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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기로디 감독론2017-09-27

 


알랭 기로디 감독론

사람과의 친밀함과 기묘한 즐거움으로 가득찬 그의 세계


김보년 영화평론가 

알랭 기로디 감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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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기로디가 만든 영화들의 공통점과 그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감독의 개성을 한 두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하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알랭 기로디의 경우는 유독 더 어려운 편이다. 그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비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여러 개성을 넉넉히 갖추고 있는 감독이어서 특정한 요소만 따로 떼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기로디의 영화를 볼 때 눈에 들어왔던 몇 가지 특징들을 연결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의 알랭 기로디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알랭 기로디는 1964,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로디는 십대 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시네필의 모범 코스를 밟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5살 무렵부터 <언터처블>(1959~1963), <인베이더스>(1967~1968) 같은 TV드라마와 땡땡의 모험을 보며 영화를 꿈꿨다고 밝힌 적이 있다. 또한 프랑스 위키피디아는 알랭 기로디를 대중문화의 열렬한 팬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쉽게 비교하기 힘든 기로디만의 독특한 개성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영화와 거리가 먼 감독인 건 아니다. 그는 자기 영화의 빛을 설명하며 왕빙(<바람과 모래>)과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엉클 분미>)을 예로 들었고, 현실과 환상의 조합을 이야기할 때 데이빗 린치와 루이스 부뉴엘의 이름을 꺼내는 감독이다. 또한 바람직한 제작 환경에 대해서는 에릭 로메르를 모델로 삼고, 섹스신 연출을 말할 때는 존 카메론 미첼(<숏버스>)과 압델라티프 케시시(<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완곡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즉 그는 다양한 대중문화와 영화사의 여러 작품들을 동시에 참조하며 자신의 현재 위치와 나아갈 길을 가늠하는 작가이다. 테이블 위에 다양한 재료를 한꺼번에 늘어놓고 작품을 구상하는 화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그의 영화들에 반복적으로 계속 등장하는 요소들에 더 눈길이 간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재료들을 즐겨 선택하고 있을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인공들이 입는 선명한 색깔의 옷과 밤의 짙은 어둠에 대한 선호이다. 알랭 기로디가 연출한 모든 영화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이런 풍경을 그의 시각적 인장으로 여겨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기로디가 26살의 나이에 만든 13분 길이의 첫 단편 영화 <불멸의 영웅들>(1990)을 보면 어두운 밤거리를 쏘다니며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두 청년을 볼 수 있다. 밤이라서, 게다가 마땅한 조명도 없어서 주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들이 입은 노란색 폴로셔츠와 붉은 색 점퍼는 눈에 선명하게 띈다. 이런 대조를 보고 있으면 이를 알랭 기로디의 성정체성과 연결 지어 해석하고 싶은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알랭 기로디는 일찌감치 커밍아웃한 게이이며, 거의 모든 영화들에서 게이 주인공을 등장시켜왔다. 밤의 어두움을 빌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화려한 원색의 옷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욕망을 이런 상반된 이미지에서 읽으면 과한 해석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번째 단편 <아침까지 가라>(1994)는 물론, 그가 만든 모든 영화에서 기로디의 주인공들은 예쁜 옷을 입은 채 인적이 드문 시골이나 숲의 밤을 헤맨다는 사실이다(이는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게이들의 크루징(cruising)’을 노골적으로 지시하기도 한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기로디의 두 번째 특징은 주인공들이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어떤 감독들은 주인공을 고독한 상황에 내버려 둔 뒤 그 모습을 낭만화하기도 하고, 어떤 감독은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피곤함을 짜증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랭 기로디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과 만나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만약 거부당해도 낙담하지 않고 또 씩씩하게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는 2001년에 만든 중편 <오래된 꿈>이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장 뤽 고다르의 찬사를 받기도 했던 이 영화는 망해가는 낡은 공장에서 일하는 한 무리의 남성들을 그린다. 방금 이 공장에 도착한 주인공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영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은 직장 동료들(특히 할아버지)은 끈질길 정도로 주인공에게 접근하고,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르러 살짝 마음을 연다. 약간의 에로틱한 묘사와 함께 그려진 이 소통의 과정들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친해진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며 생각보다 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장면은 기로디의 첫 번째 장편인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2003)에서 찾을 수 있다. 꿈과 현실이 섞인 가운데 벌어지는 위험하고 나른한 모험을 그린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들려준다. “나는 결국 여기서 떠나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나는 여기서 너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물론 여기엔 거짓과 배은망덕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나는 여기가 좋다. 정말 진정으로 나를 잠에 들게 만들어주는 건[지금 주인공은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 해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이다. 사람들! 나는 내 평생 동안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들이 비록 골칫거리라도 말이다. 내가 죽음을 앞뒀을 때 누군가와 화해하지 못했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복잡한 영화의 내용과 자유로운 주인공의 정신 상태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대사의 정확한 맥락은 쉽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주인공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나는 이것이 기로디의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정서라고 생각한다. 기로디의 주인공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며, 기로디 영화의 서사적 동력 역시 여기에서 발생한다. 섬뜩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호숫가의 이방인>도 이 관점에서 보면 가슴 아픈 멜로드라마로 볼 수 있고, 코믹하고 황당한 상황으로 가득한 <도주왕>도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찾아 쉬지 않고 도주하는 주인공의 애틋한 성장 드라마로 읽을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옆에 있어줄 사람을 찾는 <스테잉 버티컬>(2016)의 할아버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기로디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감독이다.


그리고 기로디의 특별한 점은 이런 소통의 과정을 이야기 안에서만 그리는 게 아니라 과감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낸다는 데 있다. 기로디의 영화, 특히 최근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몸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제시하는 그의 연출에 놀랐을 것이다. 그는 배우들의 성기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남성의 발기된 성기도 보여주며, 심지어 사정의 순간까지 생생하게 포착한다. <스테잉 버티컬>에서는 출산의 순간을 길게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억압된 이미지를 자유롭게 보여주겠다는 정치적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로디가 재현하는 몸의 이미지에는 결국 친밀함의 정서가 깔려있음을 떠올려야 한다. 돌이켜보면 기로디의 영화 속 섹스 장면이나 누드 장면은 모두 친밀한 두 사람(혹은 세 사람, 혹은 그 이상)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이 상대의 마음을 가장 쉽게, 그리고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의 알몸을 만지는 것이고, 기로디의 카메라는 이 행위를 굳이 어색하게 숨길 생각이 없다. 다시 말해 서로를 원하는 사람들의 몸동작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게 기로디의 태도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때가 되었다>, <도주왕>, <호수의 이방인>, <스테잉 버티컬>수위 높은장면들을 다시 보면 그 안에 자연스러운 에로틱함이 충만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기로디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나는 몸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어요.” 이 말의 방점은 물론 리얼리티에 있다. 그는 사람들의 누드와 섹스를 이렇게 보여주는 게 가장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나아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섹스를 기로디처럼 따뜻하고 기분 좋게 그리는 감독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까지 알랭 기로디의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물론 아직 이야기하지 못한 다른 특징들도 있다. 그는 약간 싱거운 유머를 즐겨 사용하며, ‘개연성을 무시한 이야기 진행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배가 나온 노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숲과 들판, 강과 같은 자연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렇게 몇 줄의 글로 기로디의 특징을 쉽게 정리하는 건 기로디의 영화가 지닌 생생한 기운을 누르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번 특별전에서 기로디의 영화를 보며 그 매력을 직접 느끼길 권하고 싶다. 처음엔 조금 낯설 수도 있겠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기로디의 기묘한 즐거움에 중독되고 말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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