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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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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의 연인> : 성장 대신 긍정으로20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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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 성장 대신 긍정으로
김나영 시민평론단
이미 몇 해 전부터 지속된 흐름이라 이젠 이것을 하나의 특별한 현상처럼 언급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독립영화 진영에서 여성 감독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영화제 상영을 거쳐 극장 개봉으로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올해에도 여전했다. 당장 떠오르는 대로 올 한 해의 개봉작 중 극영화로만 한정해서 나열해도 최진영 감독의 <태어나길 잘했어>,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 이재은, 임지선 감독의 공동 연출작인 <성적표의 김민영>,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등 적지 않은 수의 작품을 언급할 수 있다.
한인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만인의 연인>을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 서사 영화의 조금 더 세분화된 분류 속에 위치시킨다면,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종의 여성 청소년 영화(가령, 가령,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9),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2021), 앞서 언급한 <성적표의 김민영>)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는데, <만인의 연인>을 보고 나면 이러한 분류에 주저하게 된다.
<만인의 연인>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한 번도 학교를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만인의 연인>의 주인공 유진이 특별히 학교 밖 청소년인 것도 아니다. 친구들과의 우정, 가정이나 학교생활이 강제하는 규율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주로 진학과 연결되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처럼 성장 영화의 관습적 소재 중 어떤 것도 <만인의 연인>에는 없다.
<만인의 연인>에 없는 것은 또 있다. <만인의 연인>은 유진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많은 장치를 생략한다. 주변 인물들과 다른 말투를 쓰는 유진은 모종의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지금 이곳으로 이주해 온 지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사정에 대해 영화는 별다른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다니는 유진에게 왜 당장 일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한 것이 돈인지 일인지조차 사실 분명치 않다. 이에 더해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의 변덕, 예민함과 타인에 대한 성근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청소년 시기 특유의 감정적 복잡성이 유진에게서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유진이 자신의 성적 욕망 앞에서 혼란스러움이나 거북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성 청소년을 등장시키는 대다수 영화가 이 주제를 피하거나 대단히 조심스러운 인물 유형만을 제시해온 것을 생각했을 때 커다란 차이다.
이처럼 <만인의 연인>이 행동의 동기를 인물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떨어뜨리면서 얻는 효과는 행동의 주도권을 인물에게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유진은 안전하지 못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발을 구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10대 여성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일반적 의식의 개입과 성장 영화, 특히 10대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영화가 구축해온 컨벤션 사이의 긴장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만인의 연인>은 이를 영화를 집중력 있게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영리하게 활용한다.
유진은 이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뜬 인물이 아니다. 영화는 유진이 주변인들과 맺는 관계에서 보이는 얼마간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행동을 청소년 시기의 미성숙함과 관계 짓지 않는다. 일견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의 원인을 아빠의 부재, 엄마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유진의 외로움에서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것으로 완전히 설명되지도 않는다. 왜냐면 유진이 원하는 것은 보호자, 대리 부모가 아니라 어쨌든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남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성숙한 존재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성장 영화의 관습 일부를 <만인의 연인>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하지만 결국 성장하는 것은 유진이 아니라 유진의 엄마 아닌가) 유진의 욕망과 선택, 행동들은 성장의 자양분으로 수렴되는 대신 그 자체로 긍정된다. 이것이 인물의 성장 혹은 성장의 실패로 귀결되는 영화들과 <만인의 연인>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는 것이 불충분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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