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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그때 그들> - 진실과 허무를 감추는 미소2019-02-21
그때 그들 스틸컷_

 

 <그때 그들>(Loro, 파올로 소렌티노 Paolo Sorrentino 감독, 2018)은 다소 우화적인 영화다. 이탈리아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와 그 주변 인물들의 욕망과 내적 붕괴를 ‘하이퍼리얼’ 스타일로 그린다. 감독은 앞선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우회적이거나 함축적인 표현을 자주 보여준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실제 상황을 모르면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꽤 포함되어 있다.


  먼저 제목부터 살펴보자. 원제인 로로(Loro)는 이탈리아어로 ‘그들’을 뜻한다. 그런데 황금을 뜻하는 로로(l’oro)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서 제목이 중의적이란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유혹당한 사람들’(Die Verführten)이란 부제목을 붙였는데, 상당히 영화 내용에 근접한다고 생각한다. <로로>는 실비오를 포함해, 욕망의 불구덩이로 날아가 스스로 파멸해가는 불나비들을 그리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자막이 나온다.

 

  ‘전부 기록인 동시에 임의적인 의견이다(Tutto documentato, tutto arbitrario)  ―조르조 만가넬리’

 

  한 마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내용은 허구’라는 문구로 보인다. 문제는 인용 형식이다. 만가넬리(Giorgio Manganelli, 1922~1990)는 저명한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작가, 문학평론가다. 그런데 만가넬리는 저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전부 임의적인 의견인 동시에 기록이다’라고 했다.

  문장의 출처는 『피노키오: 병행하는 책』(Pinocchio: un libro parallelo 1977)인데,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심층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서문에서 만가넬리는 자신의 해석이 독창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나름대로의 근거가 충분하다는 의미로 저 말을 했다(Tutto documentato는 ‘전부 문서로 기록됐다’는 뜻도 있지만 ‘문서 근거가 충분하다’ ‘관련 증거가 많다’는 뜻이 있다).


  감독은 어째서 만가넬리의 말을 뒤집어 ‘인용’(?)한 걸까.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며 논란의 위험을 비껴가면서도, 만가넬리의 원래 문장을 참조하게 만드는 형식으로 속내를 내비친다. ‘영화적으로 구성했지만 근거는 충분하다’, 또는 영화 형식적으로 ‘픽션이지만 다큐’란 것이다. 이 화법은 재치가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방법론을 요약해준다. 그 방법론은 사실 실비오의 방법론이다.


  영화 속 실비오는 뉴턴의 말을 ‘인용’(?)해 손자를 설득하며, 그것이 뉴턴의 말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뉴턴이 그런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어.” 감독은 이 같은 실비오의 화법을 심층해석하고, 따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만가넬리/피노키오, 실비오/뉴턴, 영화/실비오, 해석/원본, 픽션/현실이 나란히 병행한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실비오의 실제 삶에 병행하는 또 하나의 정전(正傳)이 되는 것이다. 

 

• 내면 탐구: 소극(farce)에서 비극으로

  영화의 내용적 성격을 살펴보자. 영화 속 실비오는 ‘헛되고 헛되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처럼 실비오를 허영의 인물로 설정하고, 그가 실각하고 재기하며 정신적 파국을 맞는 4년(2006~2010)을 그린다. 어쩌면 정치인의 측면보다 인간적 내면을 탐구하는 성격이 강하다. 영화는 과거의 애도, 노화와 상실에 연관된 현재의 인간적 고뇌, 그 회피로서 허영의 추구, 그리고 내적 붕괴라는 축을 따라 전개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지만 차츰 비극의 성격을 띤다. 영화에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실비오가 실의에 빠져 안마를 받으러 갔을 때의 장면을 들 수 있다. 안마용 침상이 마치 교회 건축 같은 구조 속에서 죽음의 장소, 관처럼 놓여 있다. 

