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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맥커리 특별전 감독론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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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맥커리가 만드는 기이한 리듬의 순간
- 1930년대 코미디의 비밀
김은정(부산영화평론가협회)
자리 바꾸기의 리듬
밤새 안녕하시냐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건가. 1930년대 레오 맥커리 코미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룻밤 새, 그도 아니면 찰나의 순간 운명이 바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다’ 이 정도의 말로는 부족하다. 자리 바꾸기. 그들에게는 어이없는 자리 변경이 반복된다. <레드 갭의 러글스>(1935)의 주인공 러글스는 아침에 일어난 귀족 주인에게서 지난 밤 포커 게임에 진 대가로 그를 미국인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밤새 주인이 바뀌었다. 순간 황망한 표정의 러글스를 보라. 주인의 그 말과 동시에 러글스의 자리는 번스테인 경의 하인에서 미국인 졸부 플라우드 부부의 하인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내 들이닥친 에그버트를 따라나선 러글스는 기품 있는 영국 귀족과는 다른, 미서부 출신의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에그버트의 시중을 들게 되고 여러 난처한 순간에 직면한다. 일례로 야외 카페에서 지인을 만난 에그버트가 소리치며 인사할 때 러글스의 행동을 보자. 그는 골목 저만치 떨어져 그들을 모르는 사람인 냥 외면한다. 순식간에 이동한 러글스의 모습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너무 코믹하다. 이것은 자리 변경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웃음이다.
주인이 바뀌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골마을 레드 갭에서 러글스는 에그버트의 하인이 아닌 친구로 알려지고, 은퇴한 영국 대령으로 소개되며 유명인사가 된다. 귀족의 하인-미국인의 하인-미국인의 친구-은퇴한 영국 대령-레스토랑의 요리사로 러글스의 자리는 계속 미끄러지듯 바뀐다. <밀키 웨이>(1936)도 비슷하다. 우유 배달원이었던 설리반은 여동생을 희롱하는 두 남자를 때려눕혔다가 복싱 시합에 나가게 되고 얼떨결에 챔피언이 된다. 설리반이 의도치 않게 자신의 자리(모습)를 바꿔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재미다.
자리가 바뀌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계에 놓인다. 중요하다고 여겨온 가치와 삶의 기준이 갑작스레 바뀐다. 그 변화가 불러일으키는 혼란이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에 여실히 드러날 때 맥커리의 코미디는 시작된다. 러글스와 설리반이 처한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다. 그 갑작스러운 자리 변경은 자의 보단 타인의 선택과 계획에 의한 것이기에 재미있는 것인가.
타의에 의해서만 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혼 소동>(1937)의 루시는 이혼 조정기한의 마지막 날, 남편 제리가 초대받은 예비 약혼녀의 집을 찾아가 제리의 여동생인척 연기한다. 그저 얌전한 여동생도 아니다. 그 집 사람들 앞에서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촌스러운 가수의 남부 사투리와 노래를 흉내 낸다. ‘바람’이라는 가사에 맞춰 바람에 치마를 들어 올리던 모습도 그대로 흉내 낸다. 상류층의 유부녀에서 촌티 가득한 가수로의 자발적인 자리 변경. 이 변경의 반복과 차이가 영화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잠시 후, 술 취한 루시를 집으로 데려다 주려고 운전대를 잡은 제리는 이혼 소송의 발단이 된 사건(루시와 음악선생이 자동차가 고장 나 하룻밤을 지낸)과 비슷한 상황에 당면한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제리가 운전하던 차가 고장 나자, 그는 마치 음악선생의 자리로 옮겨간 것만 같다. 자신이 비난하고 의심했던 그 자리에 놓인 것이다. 이 상황은 제리를 되찾고 싶은 루시의 계획인가? 루시의 계획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선생의 자리로 옮겨간 제리로 인해 이후 두 사람의 합방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코미디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맥커리식 자리 변경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차량소유주를 확인한다며 경찰이 루시에게 차량번호를 물을 때, 그녀는 도리어 경찰에게 당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 번호는 뭐냐고 물음으로써 은근슬쩍 경찰과 혐의자인 자신의 자리를 바꾼다. 또 음주운전을 의심하는 경찰이 똑바로 걸어보라고 할 때도 자신이 아닌 제리를 앞세워 혐의자인 자신과 제리의 자리를 바꾼다. 이 자리바꿈은 매우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아차! 조금만 방심하면 자리 바꾸기의 리듬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자리 변경이 불러오는 리듬감이 생생하다.
