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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는 새로운 창세기가 필요하다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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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새로운 창세기가 필요하다
이시현 2023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일리아스』)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가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 그리스인들은 천지의 모태인 가이아 여신을 숭배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연을 정복할 권리를 부여하시기 전까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암송하던 그리스인들은 인류의 오만이 자연을 노여워하지 않게 하기를 바랐다. 허나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이 신화로 취급된 지 한참이 지난 오늘날, 인류의 남성∙이성중심적 세계관은 위기에 봉착했다. 인간에 의해 순순히 지배되는 듯 보였던 자연은 인류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누고 있으며, 인류의 집단지성이 평화로 이어지리라는 희망은 몇 번이고 배신당하고 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이 종말을 예고함을 생각한다면 인류가 자신들의 세계관이 진정으로 존속가능한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시조격인 <매드맥스>(1979)는 인류의 현 체제가 지속불가능하다는 절망을 시각적으로 구현했으며, <매드맥스>의 설정과 디자인은 <북두의 권>부터 <오버워치>까지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오마쥬되고 있다. 하지만 뉴스를 틀기만 해도 종말에 대한 위기감을 확인할 수 있는 지금 우리는 <매드맥스>에 구현된 종말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체제의 존속을 바라는 대신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체제의 붕괴를 요청한다. 결국 최초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종말은 마땅히 찾아올 운명을 넘어 도래해야 마땅한 희망의 징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종말이 정말로 찾아온 다음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근본적 변혁이 없다면 종말이 찾아온 이후에도 인류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것을 보여준다. 자신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영웅들은 기존의 잘못된 논리를 답습한다. ‘임모탄 조’는 자연을 철저한 정복과 통제의 수단으로, 여성을 자식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취급하며 부성적 신으로서의 지위에 집착한다. 죽은 자식의 인형을 간직하며 ‘퓨리오사’를 양녀로 삼으려는 ‘디멘투스’의 비뚤어진 부성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시대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한 이상 ‘임모탄 조’와 ‘디멘투스’는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도 번듯한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공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에게는 새로운 창세기가 필요하다. 열매를 탐하다 시련에 빠지는 ‘퓨리오사’의 시작은 아담과, 시타델을 구원하는 마지막 모습은 메시아와 닮아있는 만큼 ‘퓨리오사’는 분명 기존의 세계관을 일정 부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조지 밀러는 분노의 여신, ‘퓨리오사’로 하여금 우리가 잊었던 수많은 신화 역시 노래하게 한다. ‘임모탄 조’가 아버지로서 워보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때 ‘퓨리오사’는 발키리로서 발할라로 향하는 워보이들을 수호한다. ‘디멘투스’가 죽음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으며 남성성을 과시할 때 ‘퓨리오사’는 생명의 씨앗을 품는 가이아 여신으로서 희망을 지킨다. ‘임모탄 조’와 ‘디멘투스’가 집을 지배할 영토로 취급하는 데 반해 ‘퓨리오사’는 오디세우스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쓸 뿐이다. 이렇듯 ‘퓨리오사’는 잊힌 신화의 화신으로서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됐던 가치를 계시한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기억하고 있는 ‘역사가’가 ‘퓨리오사’에게 경외를 표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임모탄 조’와 ‘디멘투스’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염원해야 마땅한 것은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세계관의 종말임을 보인다. 기존의 세계관이 극복되지 못한다면 핵전쟁과 지구 가열화 이후에도 세계는 과거와의 연장선에서 악화될 뿐이다. 그러니 종말을 두려워 말라. ‘디멘투스’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에 불과했듯 인류가 줄곧 품어온 구원의 씨앗은 종말을 토양으로 삼아 번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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