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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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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데이 <이토록 친밀한 타인> - 그대와 나 사이에 놓인 환상적인 시공간에 대하여2023-05-25
인디스데이 5.24~5.31, 굿, 애타게 찾던 그대, 늦은 산책, 타인의 삶 <이토록 친밀한 타인> 5월 단편영화프로그램, 인디플러스 영화의전당

 

 

<이토록 친밀한 타인> - 그대와 나 사이에 놓인 환상적인 시공간에 대하여

 

 

박예지 (2022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한 타인이란 누구일까? 가족, 연인, 친구 등 거리는 가깝지만 어떤 순간 한 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인디스데이 <이토록 친밀한 타인>에 묶여 상영되는 네 편의 단편은 친밀하고도 낯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균열과 의외의 순간들을 환상적인 색채로 그린다. 귀신을 소환하는 부적이나 특정한 사람들에게서 이중으로 겹쳐 들리는 목소리를 듣는 여자 등 초현실적인 설정으로 먼 거리를 좁히기도 하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들려오는 소음이나 동기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심층 인터뷰로 인해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를 심연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굿 스틸이미지

 

  최이다 감독의 <굿>(2022)은 굿을 하는 무당 할머니 수희와 70년대 해외 록 밴드 더 헤드라이너에게 빠져있는 중학생 손녀 보나의 관계를 다룬다. 보나가 유치원 때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다 사고로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보나에게 음악을 듣지 못하게 한다. 반면 보나에게 있어서 할머니가 신령님을 모시며 하는 제사나 굿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반목하던 이들의 세계는 보나가 할머니의 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혼령을 소환하면서 근사하게 뒤섞이게 된다.

 

애타게 찾던 그대 스틸

 

  <애타게 찾던 그대>(2021) 또한 멀다고 느꼈던 타인이 자신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그린다. 토끼인형 탈을 쓰고 공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건내며 말을 거는 여자가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싶던 여자는 호숫가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던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한다. 이유는 목소리가 좋아서.’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보이는 여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이후 둘이 함께 벤치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시작하는 대화로 그 전말이 밝혀지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으로 시작했다가 빠르게 전환되는 반전의 쾌감이 상당하다.

 

늦은 산책 스틸

 

  초현실적인 설정을 뚜렷하게 가져가는 앞의 두 작품과 달리 <늦은 산책>(2023)은 시공간의 어긋남을 영화적 형식으로 구현하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은주와 윤영은 함께 사는 집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들은 소리에 대해 상대에게 이야기 하지만 그 소리는 공유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정체 불명의 소음은 연인 사이의 균열을 벌려놓고, 급기야 윤영이 그 소리를 따라 사라지면서 연인은 더 이상 공간조차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

 

타인의 삶 스틸이미지

 

  마지막 작품인 <타인의 삶>은 미스터리한 설정의 인터뷰로 한 사람이 살아온 삶과 쌓아온 관계를 빠른 스피드로 무너뜨린다. 평범한 회사원인 규호는 유명 작가 영현에게 1시간 동안 15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인터뷰 제안을 받고 작업실에 찾아간다. 작가가 제시한 인터뷰의 룰은 녹취한 내용을 자신의 글에 사용하는데 동의하는 것과 작가만 질문을 한다는 것뿐. 그곳에서 규호는 뜻밖에도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한 명인 민주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정황에 대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의해 규호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가까운 타인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며, 한 공간 안에 있지만 한 없이 낯설기도 하고, 친하다 생각했지만 실은 상대방 쪽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토록 친밀한 타인>에 묶인 단편들은 익숙하고 낯선 타인과의 관계를 다양한 영화적 설정으로 실험한다. 이 중에 단 한 편인 <굿>만이 타인과 나의 세계를 공존시키는 법을 발견하는 결말로 끝난 것은 인상적이다. 타인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지 않고 자신을 향해 돌려버릴 때 영화의 중심은 관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 또는 영화적 형식이 된다. 그게 영화적으로 더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이토록 친밀한 타인> 이라는 제목 안에 묶인 단편들 중 상당수가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실패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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