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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라는 달리기를 응원하는 영화 <스프린터>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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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달리기를 응원하는 영화 <스프린터>
송영애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스프린터’는 육상이나 수영 종목의 ‘단거리 선수’를 의미한다. 최승연 감독의 새 영화 <스프린터>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둔 남자 육상 100m 선수 3명이 등장한다. 은퇴를 미루고 있는 신기록 보유자 현수(박성일),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싶은 정호(송덕호), 팀 해체 위기를 맞은 한때 유망주 준서(임지호)는 열심 달리는 중이다.
세 주인공이 모두 단거리 선수이지만, 영화 <스프린터>는 종종 보아온 범주의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개인 종목이다 보니, 팀 내 갈등, 화해, 협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굴의 의지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결국 성공하는 개인 영웅의 이야기나 성장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선발전에서 3위까지 국가대표가 된다고 하니, 세 사람의 경쟁 관계를 심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육상 경기라는 새로운 세상을 목격하는 재미를 크게 주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 보는 내내 익숙한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조용히 응원한다. 30대인 현수, 20대인 정호, 10대인 준서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인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스프린터>가 그들과 우리, 나를 연결하며 응원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싶다.
인생과 달리기의 관계
인생은 종종 달리기에 비유된다. ‘결승점’, ‘출발 선상’, ‘바통 터치’ 등의 단어와 ‘인생은 장거리 경주다.’라거나 ‘오늘도 달린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말이다. <스프린터>는 이런 비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인생과 달리기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세 주인공을 통해 보여준다.
모두가 늘 전력으로 달리는 건 아니다. 달리다 쉬기를 반복하다 그때그때의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여러 달라기가 모이다 보면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가 되는 것이다.
현수, 정호, 준서는 국가대표를 목표로 달리는 중이다. 1차전, 2차전을 통해 3위까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10초라는 짧은 순간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다. 현수는 여전히 신기록 보유자지만, 실력은 내리막 중이다. 소속팀도 없어서 홀로 연습할 공간 찾기도 여의치가 않다. 정호는 현재 1위를 달리는 중이지만, 압박감에 편법을 쓰고 싶어진다. 준서는 한때 유망주였지만, 정체 중인 상황이다. 그런데 학교 육상부가 해체될 거란 소식을 듣고는 절실해졌다. 더 잘하고 싶어진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달리기에 대한 열망으로 인생의 한 막을 채워가고 있는 세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일단 그들의 바로 앞 목표는 국가대표다. 그들 중 누가 이번 목표의 결승점에 다다를까?
선택의 순간
세 사람은 모두 선택의 순간도 맞고 있다. 현수는 은퇴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남들은 이미 은퇴할 시기가 지났다고 하지만, 본인은 아직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속팀이 없어서 연습할 공간도 스스로 찾아다니면서도 포기가 안 된다. 도대체 이 달리기를 언제 멈춰야 할까?
무언가 그만둘 시점을 찾는 건 늘 어렵다. 왠지 포기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이왕 시작했으니 일단 끝까진 가야 할 것 같지만, 과연 그 끝은 어디인 건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일상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고민이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이 기대만 하지 않을 때, 힘들게 입학한 대학의 학과 생활이 예상과 다를 때,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이 불편해질 때, 건강을 위해 시작한 아침 운동이 버거워질 때 등등 우리는 매 순간 그만둘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언제 그만둬야 할까? 그만둬도 되는 걸까? 현수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다.
정호는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약물의 유혹에 빠졌다. 걸리면 선수 인생도 끝이라는 걸 알지만, 쉽게 포기가 안 된다. 그동안도 안 들켰으니, 앞으로도 안 들킬 것 같다. 비록 반칙이지만, 아무도 모른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라는 고민 역시 낯설지 않다. 우리는 종종 유혹에 흔들리며 고민한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준서는 학교 육상부가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고,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위기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까지만 육상부 해체 결정을 보류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방황 끝에 다시 해보겠다는 선택을 용감하게 했지만, 코치가 이상하다. 운동화를 주며 강훈련을 시킬땐 언제고, 이젠 자꾸 쉬란다.
사실 준서의 코치 지완(전신환)도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육상부가 해체되어야만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단다. 제자 준서를 생각해 육상부 해체 결정을 미뤄달라 학교 측에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되면 정규직 전환은 취소된다는 답을 받았다. 무리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고민 중이다. 준서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아 외면 중이다.
<스프린터>에서 그들이 맞고 있는 선택의 순간은 모두에게 익숙한 순간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며, 응원하게 된다. 더불어 주변도 둘러보게 된다. 나는, 우리는 잘살고 있는가?
- 따로 또 함께 달리기
현수, 정호, 준서는 트랙에서는 철저히 홀로 달리지만, 트랙 밖에서는 코치, 가족, 친구와 함께한다. 현수의 아내 지현(공민정)은 코치를 자처한다. 지현 역시 운동선수 출신 헬스 트레이너로 현수의 고민을 잘 안다. 정호가 유혹에 흔들릴 때 코치 형욱(최준혁)도 함께 흔들린다. 제자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준서의 곁에는 정규직 전환 문제로 갈등 중인 지완이 있다. 국가대표가 되어 봤자 별고 없다는 독설도 내뱉었지만, 결국은 “후회 남지 않게 열심히 해”라며 응원한다.
그렇게 따로 또 함께 달리는 이들의 모습은 두 차례 선발전 장면에서 더 빛을 발한다. 마지막 2차전에서 더욱 그런데,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빨간 트랙, 노랗고 파란 관중석 등이 마냥 원색 톤, 밝은 톤은 아니지만, 꽤 상쾌하다.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어 집중하게 되는 그들의 표정과 움직임도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현재와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다.
<스프린터>에는 선발전 결승점을 보여주며 끝나지 않는다. 이후 각 인물의 상황도 조금씩 더 보여준다. 국가대표 명단도 확정적으로 발표되지 않는다. 이번 달리기는 끝났지만 그들의 달리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도 우리도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하고, 달리고, 성공 혹은 실패하고, 쉬고, 다시 고민하고, 선택하고, 달리는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모두의 짧고 긴 수많은 달리기를 응원하는 영화 <스프린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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