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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십니까?”라 묻는 영화 ‘엄마의 왕국’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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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라 묻는 영화 ‘엄마의 왕국’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거창한 제목의 영화 <엄마의 왕국>이 지난 7월 24일 개봉했다. 이상학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엄마의 왕국>에는 엄마와 아들만이 낡은 집에서 산다. 거창하거나 화려한 가족의 모습은 아니다. 그들은 엄마가 만든 규칙을 지키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며 왕국을 유지 중인데 왠지 위태로워 보인다. 오늘은 <엄마의 왕국>이 의심하는 가족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 일상에 가득한 불안, 정말 행복하십니까?
시작부터 영화는 불안함을 안겨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왕국미용실 표시등처럼 일상을 반복 중인 그들에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미용 가위를 닦는 엄마 주경희(남기애)도, 자기 계발서 저자로서 하는 강의하는 아들 도지욱(한기장)도 마냥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서로 평범한 대화를 나누지만, 뭔가 불안하다.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만든 규칙을 지켜야 했다. 그건 바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끊임없이 말하며, 믿는 것이었다. 실종된 아빠에 대한 기억을 잃은 아들은 아빠가 좋은 사람이고, 자신을 매우 사랑했다는 엄마의 말을 의심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빠의 부재 속에서 애쓰면서 살아온 모자의 세월이 짐작되지만, 그렇게 유지해 온 왕국은 위태로워 보인다.
영화의 주 공간인 집 안팎도 불길함으로 가득하다. 어두침침하고, 원색도 배제되어 서늘하다. 햇빛이나 파란 하늘 대신, 얽히고설킨 전선 뭉치로 가려진 흐린 하늘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조용하다.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 등 일상 소음이 들려오지만, 배경음악과 함께 두 사람의 공간은 고립되고 답답한 곳으로 그려진다.
- 위기의 시작,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위태로운 그들의 왕국에 문제가 생긴다. 엄마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아들은 그런 엄마가 뱉는 말들에 자극받아 잃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들이 떠올린 기억 속 아빠는 그동안 엄마가 말해온 온 아빠와 너무 다르다. 좋은 아빠도, 자신을 사랑한 아빠도 아니다. 이 와중에 삼촌 도중명(유정주)은 자신이 시한부라며, 죽기 전에 형을 찾겠다고 그들 앞에 각각 나타난다. 형수에겐 “누나, 형 실종된 거 아니죠?”라 묻고, 조카에겐 “네 아빠는 너를 싫어했다.”고 말한다.
도대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엄마는 “내가 아빠를 죽였다”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이내 “내가 아빠를 죽였다고 생각하니?”라는 말도 해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아들도, 관객도 마찬가지다. 영화 내내 느낀 긴장감과 불안감은 바로 엄마가 숨겨 온 비밀 때문인 것 같다.
- 경계의 모호함, 무엇이 진실인가?
흥미로운 점은 엄마의 오락가락하는 말을 들은 아들이 진실을 추격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오히려 진실을 덮기 위한 행동을 이어간다. 엄마를 감시하고, 삼촌을 경계한다. 엄마를 보호하려는 것 같다.
엄마 시선의 회상 장면, 아들 시선의 회상 장면 등이 현재 장면과 교차 되어, 그들이 비밀이 풀리나 싶지만, 회상인지, 왜곡된 기억인지, 혹은 상상인지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들이 떠올리거나, 얘기하는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그중 어떤 기억이 진실인진 알 길이 없다. 각 인물이 진실로 믿고 싶은 것만 그들의 마음이나 바람 속에 존재할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엄마와 아들의 모습은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제니퍼 챔버스 린치, 1993)가 떠올랐는데, 진실, 현실, 기억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어진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노리는 지점이다.
많은 영화에서 종종 미화되고, 이상화되는 가족의 모습은 <엄마의 왕국>에 나오지 않는다. 초현실적으로까지 표현된 가족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과 더 가까운 가족의 모습일지 모른다. 진실을 덮어가며,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하며, 행복하다고 믿어버리는 그런 가족 말이다.
사연 없는 가족은 없겠지만, 가족의 행복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건지 매우 강렬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 <엄마의 왕국>이다.
사진 출처: 한국영화아카데미, 스튜디오 에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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