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평론가 비평

영화평론가 비평

오디오 해설 영화관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평론글로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쉽게 볼 수 없기에 아쉽고도 소중한, <최소한의 선의>2024-11-06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미지



쉽게 볼 수 없기에 아쉽고도 소중한, <최소한의 선의>



 윤필립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화 <최소한의 선의>(2024)는 <흐르다>(2023)로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김현정 감독의 새 작품이다. 김현정 감독은 영평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며 지역 영화관의 위기를 언급한 바 있다. 작은 영화들과 끝까지 함께해 주었던 지역 영화관이, 모두의 몰관심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그날 시상식 무대 위의 유일한 영화인이었다. 영화 <최소한의 선의>에는 이렇게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 ‘나 혼자’만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김현정 감독의 근성이 그대로 배여 있다. 풍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영화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이번 이야기는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미지


희연(장윤주)은 고등학교 교사로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감이 묻어 있다. 아이를 갖고 싶어함에도 난임으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희연의 반 학생 유미(최수인)는 임신 사실을 숨기며 비밀스럽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유미의 임신 사실에 학교는 자퇴를 종용하고, 이혼한 부모는 무관심과 폭력으로 일관하며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연은 담임교사라는 공적 영역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선을 넘어오는 유미로 인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영화 <최소한의 선의> 스틸컷 이미지


이렇게 김현정 감독은 영화 <최소한의 선의>를 통해 청소년 미혼모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 <제니와 주노>가 2005년작이니 그 이후로 근 20년 만이다. <제니와 주노>가 청소년 부모가 서로의 사랑과 아기를 지켜내는 좌충우돌의 희극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소한의 선의>는 청소년 미혼모 여성의 권리에 초점을 두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는 기존의 상업영화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자 연출 방식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직면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 이를 통해 영화 <최소한의 선의>는 한국사회가 청소년 미혼모를 포함한 소수자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그런 시선으로 인하여 공동체가 연대하여 해결해야 할 일들이 어떻게 한 개인의 문제로 사소화되는지를 적절히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른바 어른들의 무수한 말들과 무책임한 행동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이면에 자리잡은 위선과 그 안에서 형성된 ‘정상적’이라는 것의 환상성을 꼬집는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바라보아야 할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라는 김현정 감독만의 근성이 드러난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는, 현재 한국영화계는 이러한 근성 있는 감독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이 직시하며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 덕분에 한국의 상업영화가 맞닥뜨린 진부함이 상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 사회적 책무를 강요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만 영화가 대중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대중이 살아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와 함께 찾아온 OTT 중심의 거대자본은 한국영화에서 현실 직시 부분을 무력화시켰고, 그 결과 현재 극장에는 흥미 위주의 기획영화들만이 줄을 잇게 되었다.

영화가 대중들이 살아내는 삶의 현실이 아닌 그 현실에서 눈을 돌릴 오락성에 집중하고 그것을 극대화할 경우 관객 동원의 면에서는 분명 효과가 있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 오락성 위주의 영화 기획과 제작 경향이 지속될 경우 관객들은 비슷한 플롯과 스토리에 진부함을 느끼고 극장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최소한의 선의>와 같은 독립영화는 현재 한국영화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관객들의 극장 이탈 현상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를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한국영화계에는 쉽게 볼 수 없기에 아쉽고도 소중한 작품들이 많다. 부디 그러한 영화들에도 최소한의 선의가 주어지기를. 

이전글 그들과 우리의 이분법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