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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블라인드 멜로디> - ‘자타카, 테일 오브 테일즈(Jataka, Tale of tales)’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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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멜로디> - ‘자타카, 테일 오브 테일즈(Jataka, Tale of tales)’
2019.9.4.(수) 19:00 영화의전당 소극장
<블라인드 멜로디>(Andhadhun, 2018)는 한 맹인 피아니스트가 서로 속고 속이는 아수라장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린 스크루볼 누아르다. 누아르와 스크루볼 코미디의 결합은 코엔 형제의 작품처럼 어떤 범죄 행위에 이어지는 행위들이 점점 더 일을 꼬이게 만들며 최악의 결과를 낳는 경우에 일어난다. 다시 말해 기저를 이루는 서사는 어둡고 심각한 반면 관객들의 예상을 넘어 과도하게 나쁜 결과가 빚어지면 오히려 코믹한 느낌을 주고, 이 경우 두 장르가 결합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블라인드 멜로디>는 스크루볼 누아르다. 스리람(Sriram Raghavan) 감독이 찰리 채플린과 알프레드 히치코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힌디어 원제인 안다둔(Andhadhun)은 ‘무모한’(reckless) ‘무분별한’ ‘무계획적인’ ‘맹목적인’이란 뜻이다.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Breathless; 숨 가쁜, 숨 막히는)와 비슷한 뉘앙스를 준다. ‘안다둔’이란 단어를 둘로 쪼개 보면 ‘안다’는 ‘눈 먼’(또는 눈 먼 사람=blind)이란 뜻이고, ‘둔’은 ‘곡조’(=tune, melody)를 뜻한다. ‘블라인드 멜로디’란 말이 성립하는 이유다.
영화 속 악녀인 시미가 옆방에서 울리는 피아노 멜로디에 놀라지만, 고양이가 건반을 밟았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는 장면이 있다. 이처럼 피아노 선율의 의미를 모르는 고양이가 특별한 의도 없이, ‘맹목적’으로 행동한 결과로 멜로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다. 더구나 이 장면은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와 함께, 말 그대로 블라인드 멜로디의 상황을 만든다.
• 배경이 되는 영화들
영화의 영어 제목은 ‘피아니스트를 쏴라’(Shoot the Pianist)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1960년 작품에서 따온 제목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원래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였지만 비극적 사건을 겪은 뒤로 과거와 결별하고, 바에서 대중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끝내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고 범죄 사건에 휘말린다. <블라인드 멜로디>의 주인공인 아카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후반부, 바에서 아카쉬와 협연하는 악단 이름이 아즈나부르(Aznavour)다. 이것은 트뤼포 영화의 주연 배우인 샤를르 아즈나부르에 대한 오마주다.
엔드 크레디트가 나오고 “올리비에 트레네 감독의 단편영화 ‘피아노 조율사’에서 영감을 받음”이란 자막이 나온다. <피아노 조율사>(L'Accordeur 2010)의 주인공은 번스타인 피아노 대회에 실패한 뒤로 맹인 행세를 하며 피아노 조율사로 살아간다. 그가 맹인 행세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잘 대해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각의 상실이 예술적 감성을 예민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주인공이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블라인드 멜로디>는 이런 인물 설정을 가져왔다.
<피아노 조율사>에는 약간의 관음증 요소도 있다. 조율사가 진짜 맹인이라고 믿는 고객들은 그 앞에서 바지를 갈아입거나, 옷을 벗은 채로 무용 연습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의 집을 방문한 조율사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지금부터는 살아남기 위해 맹인 행세를 해야 한다. 그는 태연한 척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앞쪽에는 고객의 시신이 있고, 뒤쪽에는 고객의 아내가 네일 건을 겨누고 있다.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블라인드 멜로디>는 이런 상황 설정을 가져왔다. 여기서 악녀 시미의 성격도 소설과 영화 제목을 통해 표현된다. 시미는 남편 곁에서 소설 『아니타』(Anita 1971)를 읽는다. 소설의 부제목인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는 ‘나이 많은 남자의 젊고 매력적인 아내’를 뜻하고, 소설 속 남편은 살해당한다. 또 영화 후반부 스와미 박사는 시미를 ‘레이디 맥베스’로 부른다. 2016년 영화화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레이디 맥베스』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감추려고 주변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하는 인물이다.
