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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리스>를 보며 바랐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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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를 보며 바랐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화를 보며 주인공 편을 들고, 특정 결말을 바라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형사가 범인을 꼭 잡았으면 좋겠다거나, 갈등하는 두 인물이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보통은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결말을 바라게 되는데,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주인공이 늘 옳은 것도 아니고, 소위 사이다를 느끼는 대신 현실의 벽을 느끼는 결말도 여운을 준다.
그런데 영화 <홈리스>(임승현, 2022)를 보면서는 원하는 바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결말이어야 이 어린 부부가 행복해지는 걸까? 영화 속 한결과 고운 부부만큼이나 관객 역시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홈리스>는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홈리스>를 보는 내내 한결과 고운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혼동과 고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포스터와 영화의 관계
포스터만 봐서는 코미디를 기대하기 쉽다. 젊은 커플이 보이니 로맨틱 코미디를 상상하게 되는데, 우왕좌왕 소동 끝에 포스터 속에 보이는 그림 같은 집을 갖게 되는 걸까? 푸른 하늘과 초록 잔디가 펼쳐진 ‘우리 집’에 대한 로망도 잠시 느끼게 된다. 적어도 포스터만 봤을 땐 그저 낭만적인 영화일 것만 같다.
그러나 포스터는 포스터일 뿐이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그 어떤 집도 영화엔 나오진 않고, 포스터같이 밝고 드넓은 야외 공간도 나오지 않는다. 소풍이라도 나간 분위기지만, 영화 속에서 그런 일도, 그런 분위기도 생기지 않는다. 한결과 고운이 텐트든 양옥집이든 포스터에서 보이는 집을 갖게 되거나, 하다못해 소풍이라도 다녀오길 바라지만, 현실은 어둡고 답답하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렇게 역설적인 포스터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포스터도 빛바랜 사진 같은 느낌인데, 두 형사가 해맑게 웃고 있는 버전이 있다. 영화가 다루는 끔찍한 사건과는 괴리가 크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
포스터와 영화가 닮은 지점도 있긴 하다. <홈리스>의 영상은 꽤 밝은 편이다. 적어도 영화 내내 어두컴컴하고 음침하지 않다. 만나지 못했지만, 한결이 아버지를 만나러 같을 때 짙은 역광 실루엣, 할머니 집안에서의 밤 장면, 찜질방 장면, 밤거리 장면 등 어두운 장면도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 밝다.
청년 빈곤과 주거 문제, 독거노인 문제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 나름 밝은 톤의 영상 속에 담겨, 그들의 캄캄한 현실과 대비된다. 여름 햇살은 무심하게도 밝고, 작지만 집 마당은 초록빛이다. 그리고 걸음마를 시작한 우림이는 매우 귀엽다.
- 집이 없는 가족의 위기 상황
한결과 고운, 우림은 ‘홈리스’ 즉 노숙자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잠시 쉬고, 찜질방에서 잠자는 생활 중이다. 도배까지 하고 이사 들어가길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보증금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계약한 집을 포함해 주변은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준비가 한창이고, 피해자도 여럿이다.
설상가상으로 찜질방에서 고운이 우림이 분유를 타러 간 사이, 우림이가 사고로 다치고 만다. 떼인 보증금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치료비도 필요하다. 연달아 닥친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한결의 직장 사장과 선배 이외엔 주변 인물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지자체나 복지기관 등에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다. 병원에서도 긴급 복지 등을 요청할 수 있을 듯한데, 이미 도움을 받은 건지, 혹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안 되는 건지, 도움을 받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린 부부는 모든 걸 둘이서 해결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집만 있는 외로운 할머니와의 만남
한결이 우림이 치료비를 위해 만나러 간 사람이 있긴 하다. 배달 일을 하는 한결이 매일 배달 가면서 알게 된 할머니 예분이다. 예분은 한결에게 전구 갈기 같은 소소한 심부름도 부탁해 왔고, 미국에 살면서 찾아오지 않는 가족 이야기도 해왔다. 어쩌면 예분이 적어도 우림이 치료비 정도는 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집이 없는 한결, 고운, 우림과 가족이 없는 예분이 함께 살면 어떨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도 잠시 하게 된다. 어쨌든 한결은 우림의 치료비를 구해왔고, 임시로 지낼 곳이라며 예분의 집으로 고운과 우림을 데리고 간다. 그런데 예분이 보이지 않는다. 한결은 예분이 미국으로 가족을 만나러 갔고, 한 달 동안 집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하지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스릴러 영화로 흐르는 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고, 긴장도 되지만, 오래가지 않아 미스터리는 풀린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고,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것도 같고, 한결 고운 부부는 혼동 속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도 선택 장애에 빠진다.
그래서 어떤 결말이길 바라는가?
<홈리스>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축소판 <기생충>으로 볼 수도 있다. 어린 부부와 돌배기 아기, 오래된 서민 주택에 사는 독거노인까지 등장인물의 수, 연령, 집의 규모 등이 모두 작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린 가족의 위기와 할머니와의 만남이 풍자나 상징보다는 지독한 현실로 느껴진다.
<홈리스>의 임승현 감독이 밝힌 한결과 고운을 비난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도처럼, 영화는 별일 없다는 듯, 그냥 넘겨보자는 불안한 현실을 보여준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만큼 밝은 미래가 펼쳐지면 좋겠지만, 과연 가능할까?
영화의 결말을 숨기고 에둘러서 이야기하자면, 이들의 현재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듯하다. 보증금 사기범은 잡혔지만, 모든 돈은 이미 다 써버린 상태고, 예분의 집에서도 마냥 지내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지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일상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냥 비관적이거나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은 이들의 상황이 과연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상황이 한결과 고운 만의 잘못일까? 소위 준법정신, 윤리의식 등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과연 이들은 어찌해야 할까? 영화는 어떤 결말을 제시해야 할까?
영화를 다 본 이후에도 소위 말하는 사이다 해결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영화 <홈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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