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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세계, <괴인>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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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세계, <괴인>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이정홍의 <괴인> 포스터는 매우 독특하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을 가진 남자(박기홍)가 소용돌이 모양의 이상한 안경을 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 아래는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고 쓰여 있다. 우리는 이상한 사람일까? 남자는 분명 포스터 정면을 향해 있는데, 그의 눈은 장난감 같은 이상한 안경 때문에 보이지 않아서 그가 우리를 정말로 응시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는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있고, 이상하게 왜곡된 자신을 비춰보고 있을 수도 있고, 정말로 우리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응시에 답하기가 부끄럽고, 쑥스럽고, 어려워진다. ‘나는 나의 이상함을 들키지 않았는데, 이상한 사람이라는 그의 말에 괜히 항변했다가 이상함을 들켜버리면 어쩌지?’
<괴인>은 포스터처럼 그런 불안을 고조시키는 영화다. 지극히 평범하게 흘러가는데 모두 이상하다. 포스터에서 이상한 안경을 쓰고 있는 건 주인공 기홍(박기홍)이다. 기홍은 영화에서는 평범한 안경을 쓰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만 그대로다. 기홍은 목수인데, 가구를 만드는 목수는 아니고 인테리어 목수다. 영화 속에서 기홍은 가구 만드는 목수에 대해 돈 많은 사람들의 취미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에 비해 그가 하는 일은 때로는 일용직 노동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기홍은 자신이 함께 일하는 그들과 자신의 다름을 인정받고 싶어 자신을 단숨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만들어 줄 큰 계약을 꿈꾸지만, 그 꿈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일당을 부풀리기도 하고, 세 들어 사는 집 전체가 자기 집이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님 앞에서는 도망치면서 더 그럴듯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은 그는 정말 괴인인가?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작은 거짓들이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그의 삶에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건 자신의 차에 뛰어내려 지붕을 내려앉게 만든 범인을 찾아다니게 되면서이다. 오밤중에 집주인이자 친구가 된 정환(안주민)과 범인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인테리어 시공이 끝난 피아노학원의 원장 아영(이소정)을 괴롭히기도 하고, 길 가던 하나(이기쁨)를 붙들고 차를 고장 낸 범인이 아닌지 묻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 우연한 만남에서의 물음은 그의 삶을 더 이상한 지점으로 이끄는데, 하나가 기홍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으로 찾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나와 친구가 다니던 피아노학원에 몰래 들어가거나 다른 곳을 전전하면서 잠을 자는 처지이면서, 기홍에게 다시 찾아와 자기가 범인이라고 고백하고 망가진 차의 지붕을 수리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놀랍도록 윤리적이면서 윤리적이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하나는 잔잔한 거짓들에 익숙해져 있던 삶에 돌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괴인이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하나의 등장으로 인한 깊은 깨달음의 순간을 비추면서 끝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오히려 <괴인>이 가진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지점으로 이끄는 힘일 것인데, 소녀를 만난 기홍과 정환, 그리고 정환의 아내 현정(전길)의 삶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환은 여전히 타인에게 무례할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기홍과 현정은 여전히, 그리고 새로운 거짓과 함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작은 거짓들에 만성이 되어버린 우리의 삶은 변할 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괴인이다. <괴인>은 그렇게 우리를 응시한다. 답하기가 부끄럽고, 쑥스럽고, 어려운 그런 응시를.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
<괴인>이 지칭하는 ‘당신’은 누구일까? <괴인>의 삶과 매우 밀착된 묘사들은 지금의 30대, 40대 초반을 향해있는 듯하다. <괴인>은 SNS 맛집들, 바, 감성 카페, 캠핑용품, 테니스 등 공간과 문화를 배회하는 삶들 비추고, 자신의 삶을 한순간에 뒤바꿔 줄 ‘대박’을 꿈꾸고 ‘카페나 차릴까’를 내뱉는 삶들을 비춘다. 하나와 함께 카센터에 간 기홍이 카센터 주인에게서 듣는 말은 적나라하게 지금의 ‘월드컵 보고 자란 세대들’을 묘사하는데, ‘4강 신화’,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구호들이 이 세대를 ‘대충 다 잘 되겠지’하면서 흥청망청 쓰고 주제 파악을 못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카센터 주인의 말은 기홍을 향해 있기도 하고, 우리를 향해 있기도 하다. 우리는 그럴듯한 꿈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일상을 거짓으로 점철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하나는,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을 보지 못했고 이탈리아전이 끝나고 차 위에 올라가 뛰었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는, 기홍과 기홍의 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이기도 하고 환상의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는 하나는 기홍의 작은 호의도 돌려주러 다시 찾아온다. 부끄러움을 아는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괴인들이라서, 이상하고 평범해서 말이다. 이렇게 <괴인>은 신기하게도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균열시키면서 균열의 틈새로 우리가 애써 감추어 놓은 것들을 들춘다. 특별한 ‘악인’은 아니지만, 오히려 선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어디서부턴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우리, 어른, 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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