• 인도 영화에 대한 오마주
영화는 인도 영화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 엔드 크레디트에서 주제곡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역대 인도 영화의 피아노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나온다. 그뿐이 아니다. 아카쉬의 피아노에는 키쇼르 쿠마르(Kishore Kumar·1929~1987)의 사진이 올려져있다. 키쇼르는 인도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영화 음악, 제작, 연출, 연기를 비롯해 가수로 활동했다. 영화에 삽입된 영상에서 1970년대 스타였던 신하가 노래하는 모습은 <허니문>(Honeymoon 1973)의 장면인데, 실제로는 키쇼르의 목소리다.
물리가 모는 오토릭샤의 뒷면에는 ‘아이쉬와리아 라이’(Aishwarya Rai)의 사진이 있다.
/straight>(1999)의 한 장면인데, 오른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가린 모습이 ‘블라인드 멜로디’라는 주제에 상응한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그 사진 아래에 적힌 문구다. ‘뒤돌아서지 말고, 나를 보세요’. 이것은 영화 <미스터 420>(Shree 420, 1955)에 포함된 노래의 제목이다. 여기서 스리람 감독은 ‘미스터 420’과 아카쉬의 인물 성격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숫자 420은 당시 인도에서 사기·부정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는 형법 420조를 가리킨다. 이런 뜻에서 미스터 420은 사기꾼의 경칭이다. 주인공은 찰리 채플린 같은 인물이다. 그는 한때 악덕 기업가의 꾐에 빠져 거짓과 향락의 삶을 살았지만, 그 기업가가 꾸미던 폰지 사기로부터 자신과 서민들을 지켜내고 사회 지도층의 위선을 폭로한다.
결말부 주인공은 악덕 기업가 무리를 가리키며 “이들은 그냥 사기꾼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기꾼’(Shree 420)”이라고 비꼬아 말한다. 부유하고 아름다우나 부도덕한 여성 시미, 타락한 경찰서장, 불법 장기 매매를 주도하는 의사가 꾸며놓은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하는 아카쉬를 떠올리게 한다. 말하자면 아카쉬는 <미스터 420>의 주인공처럼 꾀 많은 ‘트릭스터’이다. 비록 사기꾼 성격이지만, 착한 사기꾼이라고 할까.
끝으로 언급할 인도 영화는 스리람 감독 자신의 <특수요원: 살인면허>(Agent Vinod 2012)이다. 앞서 <피아노 조율사>를 말했지만, 이 영화에도 맹인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여자 피아노 연주자가 호텔 로비에서 ‘인연’(Raabta)이란 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남자들이 소음기 총으로 서로를 죽이는 장면이 있다. 맹인 연주자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연주를 마치고 로비를 걸어 나간다. 이 혼란 속의 연주는 <블라인드 멜로디>의 살인 현장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 영화는 자타카 설화를 현대화했다
서사 구조의 측면에서 영화는 고대인도 설화집인 ‘자타카’의 「원숭이 심장과 악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자타카는 기원전 3세기에서 5세기 전후 ‘붓다의 전생’이란 관점으로 547개의 설화를 기록한 이야기책이다. ‘자타카’란 말은 ‘~의 아래에 태어남’(=born under)이란 의미이고, 중국에서 본생담(本生譚)으로 번역했다. 이 가운데 「원숭이 심장과 악어」는 한국의 ‘토끼의 간’ ‘별주부전’의 원형으로 알려졌다.
이야기의 판본에 따라 원숭이가 토끼(또는 여우, 자칼)로 바뀌고, 심장이 간으로 바뀌며, 악어가 거북(또는 물고기)으로 바뀌고, 악어의 임신한 아내가 용왕으로 바뀌어도 이야기의 원형은 같다. 첫째,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 A와 B가 있다. 둘째, A가 B의 장기를 뺏으려고 B를 속여 자기 세계로 납치한다. 셋째, B는 거꾸로 A를 속이고 무사히 자기 세계로 되돌아간다. 키워드는 속임, 비밀, 이익, 평정심이다.
영화에는 이 요소들이 있다. 아카쉬가 사는 지역, 신하와 시미가 사는 지역, 장기 매매 집단이 활동하는 지역은 판이하게 다른 세계다. 어느 날 시미의 지역에 들어간 아카쉬는 눈을 빼앗기고, 목숨을 위협받으며 쫓긴다. 그러다 장기 매매 집단에 납치되어 콩팥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아카쉬는 그들에게 1000만 루피를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들의 관심사를 시미 일당 쪽으로 돌리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야기 원형에서 장기를 빼앗는다는 요소를 오늘날의 장기 매매 범죄로 바꾸고, 행위자를 하나 더 추가했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행위자를 둘로 분열시킨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위기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긴다는 점은 같다. 주인공은 두 행위자 간에 싸움을 붙이고, 한 세력을 이용해 다른 세력을 제어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고 할까.
