한 이유는 예상보다는 멜로물이고, 수사물이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파국을 향해가는 괴상스러운 불륜 멜로도 아니었고, 이미 언급했듯이 마냥 무능한 경찰도 아니라 의외였다.
이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보다는 한층 현실적인 영화라 하겠다. 인물에 감정이입도 조금 더 하게 된다. 해준과 서래를 서로를 몰래 엿보고 관찰하듯, 관객 역시 그들을 엿보면서, 그들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다. 물론 모호한 지점이 여전히 많지만,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이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시작해서 바다에서 끝나는 영화다. 산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안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상보다 큰 충격이나 놀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그의 시그니처 혹은 변화를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영화 매체 자체의 가능성에 대한 발견이기도 해서 그 재미의 규모는 매우 크다.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을 했다면,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어두고, 기억의 문도 조금 열어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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