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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편견을 깨는 방식2023-01-18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편견을 깨는 방식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지난 111일에 개봉한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박혁지, 2022)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땐, SF영화가 떠올랐다. 2006년에 개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호소다 마모루, 2006)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 영화는 SF영화는 거리가 아주 먼 다큐멘터리 영화다.

 

분명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꿈을 꾸며 특정 시간을 보는 소녀라는 건지, 어떤 시간을 희망하는 소녀라는 건지 궁금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는 제목 그대로 시간을 꿈꾸는 소녀가 나온다. 누군가의 미래를 꿈에서 보는 무속인 수진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수진이가 다른 이의 예지몽을 꾸는 무속인이라는 점도 이런 장면이 나오겠지?’ 하는 여러 예상을 하게 한다. 그러나 그 예상도 상당 부분 빗나간다. 이 영화에는 수진이가 긴장한 채 수능을 보러 가는 장면, 대학에 입학해 강의 중 발표하는 장면, 광고인을 꿈꾸는 장면 등이 더 나온다. 예상했던 장면도 나오지만, 느껴지는 시선이 다르다.

 

이렇듯,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여러모로 예상과 짐작을 벗어난다. 박혁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속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늘은 이 영화가 편견을 깨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시야가 조금 넓어진 걸 느낄 수 있다.

 

 

새로운 반복

 

편견은 반복을 통해 강화되는 면이 있다.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자주 노출된 것은 종종 기정사실이 된다. 극영화와 같이 허구화된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째 반복 재생산되어 고정관념이 된 것도 꽤 된다. 특정 국가, 지역, 시기, 인종, 성별, 직업 등 편견과 고정관념의 대상도 많다.

 

무속인도 예외는 아니다. 극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무속인의 모습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몇몇 모습이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신비롭거나 무서운 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는데, 방울을 흔들며 굿하고 있는 모습, 고깔을 쓰고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 등이 생각난다.

 

영화 속 무속인의 모습 중 점을 치는 모습도 생각난다. 외모나 표정, 목소리, 복장, 소품, 그리고 공간 등 세세한 부분은 달라지겠지만,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무속인도 참 많이 봐왔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서도 이런 모습은 나온다. 그런데 느낌이 다르다. 왜냐하면, 수진과 할머니 경원의 모습이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일상의 모습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직업인으로서의 무속인을 엿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들은 매 순간을 신에게 보고한다. “다녀왔다, 다녀오겠다. 잘 봐달라등의 말을 계속한다. 기도나 굿 등도 늘 준비하고 있다. 수진과 경원의 일상엔 언제나 그들의 신이 함께한다. 낯선 일상일 수 있으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다 보니, 익숙해진다.

 

더불어 다른 일상도 반복된다. 수능을 앞두고 긴장한 수진의 모습, 강의 중 발표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등 소위 평범한 일상도 반복된다. 영화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속인, 학생, 손녀 등 다양한 위치에서 살아 온 수진을 보여준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러한 영화 속 일상의 반복은 기존 편견을 흔드는 효과를 낸다. 할머니 손녀 관계의 두 무속인이 신비롭거나 무섭거나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고, 성실하다. 오랜 시간 반복을 통해 강화된 편견이 영화 속 반복으로 깨지는 셈이다.

 

 

숨죽인 시선

 

게다가 그들의 일상은 영화적으로도 매우 담담하게 다뤄진다.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 색감, 편집, 음악 등 영화적 표현 방식에 따라 두 사람의 일상은 전혀 다른 톤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영화적 재해석이나 재구성을 억제한다. 한 발짝 떨어져 조용히 지켜보는 시선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수진과 경원이 열심히 준비해 치루는 의식은 편집과 배경 음악 등의 활용을 통해 연주와 춤사위가 어우러진 화려한 행위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준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길게 보여주고, 때때로 창문 너머에서 보여주는 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종종 보게 되는 인터뷰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수진이가 몇 차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질문하는 감독의 모습이나 목소리 생략된다. 자막도 볼 수 없다. 7년이라는 시간이 뒤섞였지만, ‘7년 전’, ‘2017식의 정보조차 자막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내레이션 즉 해설이 사용된 것도 아니다.

 

마치 이 영화의 카메라가 여러 차례 수진의 뒤를 따라가며 보여주는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는 수진의 뒷모습처럼, 이 영화는 수진과 경원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갈 뿐이다. 또한, 이 영화의 카메라가 여러 차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산속 수진의 집 지붕과 주변 풍경처럼, 이 영화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무언가 밝혀내거나 들춰내려 하지 않는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소개하자면,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수진과 경원의 모습은 얼핏 휴가지에서 장을 보는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다른 이들이 바다에서 제트 스키를 타고, 폭죽을 터뜨릴 때, 그들은 음식과 물품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바닷가라는 같은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그러나 그래서 슬프거나, 이상하거나, 무섭지는 않다. 저런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다.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잔잔한 피아노 음악까지 더 해지면, 이 영화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더 느껴진다.

 

 

- 그래서 수진이의 미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제목을 거쳐, 예고편까지 보고 나면, 그래서 수진이는 어떻게 됐을지가 궁금해진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 광고인을 꿈꾸지만, 주중에는 대학생, 주말에는 무속인의 삶을 살며 버거워하는 수진의 현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궁금증은 해소된다. 그러나 또 궁금해진다. 과연 그녀의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다. 그녀의 과거 7년이라는 시간을, 비록 잠시지만 2시간 남짓 지켜보고 난 후, 궁금해지는 마음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시야를 조금은 넓혀주는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이다.

 

이미지 출처: ()하이하버픽쳐스/()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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