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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 - ‘조선’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재일 동포들의 투쟁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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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 ‘조선’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재일 동포들의 투쟁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이번 글을 쓰면서 유달리 힘들었다. <차별>(2023)이 제시하는 풍경이 내게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재일교포를 다룬 영화는 가네시로 가즈키 원작의
(2001)와 최근 개봉한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를 포함한 ‘가족 3부작’-나머지 두 편은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11)-으로 접한 바 있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조총련이었던 재일교포 1세대 부모와 갈등을 빚는 2세대이며, 국적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차별>이 보여주는 풍경은 달랐다.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재일교포 3세대의 이야기인데도 그들의 문화는 너무 생소했다. 그들은 시위에서뿐만 아니라 학교행사에서도 치마저고리를 입었으며, 교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북한 말에 가까운 억양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곳 아이들의 취미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고 좋아하는 가수는 BTS이다.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같은 해에 광주의 전국 민족극 한마당에 참여하는 게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문화는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감독은 왜 하필 ’운동회‘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했는가? <차별>은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조선학교의 국가 대상 소송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일본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 고급학교 5개교가 제외되었으며, 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후의 소송 과정을 담았다. 조선고급학교는 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되었나? <차별>은 첫 시퀀스와 오프닝 타이틀 후에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자료 화면을 제시한다. 그리고 정부가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를 결정했다는 것을 문부과학성 장관의 담화로 보여준다. “납치문제에 진전이 없는 점, 조총련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교육 내용과 인사 재정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점 때문에 조선학교 무상화 지원은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차별은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 걸까? 재일 동포들이 다니는 민족학교는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하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운영하는 한국학교로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정규교육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에서 운영하는 조선학교이다.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된 것은 조선학교뿐이다. 조선학교는 북한 정권이 대부분의 예산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북한식 교육을 받고, 그들이 배우는 언어도 북한식 표준어인 문화어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조선학교는 북한 학교가 아니라 ‘조선학교’이고, 조선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조선 사람’이다.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에도 조선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있던 재일교포들이 자녀들을 위해 설립한 학교이다. 교포들은 언제든 조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녀들에게 고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고자 했다. 하지만 한 번 정착한 땅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귀환해 새 삶을 이어가기엔 한반도의 정세 또한 불안했다. 200만 명 정도의 재일 동포 중 60만 명이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에 귀환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재일 동포 중 대부분은 남한 출신이었지만 남한은 재일 동포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조선학교를 지원해 준 것은 북한이었다. 따라서 조선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은 북한의 언어와 문화 위주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배우는 것은 북한의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다르다. 살고 있는 지역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북한의 교육과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배우는 언어는 북한어도 한국어도 아닌 ‘재일어’, ‘조선어’이며, 북한과 남한 사람 모두에게 낯설게 들리는 고유의 억양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북한도 한국도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연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이들에게 ‘조선’이란 해방 이전 통일된 나라였던 ‘조선반도’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조국은 상실된 상태이다. 이지연은 재일조선인들이 공유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정서적 연대감이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의 발로(2013:43p)”라고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민족은 북한인도 남한인도 아닌, ‘한반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조선인’이라는 제3의 민족이다. 돌아갈 조국이 분단되었다는 특수한 상황을 가진 디아스포라의 문화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차별>의 전개 방식이 불편했다. <차별>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일상 모습과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그다지 다루지 않고 소송 과정과 집회 장면, 연설 장면 등에 집중한다. 차별의 직접적인 대상인 아이들의 이야기와 현실에 관심을 갖는 대신 국가와 민족 간의 갈등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단독으로 길게 인터뷰를 하는 것은 변호사와 활동 단체의 대표인 어른들이며, 개개인으로서의 아이들이 나와 일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집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율동과 합창에서 단체로 활동하는 모습이 인서트로 삽입될 뿐이다. 가장 많이 얼굴을 비추는 학생은 <귀향>의 주연배우였던 강하나 배우인데, 그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그 배우가 조선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장 길게 비치는 장면은 극단 달오름에서 민족 연극을 하는 모습이다. 김명준 감독이 <우리 학교>(2007)에서 조선학교가 여학생들에게만 치마저고리를 입게 하는 문제에 대해 아이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고 영화 안에 길게 배치한 것과는 대조적인 태도다.
다큐멘터리의 메시지도 지나치게 평평하다. 차별의 주체와 대상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시적인 이분법으로 제시한 뒤, 전체적인 맥락과 배경 설명, 또 내부에서의 다양한 목소리에 대한 묘사 없이 단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나는 이 영화의 메시지엔 동의하지만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린 여학생이 나와 ‘우리 모두는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이미지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감독의 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떻게 표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서 있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차별>의 감독이 카메라를 갖고 서 있기로 한 장소에 동의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언제 어떤 모습을 어떻게 담을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편집한 감독의 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참고문헌
이지연 (2013) 「다큐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본 재일조선인 연구 - 재일조선인의 정체성과 민족의 의미를 중심으로」 , 인문사회과학연구, 14:2, 23-49
박혜경, 박환보 (2022) 「탈식민주의관점에서 본 조선학교」, 한국비교교육학회 비교교육연구 제32권 제1호, 5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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