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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빔과 겹침의 미학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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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과 겹침의 미학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12월 6일에 개봉한 아만다 김 감독의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백남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에 따라 호기심, 경외감 등 여러 감정을 선사하는 영화다. 그리고 백남준의 인생, 작품과도 여러모로 닮은 영화다. 그 유사점을 요약하자면 비빔과 겹침이 정도 될 듯한데,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략적인 영화 소개라고도 하겠다.
- 비빔, 뒤섞임, 그리고 방대함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현대 예술을 확장한 세계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보다 좀 더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면,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보는데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보여주는 방식도 친절하진 않기 때문이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전 생애를 담았으나, 시간 순서대로가 아니다. 한국, 일본, 독일, 미국 등 그가 자라고, 공부하고, 활동한 세계 각지에서의 일들이 국가별 구분 없이 나온다. 개인사적 이야기를 비롯해 작품 활동 관련 이야기까지 이야기의 범위는 매우 넓으나, 일목 요연하지 않다. 게다가 그의 작업이 명쾌하게 음악, 미술, 영화 등으로 규정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확장된 예술 작업이다 보니,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예술 분야가 다 등장한다. 시대, 국가, 분야 등이 온통 뒤섞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인 차원으로 그의 수많은 작품,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당시 사진, 영상, 글 등을 비롯해 최근에 촬영한 당시 동료의 인터뷰까지 그의 특정 시기 행보나 작품 역시 시공간 초월, 장르 초월 정보로 입체적이다 못해 폭발적으로 소개한다. 그에 대해 증언하는 과거 혹은 현재 인터뷰 속 동료 혹은 예술계 인사 역시 미술가, 작곡가, 연주자, 비평가, 철학자, 전시관 관계자 등등 스펙트럼이 방대하다. 그들의 증언이 다채로운 건 당연하다.
- 겹침, 탈경계, 그리고 모호함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기존 예술 분야를 총망라함은 물론이고, 기존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그의 작업 중 TV아트나 비디오아트로 불리는 분야는 기존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 수백 대의 TV가 조각물처럼 설치되고, 추상영화와 같은 영상이 재생됐다. 그리고 20세기 현대음악이 곁들여지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거리에서 행위 예술과 같은 공연을 직접 하기도 했다. 분명 전에 본 적이 없는 퍼포먼스였지만, 음악 혹은 연극 등과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었다. 특히 예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계, 기술도 활용했다. 그저 새로운 통신 미디어 기술로 인식했던 TV, 비디오 등을 작품의 소재이자 형식이자 내용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작업은 비비고 뒤섞다 못해, 겹치고, 경계를 무너뜨려 정체성이 모호해졌으나, 그런 수많은 시도와 실험을 통해 완전히 새로워졌다. 이 영화의 제목에 사용된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그의 1975년 전시 작품명이기도 한데, 공중에 매달린 13대의 TV 브라운관에는 주사선을 조작해 만든 인공 달의 여러 이미지를 담았다. 분명 자연 달은 아니지만, 달과 TV의 연결점을 드러내는 면도 있다. 1960년대 이후 대중화된 TV를 보며 울고 웃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 하늘의 달을 보며 꿈꾸고, 소원도 빌었다. 해석의 여지, 새로운 의미 부여의 가능성이 무한하다.
이 영화는 110분짜리 극장 개봉용 영화라는 포맷 안에 방대한 내용을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통해 담아냈다. 몇 가지만 살짝 이야기해 보자면, 촬영, 편집, 녹음 등의 과정에서 익숙하게 보던 다큐멘터리 영화적 관습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료 영상 속 실제 백남준의 목소리와 그의 글을 읽는 배우 스티븐 연의 내레이션 목소리가 겹치고, 백남준의 작품 속 추상적 이미지가 편집과 분할 화면, 초점 변화, 전자 음악, 소음 등으로 재구성된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 글이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고 그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세대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며, 세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보며 접하게 되는 그의 수십 년 전 예술적 시도, 그의 발언 등은 여전히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앞서 나간 예술가일까?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통해 다양한 시청각적 자극과 더불어 경계를 초월한 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나보길 바란다. 호기심이든 경외감이든 혹은 영감이든 분명 흥미로운 감정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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