‘붓다의 전생’이란 관점에서 「원숭이 심장과 악어」 이야기 속 원숭이는 붓다이고, 악어는 붓다를 괴롭힌 데바다타이며, 악어의 임신한 아내는 친차(旃遮 전차: 붓다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거짓말로 붓다를 모함한 여인)로 설정된다. 또 불교 관점에서 ‘평정심’이 교훈으로 강조된다. 영화에서 아카쉬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자타가 요소로 볼 수 있다. 아카쉬는 누구나 놀랄 법한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신중하게 대처한다. 그런데 자타카가 나온 뒤 기원전 300년 무렵, 새 설화집이 나온다. 그것은 판차탄트라(Pancha Tantra)이다.
• 판차탄트라 요소
판차탄트라는 자타카 이야기를 수용하지만, 불교적 색채를 지운다. 선·악과 같은 도덕적 교훈보다 정치(통치)적 교훈과 처세 방법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이 왕자를 위한 교육서로 불리는 이유다. 책에 포함된 「원숭이 심장과 악어」 또한 속임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속임의 기술을 교훈으로 삼는다. 비밀을 일찍 밝히면 실패한다는 교훈 같은 것이다(악어가 원숭이를 등에 태우고 가다가 원숭이를 데려가는 이유를 말하는 바람에 원숭이에게 당한다).
이야기도 조금 바뀌는데, 자타카 원형에 우정과 갈등 요소를 더한다. 원숭이와 악어는 친구 사이였고, 둘이 가까이 지내느라 악어는 아내에게 소홀했는데, 이를 질투한 아내가 원숭이를 제거하려 한다. 아내의 꾀병(임산부에게 원숭이 심장이 약이라는 거짓말)에 속은 악어는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에서 아카쉬를 납치한 ‘물리’가 엄마의 생계와 아카쉬의 목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판차탄트라 요소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자타카 이야기든 판차탄트라 이야기든 ‘원숭이 심장과 악어’에는 신체 장기가 중요한 요소이다. 영화에서도 이야기 전개에서나 대사·노랫말에서나 장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타이틀 카드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인생이란 그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달렸다(What is Life? It depends on the Liver).” 이때 리버(liver)는 중의적이다. ‘삶을 사는 사람’이란 뜻이자 ‘간’이란 뜻이다.
후자의 경우, 생명은 간 기능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힌디어로 간을 뜻하는 자가르(jagar)가 마음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는 측면에선 ‘인생은 용기 있는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 내용적으로는 (시미의 간을 팔아넘길 때) 우리 인생은 그녀의 간 덕분에 역전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고 노랫말에도 신체 장기에 관한 상징들이 빈번하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 신체 장기에 관한 노래
노래에는 눈, 심장, 간, 콩팥을 독립 인격체처럼 묘사하는 표현이 많다. ‘눈이 잘못이 아니다, 심장에게 물어봐라’는 식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또 ‘어둠 속에서 춤을’이란 이벤트가 열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눈을 가리고 춤출 때 아카쉬는 <레일라 레일라>(Laila Laila)를 부른다. 레일라는 동방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레일라와 마지눈(Majnun)’ 이야기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아카쉬는 이 러브스토리에 빗대어 소피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 것이다.
몇 구절을 들어보자. “당신은 내 마음(심장) 깊은 곳에 살고 있어요.” “불쌍한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네요.” 이 후렴구의 ‘미친 듯 날뛰다’는 표현은 영화 제목인 ‘안다둔’을 번역한 것이다. 이때 안다둔은 레일라의 연인인 마지눈의 뜻이 ‘미친 사람’이란 사실과 조응한다. 참고로 레일라의 뜻은 밤(night: 비유적으로 피부 머리 눈 색깔이 검은 미인)이고, 결말부 아카쉬의 노래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랑스런 여인”이란 가사와 조응한다.
