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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현재, <2차 송환>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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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현재, <2차 송환>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화 <2차 송환>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남과 북은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파 공작원은 6446명(1953-1972),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북파 공작원은 7726명(1953-1999)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휴전 상태에 있는 국가라는 것은 전혀 새로울 일이 아니지만,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 문구는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그렇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선언을 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역시 성사되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2022년 현재까지 종전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또는 ‘적대관계의 종식’이 있었을 뿐이다. 그 사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바뀌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요원한 일이다.
<2차 송환>은 2004년 개봉했던 <송환>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4년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다루면서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는 장면까지 담아내었었다. 김동원 감독이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 시작한 건 1992년, 그리고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건 2000년이다. 그 긴 시간이 기록되었던 영화가 <송환>이다. 송환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은 이들의 삶까지 그리는 이 영화는 12년 동안의 기록이고, 800시간에 이르는 기록물의 일부였다. 김동원 감독은 정치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혹은 정치적으로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동의하지 않는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다. <송환>에서 김동원 감독의 시선에 담긴 비전향 장기수들은 사상에 모든 것들을 내어주고 삶을 져버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일 뿐이었고, 학습된 사상들과는 관계없는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남파 공작원이었고,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복역했지만,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기도 한, 투박하면서도 순박한 심성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 <송환>은 바로 그 한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2차 송환>은 전향했다는 이유로 1차 송환 때 함께 송환되지 못한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 가운데는 영화의 주요 인물인 김영식 선생처럼 남파 공작원이었던 사람도 있지만, 전쟁 포로나 빨치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2001년 고문에 의한 강제 전향은 무효라고 밝히고 2차 송환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들의 송환은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만큼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이 두 번째 송환 운동의 기록에는 처음 <송환>의 기록을 시작한 1992년부터 2021년까지 30년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 사이 김동원 감독은 여러 번 무산되는 작업 속에서 좌절하고, 그러한 기록 역시 <2차 송환>에 담겨 있다. ‘우리 민족끼리 화목하게 삽시다. 남북은 하나되어 615시대’라는 띠를 매고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연설하고, 통일부, 미국대사관, 국회의사당, 청와대를 다니며 1인 시위하는 김영식 선생의 지독하게 반복되는 좌절에 빗댈 수 있겠는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계속해서 꺾이는 과정이 그려진다.
김영식 선생의 지하철에서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김영식 선생이 스스로 했던 기록을 보여준다. 5호선에서 이북 간첩이라며 어떤 영감이 달려들었는데, 시끄럽게 되어 경찰이 와도 누구도 자신을 옹호해주고,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참았다는 것이다. 결코 고향이 될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삶, 김동원 감독은 <송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념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렇게 장기수들을 비춘다. 김동원 감독은 김영식 선생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집회에 가서 연설하는 선생의 모습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념적인 말들, 학습된 말들을 떠나서 우리는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볼 수 없을까? 영화는 그것을 시도한다.
김영식 선생의, 그리고 김동원 감독의 계속된 좌절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근본적으로 어둡게 하는 건 계속해서 바뀌어 가는 사회의 분위기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처럼 북한과의 관계를 더 얼어붙게 만든 정부의 방향 때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세월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남북관계에 대한 시도들이나 통일에 절절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통일은 이제 다시금 이해관계를 따져보아야 하는 일일 뿐, 고향과 가족들, 동포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한 특정한 정부나 개개인의 마음들을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흘러버린 세월 탓이다. 한국전쟁은 벌써 70여 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는 그 시간들을 떠나보내도 되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이제는 그저 놓아버려야 하는 일일까?
<2차 송환>의 장기수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재로서 여전히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전쟁, 북한, 송환, 통일,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 문제들은 결코 끝나지 않은 현재의 문제이며, 단지 국가의 역사인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수 없는 각자의 고향의 문제이며, 그것은 결국 돌아갈 때만 끝나는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통일되어야만 끝나는 문제이며, 그것은 결국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2차 송환을 신청했던 46명의 신청자 중 생존자는 이제 9명뿐이다. 우리가 무심하게 세월을 떠내려 보내는 동안 그들의 평균 나이는 이제 91세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을 이 생생한 시간을 우리는 지나버린 과거로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그랬듯이 이제는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간다. 그들이 아직 그 시간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생생한 기쁨, 생생한 희망, 생생한 좌절, 생생한 고통 속에 그들의 삶이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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