 

  스틸컷


  영화는 실비오와 그 주변 인물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도함’을 표현한다. 불법, 부패, 약물, 파티…. <스프링 브레이커스>(Spring Breakers 2012)와 <스카페이스>(Scarface 1983),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실비오가 스스로의 능력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어 (실제로는 없는) 부동산을 판매하는 장면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성격과 겹치는 대목이다. 

 

• 이탈리아 정치의 양대 인물

  감독은 <일 디보>(Il Divo 2008)에 이어 <그때 그들>을 내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영화로 만든 셈이다. <일 디보>의 주인공인 줄리오 안드레오티(Giulio Andreotti, 1919-2013)는 1945년 이후 60년 동안 의석을 유지하고, 총리를 일곱 번 맡은 인물이다. <그때 그들>의 실비오(1936~)는 미디어재벌이며, 1994년 정치를 시작해 총리를 네 번 맡은 인물이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현대 이탈리아 정치를 양분한다. 그러면서 너무나 대조적이다. 줄리오는 제1공화국을 대표하고, 실비오는 제2공화국을 대표한다. 줄리오의 이미지는 복잡하고, 실비오는 단순하다.

 

  “좌파는 날 파악 못 했어. 그들은 모든 걸 항상 복잡하게만 여기거든.”
  “사실 모든 게 너무나 단순한데요.”

 

  줄리오가 ‘노스페라투’라면 실비오는 목신이다. 줄리오는 마피아, 교황청, 언론탄압의 어두움과 연관되고, 실비오는 이해충돌, 언론독점, 성 스캔들과 연관된다. 줄리오를 인생의 말년까지 따라다닌 것은 언론인 살해 교사 혐의였고, 실비오를 따라다니는 것은 탈세 혐의다. 줄리오가 종교적, 금욕적이라면, 실비오는 대중적, 세속적, 쾌락적이다. 그리고 줄리오의 시대에 이탈리아 경제가 지속 성장했다면 실비오의 시대에 경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여기서 영화와 연관된 정치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는 1994년을 전후로 갈린다. 먼저 46년 동안(1946~1992)은 기민당(Democrazia Cristiana)이 장기 집권했다. 이 시기의 양대 정당은 기민당과 이탈리아공산당인데, 46년 동안 5년을 제외하고 기민당이 집권한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8년(1983~1991)은 사회당을 비롯한 중도 좌파와 연정한다. 실비오가 사회당의 후원을 받아 미디어 재벌로 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시기다.


  그 다음 1996년부터 양대 정당은 ‘자유 동맹’(Polo per le Libertà)과 ‘올리브’로 출발한다. 곧이어 2001년 우파는 중도우파로 집결해 ‘자유의 집’(Casa delle Libertà)이란 동맹을 결성한다. 영화 속 실비오가 여학생 모델을 파티에 초대하고 유혹하며 “여긴 자유의 집이야”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현실 정치를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한편 좌파는 중도좌파로 집결하고 ‘민주당’을 결성한다.

 

• 부패수사와 추한 타협

  이탈리아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부패수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한 손’(Mani Pulite)이란 별명으로 불린 이 수사는 1992년 이탈리아 사회당의 밀라노 시립요양원 뇌물 사건으로 시작됐다. 영화 도입부, 세르지오가 학교 급식에 관련해 정치인에게 성 접대를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화를 들어보자.


  “당은 어떻죠?” “말만 많지. 민주당이 그래.” 부패수사의 시작이 시립요양원 청소 용역에 관련된 뇌물 사건이란 사실을 떠올리게 하며, 민주당의 현실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부패수사는 기성 정치세력을 몰락시킨다. 기민당과 공산당 모두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렇게 해서 1993년 선거법 개정 후 투표로 제2공화국(1994)이 탄생한 것이다.

