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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과 산책을 부르는, 긴 여운의 영화 <땅에 쓰는 시>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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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산책을 부르는, 긴 여운의 영화 <땅에 쓰는 시>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4월 17일에 개봉한 정다운 감독의 <땅에 쓰는 시>는 여운이 매우 긴 영화다. 늘 보던 창밖 풍경이 새로워 보이고, 주변의 나무와 꽃에도 새삼 눈길이 간다.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서 걷고 싶어지고, 나무와 꽃, 자연과 인간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남긴 이런 여운의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여러 생각과 행동을 부르는 걸까?
- 예술의 전당,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그리고 정영선
‘예술의 전당’(1998), ‘여의도 샛강생태공원’(1997, 2007)과 ‘선유도공원’(2002)은 꽤 큰 규모의 공간으로 모두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이 영화는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조경)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정영선 조경가가 1984년부터 작업해 온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과 정원을 담아냈다.
그 중엔 이미 가봤거나, 종종 지나거나, 혹은 좋다는 소문을 들은 곳들도 많다.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도 꽤 나온다. 일부만 좀 적어 보면, ‘광릉수목원’, ‘서울 아산병원’, ‘오설록 티 뮤지엄’, ‘경춘선 숲길’, ‘북촌 설화수의 집’, ‘성수 디올’,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희원’, ‘남양성모성지’,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남양주 다산생태공원’ 등이다.
위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와 꽃, 숲, 길, 돌, 물 등은 모두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으로 땅에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감, 자라는 속도, 키, 꽃피는 시기, 그늘에서도 자랄 수 있는 특성,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환경, 사람들 등까지 고려된 결과물이다. 영화 내내 이런 공간을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난다.
- 수많은 나무와 꽃
정영선 조경가가 설계한 공원에는 주로 우리 나무와 꽃이 자리한다. 가능하면 그 지역 자생 식물들로 채우려 노력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 내내 만나는 낯선 나무와 꽃 옆에는 자막으로 이름이 안내된다. 그래서 움직이는 식물도감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미처 몰랐던 나무와 꽃이 참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그러다 정영선 조경가가 제기하는 이슈에 관심도 간다. 우리 주변의 경관, 도시의 나무와 꽃 등이 전국적으로 너무 비슷한 모습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정명선 조경가와 동료들은 우리 식의 정원과 더불어 개성 있는 다양한 모습의 정원, 공원에 대한 철학을 피력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거리에서 만나는 나무와 꽃, 경관에 더 시선이 간다. 아름다움도 느끼지만, 다른 모습도 바라게 된다.
- 스크린이라는 창이 던지는 질문
종종 스크린은 창문으로 묘사된다. ‘스크린이라는 창문을 통해 엿보는 다른 이의 삶’이 바로 영화라고들 한다. <땅에 쓰는 시>는 스크린이라는 창문을 통해, ‘뷰 맛집’이라는 표현도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영선 조경가의 철학과 그동안의 작업을 소개한다.
많은 이들이 창밖 풍경을 좋아한다. 자연 풍경, 도시의 야경 등 제각각의 창밖 풍경 모두 매혹적이다. 규모와 상관없이 더 섬세하게 배려된 공간, 보존된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땅에 쓰는 시>가 던지는 질문에 뭔가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정영선 조경가는 영화 내내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여러 생각거리를 제시하며, 어록도 남긴다. 동료, 가족의 인터뷰에서도 기억 남는 말들이 많다. 눈으로 확인하는 크고 작은 경관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가 뇌리에 박히는데, 영화 관람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지난 4월 5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도 시작됐다. 9월 22일까지 이어질 예정인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 <땅에 쓰는 시>와 함께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도 만나보길 추천한다. 영화에서 봤던 공간이 탄생한 과정을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설계도, 조성 과정 사진, 영상 등이 모두 어우러져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전시장에 조성된 작은 정원도 직접 거닐 수 있다.
사색과 산책에서 더 나아가 여러 생각과 행동을 부르는 강력한 영화 <땅에 쓰는 시>이다.
이미지 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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