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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살의 이미지들, <헬리오폴리스>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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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이미지들, <헬리오폴리스>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2021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알제리에 대해 ‘프랑스 식민지 이전에 알제리가 국가로서 존재했었는지’ 의문을 표하면서, 현재 알제리가 써 내려가고 있는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증오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정치적 전략과 맞물린 이러한 마크롱의 발언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방식이다. 한국은 늘 다른 국가의 지배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국가라든지,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일본에 대한 증오를 교육하고 있다든지, 일본에서 들려오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제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후 2022년, 알제리 독립 60주년이 되던 해에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와 알제리가 공동의 역사위원회를 꾸리고, 식민 역사를 재평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21년의 발언이 여러 정치적 전략과 맞물린 발언이었듯, 2022년의 약속도 사회 경제적 전략과 맞물린 발언이었다.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는 18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1962년 알제리가 해방될 때까지 알제리에서는 무수한 항쟁과 독립운동이 있었고, 그만큼 무수한 학살과 탄압이 있었다. <헬리오폴리스>는 그런 알제리 독립의 역사 가운데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바로 세티프와 구엘마에서의 대학살이다.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 알제리인들이 독립을 염원하며 거리로 뛰쳐나오자, 프랑스는 이를 진압할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보복을 가하였다.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들을 경찰과 군인들이 막아서면서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깃발을 들고 있던 12살 소년 사르 알 부지드가 총격으로 사망하자 알제리인들의 분노와 독립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시위대들의 행진이 폭동으로 확산되면서 ‘피에 누아르’라 불리는 알제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프랑스인들에 대한 폭력이 거세져,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그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알제리인들은 4만 명이 넘게 학살당했다. 알제리-프랑스인 민병대까지 동원된 무차별적 폭격으로 한 알제리인 마을은 오직 3명만이 살아남기도 했다. 이러한 학살이 도화선이 되어 1962년 알제리의 독립까지 계속된 1954년의 알제리 전쟁이 일어난다.
<헬리오폴리스>는 오랫동안 그 이전 세대부터 프랑스에 충성해 왔던 알제리인인 아버지 모크다드(아지즈 부크루니)와, 그의 아들 마흐푸드(메디 람다니)를 중심으로 이 역사적인 사건을 그려 나간다. 모크다드의 가문은 프랑스로부터 여러 훈장들을 받을 정도로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프랑스 본토로 유학 갔던 그의 아들 마흐푸드는 알제리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입학 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알제리로 돌아온다. 이러한 명백한 차별 속에서도 여전히 프랑스는 알제리인에 대한 동화정책을 주장하고 있었고, 마흐푸드는 그러한 부당한 현실에 더 이상 아버지처럼 눈감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마흐푸드가 적극적으로 알제리 민족주의 단체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프랑스인들이 알제리인들에 대하여 동화정책을 펼치면서도 차별을 지속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간극은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본토에서는 식민지로서의 알제리와 알제리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 그리고 알제리에 살고 있는 알제리인을 어디까지나 자신들과 분리된 영토와 사람들로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알제리 영토 내에서의 특수성은 존중하지만, 프랑스 본토에서 그들이 진정한 프랑스인으로서 그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흐푸드가 ‘폴리테크니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알제리의 독립 이후 프랑스 본토로 돌아온 피에 누아르들의 삶이 척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이러한 사고방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령의 알제리에서 알제리-프랑스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늘 알제리인들에 대한 차별과 거리감은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알제리인들이 ‘개종’하지 않는 한, 그들을 향한 분리는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프랑스들이 생각했던 ‘동화’는 항상 일방향적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알제리인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알제리의 독립은 8년이라는 긴 전쟁 끝에 쟁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헬리오폴리스>의 모크다드와 마흐푸드는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민족자결권을 위해 싸운 마흐푸드가 겪은 학살은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기도 했다. 마흐푸드는 그의 죽음만은 막기 위해 프랑스인에게 무릎을 꿇고 알제리인들을 ‘개’라고 지칭하도록 강요받는 모크다드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헬리오폴리스>는 모크다드의 앞에서 처형되는 마흐푸드와 그의 동지들의 죽음을 고야의 <1808년 5월 3일>처럼,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처럼, 그리고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처럼 표현한다. 비인간적인 학살의 이미지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세계의 곳곳에서 늘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처형의 순간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후회하던 마흐푸드에게 다시 알제리의 독립을 부르짖게 만드는 용기의 순간이기도 하다. 또한 이 순간은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알제리인들은 ‘개’라고 말하던 모크다드에게 도망치고 회피하기보다는 깃발을 들고 싸울 것을 다짐하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크다드 역시 자신이 목격했던 마흐푸드의 죽음처럼 자신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 자명하지만, <헬리오폴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위해 피난길에서 돌아오는 모크다드의 위대한 한순간을 비춘다. 죽음에 대항하는, 죽음으로 대항하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것이 독립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헬리오폴리스>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희생되어 간 사람들의 정신을 그려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사건들과 마음들은 단지 알제리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 것이다. 무수히 반복되는 학살과 그 이미지들은 그렇게 역사를 뛰어넘어 도착한다.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이미지들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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