 
  제2공화국의 첫 총리가 실비오다. 하지만 그는 은밀한 타협, 또는 추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영화의 묘사처럼 원래 그는 밀라노 근교의 대규모 주택단지(1970~79) 개발업자였다. 그 당시 주택단지에 케이블 TV를 공급한 것은 선구적 기획이었다. 1980년대 그는 미디어사업을 확장하는데, 이 시기 사회당 당수이자 연정 정부의 총리인 ‘베티노 크락시’의 전폭적이고 은밀한 후원을 받는다. 영화에서 아내 베로니카와 언쟁할 때 이런 대사가 나온다.

 

  “노에미는 평생 알았던 사회주의자 친구 딸이야. 크락시의 운전사였어.”
  “당신[실비오]은 악질이야. 크락시 덕에 살아남았고.”

 

  어쨌거나 실비오가 크락시 덕분에 미디어제국을 건설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우파였지만, 사업가로는 좌파의 부정한 지원으로 성장했다. 이 점에서 그는 제1공화국의 논란을 덮고, 제2공화국을 여는 인물로 적격이었다. 정치인 실비오의 출범이 추한 타협의 산물인 이유다.


  실비오 본인 입장에서도 밀라노에서 시작된 부패수사가 밀라노 기업가인 자신의 목을 조여 오자, 스스로 기업을 지키려고 정치인이 된다(“감옥 안 가려 정치를 했죠. 내 것과 TV를 지키려고”). 전국 방송채널 3개와 이탈리아 최대 신문과 주간지를 가진 그는 이처럼 좌우 양쪽의 내밀한 지지를 받고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 실비오의 정치

  1994년 실비오는 전진이탈리아 당(Forza Italia)을 창당한다. 또 남부에 기반을 둔 민족연합(Alleanza Nazionale), 북부 산업가에 기반을 둔 북부동맹(Lega Nord)과 함께 자유동맹을 결성하고 선거에 승리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불안정한 연대였다. 특히 북부동맹은 북부 세금으로 남부를 지원하는 정책에 거세게 반대하며, 연대를 위태롭게 했다. 사실 그가 실각하는 결정적 계기도 북부동맹의 이탈에 있었다.


  그가 남부 정책에 관심을 쏟은 이유일 것이다. 영화 속 여자 정치인 ‘쿠파 카이아파’(Cupa Caiafa)는 실비오가 재기할 가망이 없다고 보고, 그의 곁을 떠나 신당을 만드는데, 그녀는 아마도 남부 지역의 민족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다니엘라 산탄체(Daniela Santanchè)를 모델로 삼은 것 같다. 재기에 성공한 실비오는 즉각 남부 정책을 강화한다.

 

  “첫 각료 회의를 쓰레기로 숨이 막히는 나폴리에서 열고 싶소.
   남쪽을 발전시켜… 성장을 촉진하는 거야. 시칠리아에 다리도 짓고.”

 

  실비오가 남부 출신인 세르지오 앞에서 쿠파 카이아파의 배신을 비웃으며, 남부 정책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실제 그는 나폴리 노래를 즐겨 불렀고, 영화 속에서도 나폴리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또 UN회의 대신 나폴리를 방문하는 장면도 그가 남부 정책에 관심이 높았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그럼, 정치인 실비오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묘사된 각종 막말, 붕가붕가 파티, 성 스캔들, 연대세력과 불화, 이해충돌, 탈세혐의를 차치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언론재벌이 정부 수반이 되는 부정적 사례를 남겼다. 또 성공한 기업가로 경제 회복을 약속했지만 실패했다. 부, 성공의 이미지로 집권했으나 경제는 나빠지고, 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한 것이다. 우리가 베로니카의 말에 공감을 느끼는 이유다.
 
