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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와 호진의 <행복>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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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와 호진의 <행복>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주희(김주령)는 병원에서 유방에 있는 종양이 악성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는다. 이 영화가 모티프로 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까지의 클레오>(1962)의 첫 장면에서도 클레오는 병원 검진을 받고 나오는 길에 점성술사가 본 타로에서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점괘를 듣는다. 병과 죽음에 대한 불안에 휩싸인 클레오가 5시부터 7시까지 보내는 시간을 다룬 바르다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그린다.
연기를 그만두고 연극 영화과 교수가 된 40대의 주희는 좀처럼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5시부터 7시까지 주희의 연구실과 그 앞 복도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곧 졸업을 앞둔 제자가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아도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를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며 주희에게 그림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복도에서 만난 동료 교수가 일방적인 하소연을 털어놓기도 하며, 지난 학기 수업을 들은 학생이 떼를 쓰듯 성적 정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가 사랑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 주희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않은 채 일상적이고 차분한 태도로 모두를 대한다. 대화 안에서도 그녀는 말하기보다 듣는 존재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과 그걸 들어주는 태도에서 주희가 어떤 사람인지를 유추할 수 있을 뿐, 그녀는 결코 자신의 신변과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맘 편히 꺼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클레오의 상태와 변화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었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달리 이 영화에서 주희의 일상은 같은 시각 남편인 호진(문호진)의 일상과 병치된다. 호진은 연극 연출가로 곧 무대에 올릴 연극의 연습을 날이 선 채로 진행하고 있다. 그가 연출하는 연극은 부부의 위기를 다룬 내용이다. 연극에서 아내는 과잉된 감정으로 히스테리를 부리고 남편 또한 비수 같은 말로 아내를 상처 입힌다. 호진은 개막 직전임에도 새삼스럽게 배우들에게 아내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배우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제각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한다. 백 스테이지에서 배우들은 이 연극의 내용이 사실 주희와 호진의 관계를 다룬 거라는 뒷담화를 한다.
이미 파국을 맞이해 갈라설 일만 남은 상황에서 왜 주희와 호진의 일상이 병치되는 걸까?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보다는 바르다의 다른 작품인 <행복>(1965)에 더 가까워 보인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타인의 시선에 비친 자기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되어 있던 젊은 배우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점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내면의 심경이나 깨달음보다는 가부장제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학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주희는 연기를 그만두고 교수가 되었지만 호진은 계속 연극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주희가 호진이 하는 일을 지지해 주기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호진이 성마른 태도로 배우들을 윽박지르고 꾸짖는 모습이나 동료가 호진에게 하는 핀잔들로 보았을 때 주희가 호진의 성격을 받아주고 견뎌주는 감정노동 또한 도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희는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영화 안에서 호진의 시점으로 재창작된 과거의 모습이 거듭 등장하며 어딘지 액자 안에 갇혀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주희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도 그렇다. 바르다의 작품이 클레오에게 온전히 집중한 뒤에 마지막에 클레오가 병을 진단받은 후에도 “이제 겁나지 않아요. 지금 나 행복한 거 같아요”란 말을 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걸로 영화를 끝맺었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주희의 모습은 사뭇 허망하다. 주희는 졸고 있던 자신을 깨워 길을 묻는 택배 기사에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고 난 뒤에 길을 찾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녀가 이후에 정말 암을 진단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렀는지는 통째로 생략되어 있다. 그 대신 러닝타임을 채우는 것은 주희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걸어간 택배 기사가 마주치는 연극 장면과, 주희가 죽은 후 지인들이 여는 추모식이다.
이 추모식에도 또 한 편의 연극이 벌어진다. 주희와 호진이 처음 만났던 작품인 <행복> 이 란 이름의 연극이 추모식에서 상연되고, 복잡한 표정으로 이를 보는 호진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연극이 끝난 후 주희가 없는 아파트에서 지인들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바르다의 <행복>의 마지막 장면과 비견될 정도로 냉소적이다.
주희는 과연 남편과 처음 만났던 <행복>이란 연극을 아름답게 기억한 채로 죽었을까? 주희와 호진은 영화 속에서 같은 시간 동안 등장했지만 그들의 삶에 있어서 그 시간은 둘 사이의 어떤 접점도 없이 전혀 다른 삶의 과정을 통과하던 시간이었다. 그런 만큼 영화가 온전히 죽음을 앞둔 주희에게 집중하지 않고 호진의 일상이나 연극 자체에 집중하는 장면들은 주희를 소외시키고 주희라는 한 인간 자체보다 연극이라는 예술에 대한 찬사를 보내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주희라는 캐릭터가 한 명의 살아있는 존재로 생생하게 다가왔다면 그건 온전히 주희를 연기한 김주령 배우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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