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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취미생활> 가정폭력 피해자가 할머니의 품에서 꾼 하룻밤의 꿈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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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취미생활> 가정폭력 피해자가 할머니의 품에서 꾼 하룻밤의 꿈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가정폭력을 겪고 이혼한 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있는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온 정인(정이서). 그러나 정인이 돌아온 당일 할머니는 자다가 숨을 거두고, 정인은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이웃의 농사일을 거들며 홀로 생계를 잇게 된다. 그러던 정인 앞에 도시에서 살던 혜정(김혜나)이 하얀 벤츠를 몰고서 등장한다. 혜정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인 ‘원장댁’으로 이사 온 뒤, 딱히 볼 것 없는 시골 마을에 휴양을 온 사람처럼 행동하며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시골에서 혼자 사는 젊은 여자인 둘은 서로 호감을 느끼고 친해지게 된다.
<그녀의 취미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정인이 박하마을 사람들에게 당하는 괴롭힘에 대한 묘사와, 그 과정을 목격한 혜정에 의해 구원받는 서사이다. 하지만 여기엔 의아한 점이 있다. 영화는 정인이 어두운 밤에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정인의 얼굴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한 듯 멍이 들어있다.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전 남편의 폭행’이라는 사건은 마지막에 정인이 남편을 응징하는데 성공하면서 종결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화도 끝난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왜 시골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이라는 사건과 혜정이라는 제 3의 인물이 필요했던 걸까?
<그녀의 취미생활>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혼자 사는 젊은 여자에게 불친절하고 위협적인 시골문화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정인의 고향 마을은 <리틀 포레스트>(2018)에 나왔던 시골과는 다른 곳이다. 혼자 사는 여자라 구박을 하며 부려먹고,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 집에 아무 때나 들어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가고, 남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성폭력을 시도하며 위협을 가한다. 이 마을은 시골이라기보다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의 배경인 섬 마을에 가까운,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이다. 하지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다룬 섬과 달리 박하마을은 동시대에 존재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한 없이 핍진성이 희박한 공간이다.
이 곳으로 오는 도로는 모두 잘 포장되어 있고 마을이 넓은데도 불구하고 편의점이나 체인점이 아예 없으며, 배달이 되는 식당이라고는 중국집 밖에 없을 정도로 고립되고 낙후되어 있다. 그렇게 고립되어 있는 마을 치고 마을 토박이들은 서울말을 살짝 변형한 어색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그나마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어느 지역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이들의 태도 또한 이상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인이 단지 가진 것 없는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구박하고 천대하며 부려먹지만 아무 연고 없는 외지인인 혜정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자기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다 다시 내려와 농사일을 하는 젊은 청년에게 이렇게 대하는 시골 사람들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정인은 김복남처럼 평생을 섬 안에 갇혀 산 여자도 아니고,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갇혀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조건이나 서사에서 주어진 단서들과는 별개로 이 영화 안에서 정인은 마을을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정인은 수시로 강간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집에서 할머니가 숨겨둔 비자금 2억 5천만원을 발견한 뒤에도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공간과 캐릭터의 설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첫 씬에서 정인이 밤에 고향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에게 안겨 잠든 후 일어난 모든 일이 정인의 꿈이나 상상이라면 어떨까? 할머니는 정인이 돌아온 당일 밤에 잠자다 갑자기 숨을 거두며, 정인은 다음 날 아침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밤이 될 때까지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눈물을 흘리는 정인의 얼굴엔 첫 씬에서 본 멍이 그대로 들어있지만 집 안에 시체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시신은 어디로 갔을까?