 “당신은 병자야. 여자에 미쳐서가 아니라 기회가 있어도 나은 일을 안 했거든.
  이탈리아인들을 도울 대단한 기회를 썩혔어.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사실 베로니카와 이탈리아 사회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실비오를 사랑했지만, 그는 이들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시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2011년, 각종 스캔들로 사임한 그는 2018년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어째서 불사조처럼 계속 부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물음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탐구하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 표범주의(gattopardismo)와 공생하는 ‘그들’

  실비오가 불사조인 것은 언론 장악 때문일까. 그게 전부는 아닐 듯하다. 1994년 이후 양대 정당의 정권교체는 원활했고, 완벽한 좌우 교체 패턴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표범주의’와 연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표범주의는 ‘겉모습만 바꾸고 본질을 바꾸지 않는’ 정치 개혁을 말한다.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Il Gattopardo, 1958)에서 유래한 말이다.


  소설에서 탄크레디는 돈 파브리치오가 낡은 왕정 체제에 집착하며 입헌군주제 개혁에 저항하는 것을 말린다. 그러다가는 왕과 귀족이 아예 사라지는 공화국 체제로 바뀔 수 있다며, 정말 귀족 지위를 유지하려면 입헌군주제 개혁을 받아들이라 했다. 이때 “세상이 변치 않길 바란다면, 세상을 바꿔야한다”는 탄크레디의 말이 표범주의를 요약하는 표어다.

  
  그 뒤로 세상은 탄크레디의 말처럼 흘러갔다. ‘그들’은 약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여전히 권력을 유지한 것이다. 1994년 제1공화국이 제2공화국으로 바뀌고, 외견적인 정권 교체가 거듭되는 모습도 표범주의를 보여주는 듯하다. 표면이 교체될 뿐, 내용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관점에서 실비오의 부활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민들은 피상적인 여론과 겉모습(이미지)에 기울기 마련이다.


  영화는 실비오처럼 표범주의를 이용하는 사람, 또 표범주의와 공생하는 ‘그들’, 그리고 표범주의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표범주의를 유지시키는 시민들의 내면적 풍경을 함께 통찰한다. 영화 도입부, 양 한 마리가 실비오의 집안에 들어간다. 졸음이 오는지 두 눈을 감던 양이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집으로 들어가자 모니터에서 퀴즈 쇼와 광고 영상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곧이어 양은 화면 속의 물음표들 앞에서 에어컨의 냉기로 쓰러져 죽는다.


  이 우화적인 공간은 실비오의 미디어왕국을 상징하고, 그 속에서 양이 쓰러지는 모습은 시민들이 미디어에 홀려, 정신이 마비된 상태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 장면에서 들리는 노래는 나폴리의 가수 브루니(Sergio Bruni, 1921~2003)의 <일어나요>(Scétate)이다. 이 제목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내 목소리를 들어봐요’라는 노랫말은 감독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해준다(이 장면의 또 다른 측면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이야기하겠다).


  다음으로는 로마 시내에서 트럭이 전복, 추락하는 장면이 있다. 트럭이 폭발해 잡동사니들이 공중에 솟아오르자 세르지오 일행은 넋 나간 사람들처럼 이 광경을 쳐다본다. 밤하늘에서 이렇게 잡동사니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곧이어 낮 하늘에서 ‘파티 약’(party drug)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세르지오 일행은 마치 하늘과 파티 약을 품속으로 품어 넣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을 쳐다본다.


  이 장면 또한 사람들이 표범주의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추락한 트럭은 이탈리아가 처한 현실과 같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 파티가 시작되자마자 이내 파티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잊고 만다. 영화는 이처럼 시민들이 현실에 대해 체념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실비오의 인물 성격

  한편 실비오는 표범주의를 이용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인물이다. 그는 또한 표범주의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유인하기에 걸맞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 점을 여러 가지 성격으로 표현한다. 쇼맨십, 연기자, 광대, 세일즈맨… 여기서 세일즈맨은 실제로는 없는 부동산을 전화로 판매하는 장면처럼 사실상 불가능한 꿈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행위와 연관이 된다. 베로니카는 실비오에게 말한다.

