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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백>: 회상과 상상이 뒤섞인 긴장감 그리고 서늘함2022-11-07
자백 스틸

 

 

영화 <자백>: 회상과 상상이 뒤섞인 긴장감 그리고 서늘함

 

송영애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자백 포스터

 

 

지난 1026일 개봉한 영화 <자백>(윤종석)에는 경찰이나 검찰이 용의자에게 요구하는 자백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승률 100%인 변호사 양신애(김윤진)가 무죄를 주장하는 의뢰인 유민호(소지섭)에게 요구하는 자백만 나올 뿐이다.

 

수많은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온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며, 익숙한 상황들을 목격하게 되고, 일종의 추리 게임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추가되는 몇 가지 영화적 장치에 의해 추리 게임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이 영화의 긴장감과 재미를 강화한 영화적 장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회상과 상상의 뒤섞임

 

자백 스틸

 

영화는 기자들을 무시하며, 걸어 나가는 유민호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사운드로 들려오는 뉴스 보도에 따르면, 재벌가 사위이자 IT 회사 CEO인 유민호는 불륜녀 김세희(나나)의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지만, 구속 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나는 중이다. 어느새 밤이 되었고, 운전 중인 양신애의 모습이 보인다. 눈길을 뚫고 양신애가 도착한 곳은 유민호의 산속 별장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처음 만난다.

 

자백 스틸

 

유민호는 양신애가 자신의 변론을 맡아주길 바라고, 양신애는 진실을 알아야 변론을 맡을 수 있다며 자백을 요구한다. 취조실 대신 유민호의 산속 별장에서 두 사람의 팽팽한 대화가 이어진다. 과연 유민호(소지섭)는 진실을 말할까? 그는 정말 무죄인가?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인가? 그리고 양신애는 이번에도 승소할까? 그전에 유민호의 변호를 하게 될까?

 

유민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륜 사실을 알고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 요구받은 돈을 일부 준비해 약속 장소인 호텔로 갔다. 호텔 방에는 김세회도 와있었다. 공동의 협박범을 기다리다 경찰이 출동한 걸 봤고, 호텔 방을 떠나려는 순간, 숨어있던 괴한의 공격을 받았다. 정신을 잃어다가 깨어나 보니 김세희는 죽어있었고, 경찰은 들이닥쳤다.’ 아마도 유민호가 경찰과 검찰에서 했을 자백과 같을 듯하다.

 

자백 스틸

 

영화는 유민호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이야기 속 상황을 장면화해 보여준다. 말하자면 유민호의 회상 장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회사에서 협박범의 우편물을 받고, 금고에서 돈을 꺼내고, 멀리 떨어진 호텔로 가고, 로비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 등을 회사 장면, 호텔 로비 장면, 호텔 방 장면 등으로 영상화해 보여준다.

 

유민호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별장 장면으로 돌아온다. 양신애는 유민호의 이야기에 허점이 많다며, ‘왜 하필 그 호텔로 불렀을까?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었고, 3자의 흔적은 없었는데, 누가 어떻게 들어왔다 나갔을까?’ 등등의 질문을 쏟아낸다. 흡사 프로파일러 같다.

 

영화는 이번에도 양신애의 질문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호텔 방안 장면이 다시 나오고, 중간중간에 안쪽에서 걸려있고 문, 창문 등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경찰의 현장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영상이 추가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호텔 방 안팎, 복도, 옆방 등등의 공간을 싹싹 훑어 재확인한다.

 

이후에도 호텔 방 안팎 장면은 몇 차례 더 등장한다. 그때마다 새로운 영상은 추가된다. 괴한이 옷장으로 숨어드는 모습, 조력자의 행동, 그들의 시선 등이 덧붙여진다. 이 장면들은 추정에 의한 장면인 건데, 말하자면 나름의 근거가 있기는 한 양신애의 상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복되는 장면에서 점차 기본값이었던 유민호와 김세희의 말과 행동도 바뀐다. 유민호가 말을 바꾸거나, 양신애가 다르게 상상하기에 따라, 그들의 회상 혹은 상상 장면 속에서 인물들의 역할, 성격, 대사, 행동 등이 달라진다.

 

이쯤 되면, 관객은 헛갈리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정보 즉 여러 버전의 살인 현장 장면을 본 덕분에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김세희가 죽기 몇 달 전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 추리의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유민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회상 장면이 이어지는데, 일부는 유민호가 김세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재인용회상 장면이다.

 

이 장면들 역시 조금씩 버전을 달리해가며 반복되고, 관객들의 기억 용량은 초과한다. 배우들의 같은 상황 여러 버전의 1인 다역 연기에 감탄하면서, 혼돈에 빠져든다. 조금 전에 봤던 장면은 회상이던가, 상상이던가? 누구의 상상이던가? 그런데 진실한가?

 

더 나아가 여러 버전의 회상 혹은 상상 장면에 나왔던 인물 중 몇몇은 또 다른 회상 장면과 현재 장면 속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하면, 더 복잡해진다. 이제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뿐만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추리해야 한다. 그만큼 긴장감도 배가된다.

 

공간감과 색감

 

자백 스틸

 

회상과 상상 장면의 뒤섞임만큼이나 좁거나 넓은 공간의 대비도 긴장감을 배가한다. 유민호와 양신애가 함께 있는 별장, 살인이 일어난 호텔 방 등의 실내 공간과 거대 도시 서울의 스카이라인, 눈 덮인 산, 산속 도로 풍경 등이 자주 교차하여, 그 격차가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혹은 멀리서 보여주는 거대한 도시나 자연 공간은 위압감을 느끼게 주고, 별장과 호텔 등의 작은 공간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공간의 대비로 만들어지는 자극의 차이 역시 불안감과 긴장감을 강화한다.

 

영화 전반적으로 서늘함도 느껴진다. 거대한 도시와 자연을 보여주는 영상이 온통 회색빛이기 때문이다.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 눈부신 햇빛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흐리고, 눈발도 날린다. 반면에 실내는 우울한 갈색빛이다. 유민호와 양신애가 이야기 나누는 별장 장면은 대부분 밤 장면이라 창밖은 새까맣기도 하다. 시선을 강탈하는 원색의 화려한 옷, 자동차, 벽지, 소품 등도 나오지 않는다. 서늘하고, 어둡고, 불길하다.

 

자백 스틸

 

영화 <자백>에는 한정된 공간과 적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회상과 상상으로 반복되는 장면과 스크린을 압도하는 거대하지만 서늘한 도시와 자연 공간, 무채색감 등이 관객을 긴장 상황에 몰아넣는다. 영화의 중후반에서 등장하는 반전에는 납득도 된다. 앞서 본 수많은 영상 정보들 속에 힌트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게 된다.

 

기억력 게임 같기도 한 추리 게임이라서 좌절감과 무력감도 느끼게 되지만, 영화관의 큰 화면을 통해 영화에 집중하고, 긴장하며, 몰입하고 싶다면, <자백> 관람을 추천한다. 이후 원작인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오리올 파울로, 2016)를 보는 것도 비교하는 재미를 추가해준다. 두 영화 모두 나름의 매력을 지녔으니, 순서 상관없이 보고, 그저 집중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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