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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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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만분의 일초>: 자승자박, 결자해지2023-11-27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이미지


<만분의 일초>: 자승자박, 결자해지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영화 <만분의 일초>가 국내 최초의 검도 소재 영화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러면 검도에 대한 스포츠 영화인가 기대하고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영화는 주인공의 마음과 감정을 파고드는 길을 선택했다고 느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이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를 묘사하기 위해 발레를 소재로 선택한 사례와 비슷하다. 드럼 연주 장면을 마치 스릴러나 액션 영화처럼 묘사하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도 비슷한 사례로 떠올릴 수 있겠다. 물론 <만분의 일초>는 검도로 시작해서 검도로 끝나는 영화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고나서 검도의 규칙이나 기술, 전략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걸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목표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진짜 목표는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한 남자의 정신적인 고통과 번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이미지2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한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주종혁 배우)에게는 어린 시절 아픈 과거가 있다. 그의 형이 태수(문진승 배우)와 싸우다 의도치 않게 죽게 되었다. 가족들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빠져든다. 검도 사범인 재우의 아버지는 재우의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으로 인생을 포기하려는 소년 태수에게 검도를 배우길 권유하고, 가족들 몰래 태수에게 검도를 가르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재우는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고 의절한 상태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재우는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태수를 발견한다. 재우는 태수에게 어떤 마음인 걸까. 설마 그를 죽이려는 걸까. 아니면 그를 검도로 이겨서 태수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는 것이 목적일까. 영화는 재우의 과거사를 숨긴 채 미스터리 같은 구조로 재우의 현재와 과거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영화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복수의 과정을 따라가는 복수극 같기도 하고, 검도의 1인자와 2인자, 라이벌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을 그린 스포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이 두 가지의 예상된 경로를 모두 뛰어넘어 다른 차원으로 향한다.


영화 <만분의 일초>스틸컷 이미지3


<만분의 일초>는 우리에게 검도의 규칙이나 기술, 전략을 잘 알려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검도 대련의 과정은 충실히 보여준다. 복면 착용, 마스크 착용, 상호간의 인사, 대결, 마지막으로 묵상. 이 모든 과정은 경건한 종교적 의식과 같다. 이는 검도가 서로간의 예의와 정신적 수양을 강조하는 스포츠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가 스포츠의 승리에서 오는 쾌감보다는 주인공 재우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재우의 혼란한 내면을 검도 장면으로 묘사하기 위해 촬영과 편집, 사운드에 많은 공을 들였다. 마스크 사이로 비치는 재우의 눈빛, 거친 숨소리와 기합소리, 손과 발의 예민한 움직임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재우의 오른손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이미지4


재우는 태수와의 대련이 끝나고 전력분석실에서 본 자신의 대련 영상을 통해 죽도를 잡은 재우의 오른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음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공격할 때 사정거리는 짧아지고, 방어할 때는 반응이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도무지 힘이 빠지지 않는 이 오른손은 재우의 마음 그 자체다. 태수를 이기고 싶은, 혹은 죽이고 싶은 마음. 아버지에 대한 원망. 이 모든 번뇌가 재우의 오른손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재우는 자신을 괴롭히는 번뇌들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불가에서 전해지는 선문답 하나가 생각났다.

 “스님께서는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해탈의 법문을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느냐?”

 “아무도 묶은 사람이 없나이다.”

 “너를 묶은 사람이 없다면서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느냐?”


재우는 어쩌면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답을 실행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자신이 스스로를 옭아맨 속박은 오직 자신만이 풀 수 있다. 영화 <만분의 일초>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컷 이미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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