한편 후반부 아카쉬와 장기 매매 집단이 경찰 서장과 결전을 앞둔 전날 신하의 딸 다니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슬퍼하는 모습이 보이고, 뜬금없이 “용기가 무슨 소용? 심장이 무슨 소용? 가장 소중한 부분은 콩팥”이란 노래가 흐른다. 이 자막에서 ‘용기’로 번역한 것은 힌디어 ‘자가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가르는 간 또는 용기를 뜻하므로, 이 가사는 “간이 무슨 소용? 심장이 무슨 소용? 가장 소중한 부분은 콩팥”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럼, 다니는 무슨 전화를 받았을까. 아무래도 아카쉬의 전화를 받고, 아빠가 살해된 비밀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되는 근거는 바로 다음 가사에 있다. “적대감은 그냥 생기지만 우정은 그냥 생기지 않아.” 이때 우정은 아카쉬와 다니의 우호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래는 이렇게 이어진다. “오, 형제여. 그건 심장인가 블랙홀인가.” 심장이 끝없는 욕망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간, 심장, 용기, 적대감, 원한, 욕망을 동일시하는 의미 계열과 콩팥과 우정을 동일시하는 의미 계열이 대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콩팥과 우정이 연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래 자막에선 번역되지 않았지만 ‘두 개의 콩팥이 한 짝’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기반 한다. 콩팥의 형태 자체가 ‘두 개가 한 짝’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징 차원에서나 전통의학 차원에서나 ‘균형과 조정’을 상징한다(이런 발상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다시 말해 우정은 균형과 조정의 감각과 연관이 있다. 아카쉬는 신하의 아내였던 시미를 납치해 복수를 시도하지만, 신하의 딸인 다니에게는 호의를 베풀며 진실을 알려준다. 균형과 조정을 실행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콩팥과 우정의 미덕을 예찬하는 노래가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영화 노랫말에는 신체 장기에 관한 상징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서사 구조에서 불법 장기 매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불가능한 목격담
특히 아카쉬가 장기 매매 집단에 납치되는 사건은 ‘위기의 전환’을 마련하는 계기다. 아카쉬는 그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복수를 위한 반전의 계기로 활용한다. 그런데 결말부 주인공이 소피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카쉬의 눈은? 마지막 장면에서 지팡이로 깡통을 쳐내는 모습은 아카쉬가 시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 아카쉬의 회고담은 뭘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불가능한 목격담’이다. 적어도 스와미 박사의 차를 타고 갈 때 아카쉬는 실명 상태였다. 설령 토끼가 사냥꾼에게 쫓기다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쳐 자동차를 전복시킨 게 사실이라 해도 그 과정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인공의 회고담을 둘로 나눠야 한다. 소피가 “그 다음엔요?”라고 묻기 전의 회고담은 진실이지만, 그 뒤의 회고담은 허구란 말이다.
토끼와 연관된 두 번째 회고담은 또 하나의 설화이자 우화라고 생각한다. 이 우화의 바탕에는 실존적 선택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시미를 팔아넘기고 시력을 되찾느냐, 아니면 시미를 경찰에 넘기고 시력을 잃느냐 하는 문제다. 아카쉬가 이 문제를 놓고 갈등한 건 분명하다.
아카쉬 : 난 그 돈 안 받아요.… 죽이려고요? … 그냥 보내 줘요.
박사: 저 여자가 불쌍해? 단지 돈 때문이 아냐…
저 여자 죽이면 여러 명이 새 삶을 얻어
스와미 박사는 시미가 어차피 처형될 거라는 현실과 함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주의를 내세우며 아카쉬를 설득하려 한다. 이에 대해 아카쉬는 법치주의(“경찰이 곧 체포할 거예요. 그냥 보내줘요.”)와 비폭력을 생각하며 고민한다. 물론 그가 시력을 되찾았다는 것은 결국엔 박사의 말처럼 시미를 처리했다는 걸 말해준다. 그럼에도, 그가 박사의 논리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카쉬 자신의 논리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토끼 우화다.
• 맹목의 세계
이 토끼는 앞을 볼 수 없다. 토끼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시미를 해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일을 미리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토끼는 살기 위해 양배추를 먹으려 했을 뿐이고, 총소리가 들리자 달아났을 뿐이다. 다만 그 ‘맹목적’ 행동의 연쇄가 낳은 결과로 시미의 자동차가 전복된 것이다.
소피와 아카쉬의 첫 만남도 그랬다. 소피의 말처럼 사고이자 우연이었다(by accidence). 아카쉬가 피아노 바에서 신하를 알게 되고, 그의 집에서 연주해주기로 약속했지만, 누구도 그날 신하가 살해되리라 예상하진 못했다. 그날 경찰 서장이 총을 지니고 가고, 우발적으로 총이 발사되리란 걸 예견하거나 의도한 사람은 없었다. 아카쉬가 장기 매매집단에 납치되는 것이 악당들에게 복수하는 계기가 될 걸로 예측한 사람도 없었다. 간 이식을 필요로 하는 공주와 시미의 혈액형이 같다는 걸 미리 알고 시미를 납치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각각의 사건 계열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미는 최후를 맞은 것이다.
