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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에게>가 편견을 대하는 자세2024-09-23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이미지



영화 <그녀에게>가 편견을 대하는 자세


송영애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9월 11일에 개봉한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는 장애아의 엄마 상연(김재화)이 겪어내는 10년을 담고 있다. 잘 나가던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 상연은 막내 아들 지우(빈주원)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되면서, 계획에 없던 장애아 엄마가 된다. 결혼, 출산, 승진 등을 향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살아온 상연에게 계획을 벗어난 삶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후 전개되는 내용이, 장애아 엄마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했을 때 반사적으로 떠올랐던 것과는 좀 다르다. 장애에 대한 편견만큼, 장애를 다룬 영화에 대한 편견도 존재하는 걸까? 영화 <그녀에게>는 영화 안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다루면서, 동시에 장애를 다룬 영화에 대한 편견에서 꽤 벗어나고 있다. 


이 영화 안팎에서 작동하고 있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이미지 


- 영화 안 편견


‘편견(偏見)’은 글자 그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의미한다. 거짓말이나 가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편견이라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름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에 비슷한 편견이 반복적으로 담기게 되면, 편견은 더욱 강화되곤 한다. 물론 반복되는 편견이 반드시 편견의 재생산, 강화로만 연결되는 건 아니다. 정형화된 표현이 오히려 문제 인식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영화 <그녀에게>는 상연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여럿 담겼다. 관련 제도의 문제점도 일상 속 에피소드에 담긴다. 완전히 낯선 상황들은 아닐 수 있지만, ‘아 저럴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섬세하게 그려진 덕분인데,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한 실화의 힘이기도 하다. 비록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이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편견의 경험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기승전결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적군과 아군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극복해야 할 악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상연이 투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우가 천재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안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섬세한 상황 설정과 함께 튀어나올 뿐이다. 그 편견은 성연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녀에게> 안 편견은 극적인 전개 대신 일상에 담겨, 관객을 서서히 자극한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이미지2


- 영화 밖 편견


영화 안 일상의 편견은 꽤 인상적으로 영화화됐다.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예상과 달리, 영화적 모든 요소가 상연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인물 간의 갈등이나 상황과의 갈등, 그에 따른 긴장감, 그 분위기를 표현하는 시청각적 요소를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일종의 편견이 깨진 것과 유사하다. 

 

<그녀에게>의 화자는 오로지 상연이다. 남편 진명(성도현), 딸 지수(이하린), 아들 지우, 동생, 친구, 담임 선생님, 학부모 등은 모두 주변인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일상과 에피소드는 상연이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려진다. 장애아 지우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거의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시점의 반전이 등장하긴 한다) 이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는 상연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더욱 상연이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이미지3


거기에 카메라도 힘을 보탠다. 카메라는 늘 상연을 주시해서, 상연의 얼굴이 자주 화면을 채운다. 상연이 주변에 반응하는 모습 역시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김재화 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상연의 뒤를 따르는 경우도 많은데, 그녀가 마주하고 헤쳐 나가고 있는 세상이 느껴지는 것 같다. 때때로 고립된 느낌도 드는데, 상연에게 초점이 맞춰져, 주변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극적인 기승전결 전개가 아니니, 당연히 사이다 결말도 나오진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상연은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표정과 움직임이 분명히 다르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도 달라 보인다. 주변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 


그리고 지우를 향해 ‘축복’이란 말도 등장한다. <그녀에게>의 영어 제목이 <BLESSER> 즉 ‘축복을 주는 사람’인데, 장애에 대한 편견을 대하는 이 영화 안팎의 자세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차분히 그녀와 그들의 삶을 지켜보길 바란다. 편견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제공: 영화로운형제/애즈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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