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토네이도가 무엇인지 모른다2024-08-28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이미지



한국인들은 토네이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시현 2023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당신은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윌리윌리, 그리고 토네이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적어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의 나는 토네이도가 대평원지역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을 몰랐으며, 윌리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여름철 태풍이 찾아온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저 바람과 관련된 재해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없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북미에서 꽤나 괜찮은 흥행을 거둔 <트위스터스>가 한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존재한다. 미국인들은 토네이도라는 트위스터스(소용돌이)를 경험해봤지만 한국인들은 토네이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트위스터스>는 토네이도의 경험에 호소하는 영화지만, 이 호소는 한국인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림에 불과하다.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이미지2


경험적 호소가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각본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이 영화는 평범함을 넘어 진부한 편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의 흐름을 포착하는 등 토네이도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자랑하는 소녀, ‘케이트’는 토네이도 소용돌이의 와해를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불행히도 실험 대상이었던 토네이도의 세기는 그녀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었고, ‘케이트’는 연구 동료였던 친구들을 잃고 만다. ‘케이트’가 연구를 포기하고 기상청의 평범한 직원으로 일하던 와중 살아남은 연구 동료, ‘하비’가 찾아온다. ‘하비’는 최신 레이더 기술을 활용해 토네이도의 데이터를 수집하려 하고 있었으며 이 작업에 ‘케이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케이트’는 고민 끝에 현장으로 복귀하지만 토네이도를 유튜브 컨텐츠로 소비하는 토네이도 카우보이들의 방해는 성가시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 역시 녹록치 않다. 물론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 주인공은 토네이도 소용돌이를 와해하는 성공적 방법을 알아내고 토네이도로부터 마을을 구한다. 토네이도 카우보이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덤이다.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이미지3


한 저명한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장점조차도 평범하다”는 비판적 코멘트를 남기기까지 했다. 부분적으로 타당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이 여성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각본의 측면에서 말 그대로 최소한의 노력만을 다했으며, 인간이 자연을 극복해내는 서사는 철학적으로 거의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이 영화의 각본가는 애초에 각본의 참신함이나 주제의식의 완성도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트위스터스>는 관객들에게 말 그대로 끝내주는 ‘경험’을 선사하는 데 목적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트위스터스> 스틸컷 이미지4


<트위스터스>의 최후반부는 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아마 감독은 극장 안의 모두가 자신의 토네이도 경험을 떠올리며 극에 몰입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며, 토네이도 때문에 지하실로 대피해본 경험이 있는 북미 지역의 사람들에게 이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토네이도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4DX관의 특수효과를 통해 경험의 부재를 적당히 극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 -바로 지면을 채울 말이 없는 평론가의 위기-가 있다. 영화평론가가 특수효과제작자도 아니고, 바람의 세기나 물의 온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평론가이기 이전에 하나의 관객으로서 나는 <트위스터스>를 기꺼이 긍정한다. 비록 분석할 텍스트가 없어 이렇게 중언부언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2시간 동안 극장에서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재개봉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짧게 언급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압도적 롱테이크를 자랑하며 이로 인해 ‘드르렁 영화’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씨네필들은 이에 대해 <희생>을 그저 느끼라며, <희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듯한 입장을 취한다. 이들이 하는 말에 대해 나는 100% 동의한다. 어떤 영화는 분석의 잣대를 버려둔 채 그저 느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이 지고한 씨네필들에게 <트위스터스> 역시 그저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영화에서 내가 느낄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4DX관에서의 관람을 권한다. 어쨌거나 4DX관의 특수효과는 느끼기 싫어도 느껴질 테니 말이다.


다음글 [5월 피프레시 원고]피프레시 월요 시네마-<키메라>에 관하여
이전글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 <행복의 나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