어쩌면 ‘인과응보’는 이런 것이다. 기독교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치지만, 인도 종교에서 인과응보는 세밀하고 정교한 자연적 필연성으로 실현된다고 말한다. 아카쉬는 시미가 죽고 자신이 시력을 회복한 것이 이런 필연성을 따랐다고 본 것 같다. 토끼 우화는 자연적 필연성의 세계이고, 맹목의 세계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처럼 ‘눈 먼 시계공’(blind watch maker)의 세계다. 세상의 미시적 존재들은 그때그때 다르마(dharma, 법)를 따를 뿐이지만, 그 결과로 세상은 인과응보를 실현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복수하지 마라. 카르마에 맡겨라. 인과응보의 필연성로 하여금 모든 일을 하게 하라. 이것은 정의(justice)의 세계와 다르다. 인도 종교는 정의 대신 이로움(goodness, 좋음)을 말한다. 다르마는 ‘진리’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인데, 진리는 ‘만물을 이롭게 하는 질서’(the good of all)다. 그래서 법은 정의라기보다 이로움(=이익)이다. 여기에는 의로움을 따르고 이로움을 버린다는 발상이 없다. 오히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자기 이익을 위하는 길이 곧 선(善)이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그 이익이 자리이타(自利利他)적이라야 한다. ‘자리이타’는 ‘나만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배척’(이기배타)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쁠 때, 나의 기쁨은 남들에게도 이롭다는 말이다. 그래야 ‘만물을 이롭게 하는 질서’(=진리)에 부합한다. 요컨대 ‘자리이타’ 하는 자는 결국엔 다 같이 잘 살고, ‘이기배타’ 하는 자는 결국엔 망한다. 소피의 말처럼 “너무 많은 삶을 망가뜨린” 시미가 죽고 아카쉬가 살아남은 이유일 것이다. 토끼 우화는 이런 세계관을 그렸다.
• 『바가바드기타』의 장면
토끼 우화는 세계가 우연으로 이뤄진 필연성, 또는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성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달리 말해, 세상을 다 보는 사람은 없다. 한 사건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맹인이다. 이것이 ‘맹목’ 상징의 의미일 듯하다. ‘욕망에 눈멀음’보다는 인과적 연쇄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상징한다는 말이다. 그 ‘알 수 없음’의 결과로 이뤄지는 세상은 ‘블라인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다.
토끼 우화가 만들어지는 대목, 그러니까 아카쉬가 스와미 박사의 차를 타고 가며 고민하는 대목은 『바가바드기타』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왕자 ‘아르주나’의 이야기다. 아르주나는 ‘왕자의 난’을 맞아 골육상쟁의 운명을 슬퍼하고 탄식한다. 혈육을 죽이느니 차라리 내가 죽겠다. 그러자 아르주나의 전차를 몰던 크리슈나(비슈누 신의 화신)는 그를 전쟁에 나서도록 설득한다.
아카쉬는 스와미 박사가 모는 차를 타고 가며 고민하고, 아르주나는 크리슈나가 모는 전차를 타고 가며 고뇌한다. 두 장면이 닮았다. 이들이 마침내 자기 행동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논리도 닮았다(다만 아카쉬는 박사의 논리를 넘어서지만, 아르주나는 크리슈나를 따른다). 크리슈나의 논리 또한 공리주의를 넘어서는데, 그것은 오히려 행동의 결과를 미리 생각해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대의 의무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는 그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행위의 결과를 기대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행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행위를 피해서도 안 된다.”
‘사물의 질서’(=dharma)를 바로잡는 행동에 나서되, 행위의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마라. 단지, 할 바를 다해라. 그 결과는 너의 소관이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행위의 결과를, 그 장기적 인과 연쇄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토끼 우화의 세계관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감독의 세계관
이처럼 영화는 자타카 설화(장기 적출 요소 + 평정심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기지)를 바탕으로 맹인이 살인 현장을 목격하며 사건에 휘말린다는 <피아노 조율사>의 설정을 더하고, 거기에 전통적인 신체 상징과 현재 인도의 장기 매매 범죄라는 계기를 결합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여기서 토끼 우화는 별개의 요소라기보다 영화 속 영화, 액자영화(mise-en-abîme)에 가깝다. 영화 전체의 서사 전개에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영화의 세계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한 사건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지만, 평정심의 근거다. 자타카 이야기의 원숭이나 영화 속 아카쉬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임기응변할 수 있었던 것은 ‘새옹지마’ 이야기의 노인처럼 한 사건을 놓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카쉬가 장기 매매단에 납치된 것이 오히려 위기를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처럼, 세상의 ‘미친 혼돈’(Andhadhun) 속에서 평정심을 지니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여유롭게 살아가자. 현재에 집중하자. 그것이 삶의 지혜다. 아마도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관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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