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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그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들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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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그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들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나폴레옹의 삶을 영화화한다는 건 모든 영화감독들의 오랜 꿈일까? 1895년 영화가 탄생한 시점부터 나폴레옹은 영화와 함께 늘 되살아났다. 1896년의 <캄포 포르미오 조약>과 1897년 <나폴레옹과 교황의 대화>를 시작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나폴레옹 프로젝트까지, 영화의 위대한 꿈은 위대한 나폴레옹과 함께 꾸어졌다.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그의 삶은 어느 한 일부분만 떼어내어도 영화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현된 영화의 꿈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건 아벨 강스의 <나폴레옹>이다. 그는 폴리비전이라는 방식으로 세 대의 카메라로 구현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나폴레옹의 삶과 전쟁의 웅장함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스펙터클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2023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은 조금 다르다. 그는 코르시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정복하고 스스로 황제로 등극한 위대한 인물, 엘바 섬에 유배되었으나 탈출해 군인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돌려세우며 다시 황제 직위를 탈환한 인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알 뿐, 쿠데타부터 황제 칭호, 조세핀과의 이혼까지 어떤 것도 스스로 고안해 내지는 않았던 인간을 그린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역사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때와 그 시작을 함께한다. 처음에는 직급을 높이고 싶었던 군인이었을 뿐인 나폴레옹은, 왕당파로부터 툴롱을 탈환하며 진급하고, 왕당파 시위대를 향해 포도탄을 쏘면서 또 한 번 진급한다. 그리고 이집트 원정을 떠나는데, 이는 모두 군인으로서 그에게 부여된 전쟁의 승리라는 목표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캐서린 워커)의 처형식을 스쳐 보냈던 것처럼 로베스피에르(샘 트로튼)의 공포정치가 막을 내리는 역사적 장면도 그저 지켜볼 뿐, 바라스(타하르 라힘)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었다.
또한 이집트 원정 역시 그가 스스로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원정을 떠났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유럽의 황제’ 같은 것 말이다. 이를 강조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이집트 원정의 실패를 그리기보다는 조세핀(바네사 커비)의 외도 소식을 듣고 그길로 파리로 돌아오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현실적인 판단이나 장기적인 목표, 꿈, 사상 같은 것들보다는 당장의 감정들에 휘둘리는 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을지 모른다.
리들리 스콧의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은 영화 끝까지 유지된다. 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에게 쿠데타를 제안하는 건 시에예스(줄리안린드 터트)이고, 황제를 선포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한 번도 그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지 않은 자처럼 보인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오직 그의 마지막 말처럼 ‘프랑스, 군대, 조세핀’뿐이다. 전쟁과 조세핀, 그의 삶은 그렇게밖에 요약되지 않는다. 아우스터리츠, 보로디노……그는 여전히 전쟁을 벌이고, 승리하며, 조세핀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텅 비어버린 모스크바처럼 정복의 끝에는 늘 드디어 손에 넣었다고 믿는 순간 손아귀를 빠져나가 버리는 것들뿐이다. 러시아 황제의 옥좌는 그 빛을 잃은 채 나폴레옹을 맞이하고, 역시 그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조세핀과의 이혼 후 조세핀은 사랑의 빛이 바래버린 채, 그러나 여전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은 그렇게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폴레옹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그리는 이 독특한 나폴레옹의 삶은 나폴레옹이라는 인간에 대해 오명을 씌우는 것일까? 그가 선택한 나폴레옹 인생의 장면들, 그리고 그가 새롭게 해석한 나폴레옹의 장면들이 모두 그것을 위한 것이라면, 그에게는 더 쉬운 방법들이 있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에 몇 가지 변형을 가하면서 모든 것을 정복했지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늘 놓치고 말았던 한 인간을 그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독특한 삶, 스펙터클로 가득한 삶이 우리에게 찾아와 닿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의 엘바 섬 탈출을 조세핀을 위한 것으로 그리는 일,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탈출 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으로 그리는 일은 그를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으로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후회는 늦고 진정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원했다’는 과거형으로밖에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기 위해서이다. 인간 나폴레옹은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위대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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