 

  “당신은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지…
   당신은 하나의 공연에 끝없이 매달려서 연기를 계속할 뿐이야”

 

  그는 자기 확신에 차있고, 자기애에 함몰된 인물로 설정돼 있다. 영화 속의 한 인물은 소설가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의 말을 인용하며 그의 망나니 같은 언행이 열등감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그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의 문장을 인용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티 행사를 위해 일하는 젊은이의 심정을 그린 문장인데, 실비오의 강조점은 끝 부분에 있다.


  “그 방의 젊은이는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제 난 그가 아냐.” 그는 단순히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기보다는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그의 끝없는 욕망은 단지 물질적 ‘궁핍’이 아닌 정신적 ‘공허’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영화는 실비오의 태도를 요약해주는 문구 하나를 제시한다.

 

  “다 가지는 거론 부족해”(Tutto non è abbastanza; Everything is not enough).

  대체 실비오는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영화에는 그 욕망 구조를 암시하는 대화가 있다.

  “뭘 기대했나? 국내 최고 갑부에 총리까지 됐는데
  다들 좋다고 열광까지 해주길 바라나?”
  “응. 그게 바로 내가 기대했던 거야

 

  그 욕망의 바탕에는 사랑, 인정, 존경의 갈구가 있는 것이다. 실비오는 <스카페이스>의 주인공 토니 몬타나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의 정상에 올라 모든 것을 거머쥔 토니는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거야? 이게 다야?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마약하고? 그 다음엔?… 내 아내를 봐. 약쟁이야… 자식조차 가질 수 없어”


  실비오와 토니의 공통점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는 점에 있다. 마치 쉴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살 수 있는 백상아리와 같다고 할까. 자식을 낳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토니에게 아내 엘비라는 되묻는다. “당신은 약을 팔고 사람을 죽여요… 당신은 어떤 아버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아버지는커녕] 남편이 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에요.” 토니 부부의 언쟁은 실비오 부부의 언쟁과 닮았다.

 

• “당신은 추억을, 난 계획을 생각해요”

  실비오는 과거에 TV 퀴즈 진행자였던 마이크가 과거에 사로잡힌 반면, 자신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미래만 생각한다는 말은 자성(自省)하지 않는다는 말과 통한다. 이런 실비오에 비해 그의 아내는 지적이고, 자기 성찰을 하는 인물이다. 베로니카가 거울을 볼 때, 실비오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이때 거울은 자기 성찰을 상징하는데, 실비오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두 인물이 선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이다(곧이어 실비오는 과거에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진 시절을 회상한다. 그 순간 실비오의 집사가 마당에서 도끼로 뱀을 내려치고 “방역이 필요하겠군.”이라고 말한다. 실비오가 ‘자성 없는 전진’을 계속하도록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거울 장면은 니콜라 투르니에(1590~1639)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 <정의와 허무의 알레고리>(Allegory of Justice and Vanity)를 떠올리게 한다. 한 여인이 왼손으로 천칭을 들고, 오른손으로 거울을 받쳐 세운 모습. 오직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만이 가치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다는 상징으로 보인다. 자신의 삶을 성찰해야 어떤 행동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인지 판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비오에게 ‘정의’에 대한 감각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 실비오의 얼굴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실비오의 자성 없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의 얼굴이다. 그 얼굴은 이탈리아 전통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단골로 등장하는 풀치넬라(pulcinella) 가면을 닮았다. 아니, 실비오의 미소 짓는 얼굴은 그 자체로 가면 같다. 토니 세르빌로가 연기하는 실비오의 얼굴은 광대와 황제의 양면성을 갖췄다. 한편으로 숨김과 방어의 면모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명령과 공격의 면모가 있다.


  실비오는 스텔라를 유혹하는 데 실패한다. 스텔라가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라고 말하자 그는 “누구도 날 기분 나쁘게 할 순 없지”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영화는 실비오가 자신의 늙음을 생각하며 실의에 빠지고, 그 허무감을 이기려고 한층 더 어린 여자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스텔라의 대화에서 드러낸 얼굴은 진실과 허무를 감추는 철가면이었던 것이다.  

