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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측 불가, 멀티 해석 가능, 알록달록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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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 멀티 해석 가능, 알록달록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2월 28일 개봉한 김다민 감독의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엉뚱함, 신비로움, 판타지 등이 느껴지는 영화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무얼 알려준다는 걸까?’ ‘알려준다는 게 가능할까?’ 등 현실적인 의문부터 드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다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록달록 밝은 색감 뒤에 숨은 어두운 현실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던지는 판타지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측 불가능성과 멀티 해석 가능성 사이에서 막걸리가 알려주는 메시지 따라잡기라 하겠다.
- 우연과 의외가 이어지는 예측 불가 전개
이 영화는 11살 동춘(박나은)이 막걸리와 함께하는 모험과 여정을 담고 있다. 어린아이와 막걸리라니 좀 이상한 조합이긴 한데, 어쨌든 어느 날 막걸리 한 병이 동춘에게 굴러들어 오면서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의외로 등장한 막걸리는 기포를 내뿜는데, 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또다시 의외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알고 보니 막걸리 기포 소리는 모스부호였다. 동춘은 그걸 알아채고 받아 적지만,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 우리말, 영어, 러시아, 일어로도 해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수학, 영어, 논술, KMO, 미술, 창의 과학, 한국사, 코딩 학원에 더해 새로 페르시아어 학원까지 다니게 된 동춘이 페르시아어로 해독에 성공한다.
막걸리부터 모스부호에 페르시아어까지 예측 불허 상황의 연속인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의외의 상황은 등장한다. 어렵게 해독한 막걸리의 메시지가 로또 번호라는데, 1등도 아니고 4등 번호란다. 물론 진짜인지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그런데 확인하기가 만만치 않다. 동춘은 편의점에서 로또를 사려하지만, 미성년자라 로또를 살 수도 없고, 혹시 당첨되더라도 당첨금을 받을 수도 없단다. 그러다 마침 영진(김희원)의 도움을 받아 로또를 사게 되고, 이후 4등 당첨금도 영진 덕에 받게 된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영진은 이후에도 또다시 동춘을 우연히 만나 또 다른 도움도 준다. 그사이 관객은 영진과 동춘의 또 다른 관계도 알게 되는데, 약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그나저나 막걸리는 왜 로또 4등 번호를 알려준 걸까? 이후에도 막걸리의 메시지는 이어지고, 동춘은 차근히 따른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동춘이 학교와 학원을 모두 다니면서 이 모험과 여정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늘 멍을 때리던 동춘이 적극적으로 그러나 몰래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해낸다. 그러다 위기가 온다. 동춘의 엄마가 동춘의 방에서 발효 중인 막걸리 통을 발견하게 되면서 역경이 닥친다. 물론 엄마 혜진(박효주)과 아빠 구포(김지훈)도 흔한 예측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동춘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도 의외와 우연은 계속된다.
- 해피엔딩일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외와 우연 덕에 다다른 결말에서 막걸리의 빅 픽쳐가 펼쳐진다. 그 마지막 메시지는 이전 여정의 예측 불가성을 능가한다. 매우 뜬금없게 느낄 수도 있고, 허무맹랑하게 느낄 수도 있고, 오히려 환상적으로 멋지게 느낄 수도 있다. 왜냐면 그 해석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으로 자세하게 적진 못하지만, 김다민 감독이 밝혔듯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조차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동춘이 막걸리를 따라 여기까지 오는 것만큼, 학교와 8개의 학원에 다니며, 대입을 준비하고, 장래 꿈도 정하고, 키도 자라야 하는 모든 상황도 말이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또 이게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이기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동춘의 여정 사이사이에 목격한 동춘의 엄마, 아빠의 문제도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그저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꿈과 희망, 동심으로 가득한 어린이 영화가 아니다. 이게 다 꿈이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동춘은 누구보다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건 불확실한 미래를 지나치게 열심히 대비하며, 자신의 마음도 내팽개친 어른들이다. 이 영화가 담아낸 모든 모험과 여정은 그저 어린아이의 상상력 가득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이 영화가 풍자하는 세상과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내내 심각하고 우울하고 비장한 것은 아니다. 밝고 알록달록한 색감, 음악, 움직임과 효과음과 편집이 만들어 내는 리듬감 등은 매우 경쾌해서, 시청각적으로는 희망도 느끼게 해준다. 판타지에 가까운 이미지 덕분에 절망감이 좀 가려진다.
동춘의 모험과 여정을 신나게 구경하다가,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결말까지 만나고 나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라고 묻는 11살 동춘에게 무언가 답을 찾아주고 싶어진다. 적어도 엄마와 아빠가 해주는 답보다는 근사한 답을 하고싶다. 비록 막걸리가 제시하는 솔루션보다 덜 멋질지 몰라도, 해결 방법도 찾아내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간절하게 소망하게 하는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이다.
이미지 출처: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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