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한 번, 한 번 더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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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만남들을 가진다. 거리를 걸으며,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마트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면서. 기억 속에서 쉽게 소멸되는 짧게 스치는 만남들. 하지만 어떤 만남은 한 번으로는 모자를 때가 있다. 때론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또 한 번 마주치게 되고 이후 계속 만날 수 있게 되면 인연은 비로소 시작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영화들을 봐왔지만 모든 영화들이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 스치는 사람들처럼 이젠 거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은 영화들도 있고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을 영화들도 있다. 그러나 오랜 기억 저편에 남아 있다가 뜻밖의 재회로 이어진 영화도 있다. 바로 존 카니 감독의 ‘원스’. 그 재회는 강렬했고 두 번째 만남 끝에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다.
‘원스’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음악 시간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였나. 어느 날 갑자기 음악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어떤 영화를 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본체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법이 별로 없었던 그때는 수업하는 대신 영화를 볼 생각에 무척 들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당시 한창 액션, SF,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던 중학생 남자아이로서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이게 영화인가? 그냥 영상인 것 같은데.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영화는 화질도 안 좋았고 전체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엉성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영화는 내내 무언가가 폭발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도 없었다. 그냥 잔잔한 대화들, 이따금씩 들려오는 노래들이 전부였다.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한 중학생 남자아이는 다른 몇몇 친구들처럼 쏟아지는 졸음에 못 이겨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게 ‘원스’와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짧게 스쳤던 만남.
그 후 세월이 흘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처럼 성인이 되고 2년 정도 후 군대라는 곳을 가게 됐다. 당연히 그러는 동안 나는 ‘원스’를 거의 기억하지 않았다. 제목만 기억할 정도이지 나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스쳤던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제는 이름만 기억날 뿐인 아주 오래된 동창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매일 언제 끝날까 생각했던, 아니 끝날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군에서 보내다가 몸이 안 좋아 병가를 나오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이 싱숭생숭했다. 몸도 안 좋았고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면마취수술이란 것도 당면해야 했기 때문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의 수술을 앞두고 입원 전 날 오후, 혼자 시내를 나갔다 오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뭔가를 체념하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활동적인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서 이겨내고 극복하는 승리자, 능동자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시내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그렇다고 정말 서울 중심지에 가서 격렬한 시간을 보낼 계획은 전혀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기도 그렇고 PC방에 가는 건 뭔가 꺼림칙했다. 그러다 그냥 편하게 평소 가장 좋아하는 일인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는 걸로 오후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때 마침 ‘원스’가 재개봉해서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그 사이 기타로 어쭙잖게 ‘원스’의 주제가인 ‘Falling Slowly’ 연주를 연습한 적도 있었고 하도 ‘원스’가 좋다는 평들을 어딘가에서 많이 본 것 같아 한 번 다시 봐보기로 했다. 여름날의 오후였고 광화문 씨네큐브 안 ‘원스’의 상영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자리에 앉아 멍하니 빈 스크린을 바라보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영화는 여전히 처음부터 저예산 티가 확 나는 영화였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깐. 여기서는 엎드려 자지도 못하고. 나는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꽤 재미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나이가 들었나. 물론 그사이 영화 자체를 더 좋아하게 되어 독립 영화들, 예술 영화들을 꽤 봐와서 영화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도 있었겠으나 이렇게 달라지다니. 중학생 때 봤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들리지 않던 아름다운 음악과 화음이 귀에 들어왔고 그때는 느끼지 못한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 음악에 대한 애정, 두 남녀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하고 애틋한 마음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와 닿았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자느라 결말을 보지 못했는데 엔딩 장면에서 이제는 헤어져 서로를 가끔 생각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Falling Slowly’가 흐르고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모습이 줌아웃 되다가 암전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이 밀려왔다. 음악은 계속해서 흘렀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의 글자들은 파도가 발을 적시는 것처럼 내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상영관 안에 불이 켜지자 영화관을 나왔고 나는 그날 저녁 광화문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나는 더 이상 영화관 안에 앉아있지 않았지만 귓가에는 두 남녀가 부르던 그 노래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더는 영화가 영화 같지 않았고 현실이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영화와 현실 사이 그 어딘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원스’ OST들을 찾아들으며 이별을 겪은 것 마냥 며칠을 앓았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 영화가 이제 인연이 되었다는 걸. 그리고 내 인생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걸.
사실 ‘원스’는 대단한 촬영 기법이나 배우들의 소름 돋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저예산의 한계로 인한 허점들이 곳곳에 보이는 한 아일랜드 감독의 캠코더로 찍은 투박한 영화이다. 그럼에도 그때 무엇이 나를 그렇게 감동시켰을지. 단지 내가 아팠고 힘든 군 생활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영화를 보고 그 음악을 들으면 감동을 느낀다. 그날부터 아직까지도 나를 사로잡는 것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영화 안에 담긴 아름다움, 더 나아가 인연의 아름다움이다. 영화 초반에는 누군가로부터의 답을 애타게 원하며 노래로 부르짖는 한 사람 앞에 기적처럼 다른 한 사람이 우연히 찾아온다. 그리고 뮤지션과 관객이라는 그저 스칠 것 같던 만남도 상대방의 청소기를 고쳐주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며 일상을 함께 하는 인연이 된다. 하지만 이 인연은 모든 인연이 그러하듯 끝이 난다. 여기서 사랑은 여느 동화 속 행복한 결말처럼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맺은 인연은 서로의 삶 속에서 사리지지 않는다. 서로는 멀어졌지만 그 멀어진 사이에는 애틋한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다. 여주인공이 연주하는 남주인공이 선물한 피아노에 남아있고 음악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마음과 기억 같은 것이 음악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고 그게 영화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덧없는 인생,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변화하는 지금 이 시대의 수많은 사라짐 속에 끝끝내 남아있고 살아있어 그 음악은, 그 인연은 더욱 놀랍고 아름답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끝까지 남을 인연이자 음악이었고 덕분에 나는 힘들었던 그 시절 어떠한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얻은 것이었다.
지금은 어느새 전역한 지도 몇 년이 지나 예비군을 가는 처지가 됐지만 아직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때의 그 기억과 감정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딱 그 시기에 재개봉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 영화인지. 나에게 다시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준 영화다. ‘원스’는 제목처럼 ‘한 번’으로는 부족한, 언젠가 한 번 더 영화관에서 만날 날이 온다면 그때 또 찾아가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은 영화이자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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