 

  한편 명령과 공격의 얼굴로는 도입부에서 실비오의 집안에 들어선 양을 응시하는 에어컨을 예로 들고 싶다. 에어컨이 곧 얼굴이란 이야기다.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된 에어컨은 얼굴처럼 작동한다. “감정-이미지(affection-image)는 클로즈업이고, 클로즈업은 얼굴”이라는 질 들뢰즈의 말처럼, 심지어 생명체가 아니라도 클로즈업되고 얼굴처럼 작용하며 우리를 응시한다면 그것은 얼굴이라는 들뢰즈의 말처럼, 에어컨은 얼굴이다.


  에어컨 하단의 냉풍 배출구가 열리는 모습은 실비오의 기괴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에어컨의 미소는 ‘다스 베이더’가 내는 것 같은 바람 소리, 기계 소리와 함께 실내의 정적을 깨뜨리며 양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런데 실비오의 미디어왕국을 상징하는 모니터 장치와 이 냉각 장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생명의 온기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니터 영상은 무미건조하고 차갑고, 영혼 없는 미디어의 느낌을 준다.


  이 장면에서 에어컨의 미소는 공격적인 얼굴이다. 입에서 나오는 냉기로 사람들을 마비시킨다. 여기서 냉기는 중의적인 것으로 실비오의 이기적인 면모와 함께 실비오가 지배하는 미디어의 차가운 속성을 상징한다. 즉 상품 광고로 표현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상업주의, 또 선거 캠페인 영상인 <실비오가 있어 다행이죠>(Meno male che Silvio c'è, 2008)와 같이 정치 선전 기능을 노골적으로 수행하며 사람들을 홀리는 선정주의를 말한다(영화는 이 선거 캠페인 영상을 문자 그대로 선정적으로 변형시켜 삽입했다).   


  이때 에어컨-실비오의 명령적이고 공격적인 미소는 일반적으로 정서 소통을 돕는 미소와는 거리가 멀다. 고급 향수나 명품 브랜드 광고 모델의 비현실적, 초월적, 제왕적 미소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미소는 장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감정의 냉동(냉결 보존 cryogenisation)”, 정서 소통의 마비를 초래한다. 감독은 이것을 양이 얼어붙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 같다. 

 

• ‘그들’과 ‘우리들’의 얼굴

  영화는 이처럼 표범주의를 이용하고 유지시키는 실비오와 ‘그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며 ‘그들’과 대비되는 ‘우리들’의 얼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개구리 인형 탈을 쓴 남자 도우미가 파티장 한 구석에서 탈을 벗고 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라퀼라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한다. 한때 ‘그들’이었던 세르지오도, 키라도 걱정 띤 얼굴로, ‘우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TV뉴스를 본다.


  재난 지역에서 실비오는 뉴타운 건설을 약속하지만, 살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지진으로 매몰된 예수 상부터 되찾아주기를 바란다. 이윽고 ‘민방위 구호반’이 건물의 잔해 속에서 예수 상을 발굴하는 과정이 TV 생중계된다. <따뜻함>(Warmth 온정)이란 제목의 현악 연주곡이 느리고 잔잔하게 울리며, 도입부에서 양이 얼어붙는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카메라는 예수 상을 들어 올리는 구호반의 얼굴과 그 광경을 숨죽인 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잔해 더미 위에 안착한 예수의 얼굴을 비춘다. 그런 다음 ‘그들’(Loro)이란 자막 아래로 구호반의 지친 얼굴들을 천천히, 하나하나 비춘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그들, 우리의 그들, 우리가 생각하고 지켜야 할 그들이란 뜻일까. 이렇게 해서 영화는 두 종류의 그들과 그 얼굴을 형상화한다. 우리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거나 희망 고문을 하는 ‘그들’이 있고, 자신의 이마에 땀을 흘리며 우리에게 희망을 되찾아주려고 애쓰는 ‘우리의 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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