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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바이벌 택틱스> 모호함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능 세계의 이미지들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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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택틱스> 모호함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능 세계의 이미지들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영화는 한 여자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최가 자기 생일에 소설을 선물로 달라고 했다.” 최가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을 사 달라고 한 건지 직접 써서 달라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최에게 지어낸 것이 대부분인 소설 비슷한 일기를 써서 줄 거라고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들과 단절되어 있다. 이후로 ‘최’라는 인물도 선물 이야기도 다시 등장하지 않으므로, 첫 시퀀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처음 등장한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쓴 작품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바이벌 택틱스>의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배우는 같지만 현재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전에 나왔던 인물과 동일인물인지 확신할 수 없는 도플갱어 같은 존재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등장한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맞물려 있는 것 같으면서도 틈을 내며 분절되어 있다. 산책하는 길에 검은 래브라도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주려는 여자(김성령)의 이야기는 윤성령(김성령)의 죽은 쌍둥이 언니 윤성희(김성령)이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일까? 둘은 같은 배우가 연기하지만 여름을 배경으로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성령과 달리 개의 주인을 찾는 여자는 겨울을 배경으로 머리를 풀고 있다. 둘의 패션스타일도 꽤나 다르다. 성령이 녹색 계통의 에스닉한 옷을 입는다면, 개의 주인을 찾는 여자는 붉은색의 스포티한 옷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성희의 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갔던 여자는? 그녀는 자신이 동생인 성령이라 주장하지만, 그녀는 학교 사람들에게 성희로 오해받는다. 그게 정말 오해였을까? 아니면 학교 후배가 말한 것처럼 성희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돌아다녔던 걸까? 초여름을 배경으로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얇은 셔츠에 붉은 가방을 맨 그녀는 성희의 계절과 스타일에서도, 성령으로 추정되는 검은 개를 찾는 여자의 계절과 스타일에서도 벗어나 있다.
최원용 배우가 연기하는 남자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고객들을 미행하고 집에서 CCTV를 돌려보는 그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이 눈에 띄지 않지만, 식물인간이 된 노인-아버지로 추정되는-을 집에서 간병하는 장면이 나온 뒤의 남자는 한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잘려있다. 그건 보험회사에 다녔던 우호(최원용)의 과거와 죽을 뻔한 큰 사고 이후로 다리가 잘린 우호의 현재일까?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 묶음의 편지로 이어진다. “당신이 이 편지를 볼 때 즈음에 저는 아마도 죽어있을 겁니다......만일 제가 당신을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게 된다면 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것입니다.......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개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누군지 짐작이라도 가시나요?” 성령 또는 성희의 목소리로 읽기 시작한 편지 내레이션은 우호의 목소리로 이어 낭독된다. 편지는 죽은 성희의 유품으로, 우호가 보험조사원이었던 시절 사고현장에서 습득해서 갖고 있던 것이다. 우호가 이 편지를 돌려주기 위해 성령을 찾아오면서 성령의 이야기와 우호의 이야기는 서로 맞물리게 된다.
편지를 쓴 건 누구일까? 편지의 주인은 두서없는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와 성희를 싫어했던 마음을 늘어놓는다. 성령과 우호는 편지를 쓴 사람을 찾기 위해 함께 단서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단서들은 영화의 이야기만큼이나 모호하고, 서로 맞물려 이어지지 않는다. 탐색의 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성희의 죽음이나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서라기보다, 그것을 찾으러 길을 떠난 우호와 성령에 대해서이다,
우호는 보험조사원으로 일하면서 우호적으로 살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성희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고, 성령은 별로 친하지 않았던 쌍둥이 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죽었는지를 알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들의 탐색과정은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생존전략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기계-이미지의 등장이다. 땅을 파는 굴삭기, 사무실의 복사기, 다리 밑에서 본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 주차타워의 승강기,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차 등 영화는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에 매혹되어 그것을 한참 동안이나 비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 드론이다. 죽은 성희의 흔적을 따라 그녀의 지인들이 성희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리조트에 간 성령과 우호는 리조트의 텅 빈 수영장을 지나 뒤편의 공터에서 하늘을 나는 드론을 목격하고 그것을 한없이 바라본다. 이야기의 갈래는 끝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서로 맞물리지 않고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어두운 다리 밑에서 시작해 노을 진 하늘을 나는 자유롭게 나는 드론으로 끝나는 이미지는 이들이 거쳐 온 여정을 이미지적으로 구현하며 관객에게 어떤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정합성 있는 이야기와 인물을 보여주기보다는 이야기의 여러 가능성, 한 인물의 여러 버전,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매혹된 인상적인 이미지, 비인간 사물의 존재감 등을 파편적으로 제시하는 이 영화의 작법과 스타일이 새롭고 흥미롭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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