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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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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낭만을 위한 애도2024-08-01
인디스데이 7월단편영화프로그램 인디플러스 요절프로젝트 굿 흐드러져,칸나 브라보마이라이프 음악을들어야능률이오르는편입니다 '24.7.18.(목)~7.31.(수)@인디플러스 순수한시절, 친구와음악이전부였던호진과정숙, 또래들과달리올드락밴드에심취한보나, 드랙쇼데뷔를준비중인칸나, 올드팝듣기를즐기지만같이사는딸부부의눈치가보이는옥분, 때로는가족이나친구보다더큰위로와힘을주는음악. 음악이없는삶을상상할수있을까요? 음악을통해위로와치유를건네는4편의단편영화를소개합니다.



잃어버린 낭만을 위한 애도


이시현 2023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최근 한국에 밴드 음악이 다시 유행 중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록의 죽음을 외치던 것을 생각하면 이 풍문이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인기를 끌고 있는 밴드들 대다수가 연주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을 직접 하는 만큼, 이들은 단지 그루피가 아니라 홈마를 끌고 다닌다는 점에서만 과거의 밴드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록-근본주의자라서 그래서일까, 나는 야구장의 팬들을 열광시키는 밴드를 보면서도 여전히 록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 기타를 치든 그로울링을 하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록은 죽었다. 록은 죽어 있다. 


 록이 살아있었을 시절에는 낭만과 연대의식 역시 살아있었다. 고도성장의 시기에 히피들은 평화를 믿었으며, 베트남전이라는 실체가 분명한 폭력이 있었기에 그들은 함께 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저성장이, 문화적으로는 상대주의가 유행하는 요즘 사람들은 투쟁의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늪과 같은 패배주의에 침전될 뿐이다. 결국 록이라는 기표의 유행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낭만이 아직 살아있다는 헛된 망상의 반영일 뿐이다. 인디스데이 기획전의 영화들 역시 록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만, 그 기의는 텅 비어있다. 즉 이 영화의 감독들은 록이 살아있음을 믿지 않는다. 


영화 <굿> 스틸컷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무당의 손녀, ‘보나’가 과거의 밴드를 실수로 강령해버리는 이야기를 다루는 <굿>은 록의 죽음을 정직하게 증언한다. 극중 ‘보나’는 어린 나이에 차 사고로 부모를 잃었으며 무당인 할머니 역시 자동차에 대해 공포를 표출하는 등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자동차 내에서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밴드는 ‘보나’의 부모와 조응하며, ‘보나’가 할머니 앞에서 이들을 무사히 저승으로 인도하는 결말은 남겨진 자들이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보인다. 이렇듯 영화의 서사는 사뭇 감동적이지만 록이 애도의 대상 내지는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다소 음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요절 프로젝트> 스틸컷 이미지


 <요절 프로젝트>의 경우는 좀 더 노골적이다. 27세 이전에 죽은 전설적인 록스타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두 여고생, ‘호진’과 ‘정숙’은 록스타로 성공한 후 26세에 같이 죽기로 약속한다. 물론 학창시절의 다짐이 대개 그러하듯 현실의 벽에 부딪힌 ‘호진’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나타난 ‘정숙’은 ‘호진’에게 우리가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 ‘호진’은 그건 과거의 장난이었을 뿐이며 자기는 죽을 생각따위 없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호진’은 ‘정숙’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아마 무대가 끝난 후에도 ‘호진’과 ‘정숙’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들이 요절한 록스타에 대해 품었던 동경은 순수했던 과거의 한 흔적으로 남았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표준화되었으며 록 역시 하나의 표준적 스트레스 해소구가 되었을 뿐이다. ‘호진’과 ‘정숙’은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그 사실에 선뜻 기뻐할 수 없었다.


영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스틸컷 이미지


 아마 이 기획전에서 가장 암울한 영화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일 것이다. 딸과 사위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가려는 ‘옥분’은 자신의 계획을 공표하기 전 저혈압으로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옥분’은 정신을 차렸으며 딸은 자신을 키우느라 너무 고생한 엄마에게 여행 한 번 못 보내줬다며 미안하다 말한다. 친구와 스위스 여행을 떠나는 길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틀은 ‘옥분’은 옛날 생각이 난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이 단편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또 교훈적이어서 나는 하마터면 딸과 사위가 겪고 있는 생활고가 해소되었다고 오해할 뻔했다. ‘옥분’은 과거를 추억하며 스위스로 떠나지만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는 옥분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록 음악은 좋았던 과거를 연상시키는 기만책으로 활용될 뿐이다.


영화 <흐드러져, 칸나> 스틸컷 이미지


 <흐드러져, 칸나>는 이 기획전 중 유일하게 진정한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드랙퀸, ‘칸나’는 갑작스레 나타난 자신의 첫사랑이자 누나의 전남편으로 인해 곤경을 겪는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칸나’는 상처를 받지만 누나의 응원으로 성공적으로 드랙쇼를 마친다. 이 영화에서 과거는 추억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기에 ‘칸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아마 이는 <칸나>가 나머지 세 편의 영화들과 다르게 록이 아니라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는 영화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록은 죽었다. 그리고 나는 록의 죽음을,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낭만의 죽음을 애도한다. 자크 데리다는 애도의 “성공은 실패한 것”이고 “실패는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직 떠나간 사람을 잊은 사람만이 애도의 끝에서 성공적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오직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만이 떠나간 사람의 기억을 충실하게 간직할 수 있다. 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록의 영혼(spirit)을 기억하는 사람은 턱없이 적다. 록이 죽은 세상은 점점 더 암울해지고 있으며, 나는 점점 쓸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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