이 영화는 정인이 할머니 품 안에서 하룻밤 사이에 꾼, 가정폭력을 저지른 전 남편에 대한 복수의 꿈이 아닐까? 잠시 서울에서 살다 돌아왔는데 굳이 고향에서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고 아무리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해도 타지 않고 새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정인의 캐릭터는 이질감과 비현실감을 자아낸다. 아무 연고도 없이 관광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식당도 없는 시골 마을에 집을 사서 정착하러 온 혜정은 어떤가? 혜정은 박하 마을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잠시 바캉스를 하러 온 사람처럼 행동하며, 마을 사람들도 혜정에게 텃세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그녀를 관광객 대하듯 거리를 둔다. 어떤 외지인이 마을 토박이에게 함부로 반말을 쏘아붙일 수 있으며, 어떤 시골 마을 토박이가 그런 말을 하는 외지인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혜정이 사는 저택 앞에는 북쪽에서 나는 침엽수가 있는데 왜 바로 그 건너편 아래 살고 있는 정인의 집 앞에는 남쪽에서 나는 활엽수가 자라고 있는가? 혜정이 나오는 저택 컷들은 마치 정인이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것을 꿈꾸며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본 바닷가 저택의 인테리어 사진들을 오려 붙인 것처럼 어색하다. 이 모든 어긋남과 비현실성은 오프닝 씬 이후가 모두 정인의 꿈이라고 했을 때 설득력을 가진다.
영화에서 ‘취미’를 묘사하는 것 또한 그렇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그녀의 취미생활’이 미스테리어스한 캐릭터인 혜정이 감추고 있었던 비밀, 즉 살인을 하는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혜정이 살인을 하는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살인은 마지막에 정인이 전 남편에게 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암시적으로만 묘사될 뿐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취미는 정말 말 그대로의 취미생활이다. 정인은 혜정과 함께 드립 커피를 내리고 바이올린을 켜고 홍차를 마시고 꽂꽂이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운전을 배우는 등 각양각색의 취미생활을 한다. 마치 한 번의 꿈으로 모든 소원을 성취하겠다는 듯이.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정인은 하룻밤 동안 할머니의 품에서 자신의 기구한 과거를 반추하고 막막한 미래를 떠올리다 자신의 모든 소망을 이뤄줄 꿈을 꾼 게 아닐까? 어렸을 때 자신을 돌봐줬지만 이제 치매에 걸려 자신이 돌봐야 하는 대상이 된 할머니가 집과 막대한 비자금을 남기고 죽은 뒤,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기 위해 어디선가 찾아온 아름답고 강인하고 부유하지만 잔혹한 여성과 함께 구질구질한 마을 사람들과 폭력을 행한 남편에 대한 복수를 거침없이 행하는 꿈을? 하지만 그러기에 정인이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들은 그들의 말투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고, 실제 그들이 정인에게 보였을 다면적인 행동을 상상하기에 정인은 현재 너무 피해자의식에 갇혀있는 상황이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기에는 사실 그들을 그토록 미워하진 못했다. 그렇기에 영화 안에서 마을 사람들에 대한 복수는 이중으로 생략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릴러 영화에서 러닝 타임 내내 주인공을 괴롭혀 왔던 인물들을 죽이는 장면을 통째로 꿈처럼 생략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복수 자체를 판타지로 연출했다고 하기에는 정인의 전 남편에 대한 복수가 너무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순백의 옷을 입고 장총으로 피의 복수를 끝낸 정인은 혜정의 흰 벤츠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온다. 두 여자는 시무룩하고 덤덤한 얼굴로 각자의 상념에 빠져 드라이브를 한다. 마치 이제 신나는 일은 다 끝났고 곧 꿈에서 깨야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영화는 부감샷으로 잘 포장된 도로를 달려 나오는 벤츠를 비추지만, 차가 도로 끝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끝나고 만다. 첫 쇼트에서 박하마을로 향하는 정인의 걸음을 그린 영화는 마지막 쇼트에서 박하마을을 떠나려 하지만 구불구불한 길을 영원히 맴돌고 있는 듯한 그들의 차를 보여주며 끝난다. 정인은 아직 박하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 꿈에서 깬 정인을 기다리는 현실은 정인이 꿈에서 본 것만큼 환상적이지도, 끔찍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을에 돌아왔던 것처럼 언젠가 자신의 두 다리로 현실의 땅을 단단히 밟으며 혼자 힘으로 마을을 떠날 정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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