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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희망의 요소>: 희망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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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요소>: 희망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김현진 시민평론단
남자는 고시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다. 대학교 교직원인 아내는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남자와의 이혼을 결심하려 한다. 남자는 틈틈이 ‘희망의 요소’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 남자는 어머니 생신에 직접 요리를 해드리려 집을 나서 장을 본다. 하지만 어머니는 형의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떠났다. 갈 곳이 없어진 남자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데 현관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낯선 남자의 구두가 있고 침실에서는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이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다.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도 연상되고, 정지우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도 생각난다. 둘 다 경제권이 없어 아내가 버는 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이 영화 <희망의 요소>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사랑하던 연인이나 부부들이 이별의 순간을 예감하는 때 중의 하나가 더 이상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어야 화도 내고 말다툼을 하게 될 것인데 그조차 나올 에너지가 고갈되면 서로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게 되며 더 이상 싸우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의 남자와 아내의 사이가 딱 그러하다. 남자는 아내의 눈치를 늘 살피며 아내는 남자에게 매번 심드렁하게 말한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챈 그 순간에도 남자는 아내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온 걸 들킬세라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서 거리를 서성일 뿐이다. 아내는 남편이 사들고 온 화초를 보고서 남편이 자신의 불륜을 알게 되었다는 걸 알고서 눈물짓는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자는 아내를 위해 아침밥을 차리고 둘은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며 아내는 출근한다. 이 부부에 희망이 있을까?
이 영화를 연출한 이원영 감독은 여러 가지 형식을 통해서 부부의 무감정한 상태를 표현한다. 흑백의 화면은 영화를 더욱 건조하게 보이게 만든다. 1.33대 1 비율의 좁은 화면비는 부부가 사는 아파트를 더욱 좁아보이게끔 한다. 남자와 아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도 둘이 한 프레임에 같이 촬영된 장면이 드물다. 이는 두 사람의 단절된 관계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서로 서먹해진 부부를 연기하는 배우 이승훈과 박서은의 연기는 무표정과 힘없는 목소리를 통해 과한 표현 없이도 자연스레 무기력의 감정을 쌓아나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인물들의 손과 발을 매우 자주 보여준다는 것이다. 배우의 손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많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 배우의 발과 신발을 찍은 쇼트가 많이 나오는 영화는 못 본 것 같다. 그런데 그 손과 발의 장면들에서도 형언하기 힘든 쓸쓸함이 묻어나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뒤, 아내는 남편이 쓴 소설 ‘희망의 요소’를 읽게 된다. 소설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관객은 전혀 알 수 없고 영화는 ‘1년 뒤’라는 자막과 함께 바닷가 마을로 배경을 옮긴다. 영화의 화면비는 갑자기 16대 9의 비율로 넓어진다. 남자는 집을 떠나 강원도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건설현장 폐기물 더미에서 고철을 분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내는 군대 간 애인 면회를 온 것처럼 남자를 만나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설악산에 가고, 바닷가에도 간다. 그들에게 다시 희망이 생긴 걸까? 이것은 정말로 그들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남자가 쓴 소설의 내용인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결말처럼, 이 에필로그는 현실인지 주인공의 상상일 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장면이 앞서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뺨을 때려본다. 다음 장면은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다. 이것은 꿈일까 진짜일까? 아마도 이원영 감독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대로 희망의 요소가 있냐 없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걸 믿는 사람에겐 희망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영화를 보고 뜬금없이 루쉰이 희망에 대해 쓴 글을 떠올렸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지상 위에 놓인 길과도 같은 것이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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