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 고통과의 연대, <인사이드 아웃 2>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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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의 연대, <인사이드 아웃 2>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2015년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 이후 9년 만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2>는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이 잘 관리하고 있던 감정 본부가 재편되면서 불안(Anxiety), 당황(Embarrassment), 따분(Ennui), 부럽(Envy)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 우리의 라일리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11살 라일리의 감정본부에서는 기쁨이가 다른 감정들에게 자리를 나누어주었다면, 그래서 우리의 모든 기억은 슬픔과 함께, 분노와 함께, 혐오와 공포와 함께 그래도 소중한 기억들로 자리할 수 있었다면, 13살 라일리의 감정본부에서는 기쁨이가 아무리 자리를 나누어주려고 해도 불안이 공존을 위협한다. 불안은 기대와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이미지들을 본부로 가져오기 때문에, 어떤 현실적인 감정도 이를 잠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감정들은 모두 그런 감정들이다. 불안은 공포가 실재 대상을 가지는 것처럼 그렇게 대상을 가지지 않고, 부끄러움은 상대의 반응보다 먼저 오며, 권태는 특정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는 감정이고, 부러움과 질투는 선망의 상대가 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삶의 직접적인 경험들은 거대한 상상의 감정들이 몰려왔을 때 무력해진다. 늘 기쁨을 주었던 오랜 친구들이 혼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만을 증폭시키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현재의 시간들과 새로운 미래의 이미지들 가운데,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곡차곡 자리 잡은 현실적인 감정들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면, ‘I am a good person’이라고 자신 있게 외치는 라일리의 자아처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기쁨들도 가득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기쁨만큼이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슬픔과 분노, 혐오와 공포들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 될지 모른다. 쉽게 분노하고 실망하고 한 번 싫어하거나 거부한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반대로 새로운 미래의 이미지들만 우리를 자라나게 한다면, ‘I’m not good enough’이라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라일리의 자아처럼 우리는 늘 현재와의 괴리 속에서 늘 부족한 존재로 우리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비추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 슬픔에게 손을 내밀고 기억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던 것처럼은 도무지 될 수 없을 것 같은 두 자아, 기쁨이 만든 자아와 불안이 만든 자아를 함께 공존시키는 일이다. 두 자아는 함께 신념을 만들고 자아가 되어야 한다. ‘I am a good person’과 ‘I’m not good enough’ 사이에서 인간은 자라난다.
그런데 이 두 자아를 함께 공존시키는 것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를 통과해 온 모든 어른에게는 라일리 안에 기어코 자리 잡는 불안과 당황, 따분, 부럽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막을 수 있다면 막아주고 싶은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들 없이는 결코 삶에 대해 배울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훌륭하고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삶이 피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다. 마지막에 불안이 해골이 되는 라일리의 이미지까지 그려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고,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실수들을 피할 수 없으며, 반복되는 천편일률적인 삶에서 오는 권태를 무시할 수 없고, 늘 나보다 앞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허황되고 완벽한 삶의 계획들을 세우지만 우연은 늘 우리를 피할 수 없는 고통들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어떤 삶이든 그렇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더 부러울 것이 없는 삶도 각자 짊어져야 하는 고통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삶의 시간들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삶 자체를 배운다. <인사이드 아웃 2>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 감정들이 불안을 각종 테라피를 통해서 진정시키고자 하지만, 사실 불안이라는 감정보다 우리에게 삶에 대해 많이 알려주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삶은 늘 통제를 벗어나 있지만, 불안은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모든 순간에 대해 대비하게 해주고, 그래서 우리를 이겨내게 해주고, 또 한 순간에 온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기쁨이 택한 불안과의 연대는 타협이 아니라 우리에게 견디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성장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인사이드 아웃 2>에는 모든 감정들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추억(Nostalgia)이다. 추억 할머니는 감정본부에서 어떤 것도 장악하고자 시도하지 않고, 회상할 때만 두 번 올라온다. 한 번은 ‘처음 본부에 왔던 날 기억하니?’라고 말하는 장면이고, 이때는 따분이 ‘30초 전에 왔거든요?’라고 답한다. 두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에 그레이스와 브리와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나왔다가 다시 내려간다. 아직은 올라오기에 이르다면서 매번 다른 감정들에 의해서 돌아가게 되지만, 무언가를 추억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학교로 가게 되는 그레이스와 브리와의 헤어짐뿐만 아니라 삶의 시절들의 떠나보냄도 모두 이별들이다. 늘 인자한 얼굴로 추억을 상기시키는 할머니는 기쁨의 불안과의 연대처럼 이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추억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견디고 살아가게 해주는 또 다른 힘일 것이다. 시간은 즐거운 것이든 고통스러운 것이든 차곡차곡 쌓여서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우리의 현재에 늘 말을 건넨다. 기억하니? 너는 아주 작고 어린 아이였단다. 너는 아주 많이 자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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