예상치 못한 자리 변경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는 <식스 오브 어 카인드>(1934)에서도 반복된다. 결혼 20주년 기념 여행을 떠나는 위니 부부가 경비를 아끼고자 동행하게 된 그레이시 커플을 떠올려보자. 위니의 집을 처음 방문한 그레이시는 대뜸 응접실의 가구를 옮기라고 지시한다. 손님임에도 주인의 자리(위치)에서 가구의 자리(위치) 변경을 지시하는 그레이시의 태도와 어찌할 바 몰라 하는 플로라의 표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플로라의 표정은 황망한 러글스의 그것과 닮았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등장하는 그레이시의 커다란 개는 보조석을 차지해 플로라를 뒷좌석으로 내몰고, 길을 묻기 위해 졸고 있던 행인을 깨우자 강도로 돌변하고, 스웨터를 사려고 들른 상점에서는 사장도 아닌 술 취한 존이 끝없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등 <식스 오브 어 카인드>에도 관객을 당황스럽게 웃기는 자리 변경이 계속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시기 맥커리의 코미디 중 자리 바꾸기의 최고봉은 <덕 수프>(1933)다. 어느 날 갑자기 프리도니아의 국왕이 된 파이어플라이는 엉망진창으로 국가를 경영한다. 인접국에서 보낸 스파이 치콜리니와 핑키는 땅콩장수로 위장해 파이어플라이를 감시하는데, 두 국가 간 전쟁이 발발하기 전날 그들은 기밀문서를 입수하기 위해 파이어플라이로 위장했다가 진짜 그를 맞닥뜨리자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연기한다. 치콜리니와 핑키는 스파이-땅콩장수-파이어플라이-거울에 비친 파이어플라이로 미끄러지듯 자리 바꾸기 한다. 파이어플라이도 마찬가지다(그의 이름 firefly, 정신없이 발광하는 개똥벌레라니). 이 스파이들을 법정에 세웠을 때, 그는 국왕이었다가 판사였다가 스파이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된다. 파이어플라이가 이렇게 역할을 계속 바꾸자 어수룩한 스파이들도 파이어플라이와 한 편이 되어 전쟁을 선포하고,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가, 연락병이 되고, 전우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는 국가를 찬양하는 여인을 향해 공을 던진다. 내 편과 네 편이 뒤섞이고, 땅콩장수가 국방부 장관이 되고, 인질이 구원병이 되는 시끌벅적 정신없는 자리 변경. <덕 수프>에서는 가치와 기준이 뒤섞이는 이 자리 변경이 제목처럼 쉬운 일(duck soup)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풍자와 해학은 이 끝없는 자리 변경에 기반을 둔 웃음이다.
동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맥커리가 만들어내는 이런 자리 변경이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길게, 어떤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종종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음악 같은 리듬을 동반한 변화다. 맥커리의 코미디는 자리 변경과 그 리듬으로 완성된다.
모자만 건사하면 만사 오케이
맥커리의 영화처럼 모자 건사가 중요한 영화가 있었던가. 맥커리는 인물의 지위나 신분, 역할을 바꾸지 못한다면 모자를 바꿔서라도 황당한 변화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혼 소송>에서 제리가 음악선생 아르망의 모자를 쓰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제리에게는 숨겨져야 했던 아르망의 모자는 루시의 이모, 루시, 그리고 반려견 Mr. 스미스의 충실한 놀이 끝에 결국 제리의 손에 들어온다. 당연히 자신의 모자라고 생각한 제리는 거울 앞에서 모자를 써보지만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그를 보며 루시는 뒤로 써 보라, 머리카락을 잘랐느냐, 심지어 귀를 올려보라는 둥 이상한 주문을 늘어놓는다. 하필 그 순간 들이닥친 리슨 때문에 제리는 모자를 들고 그녀의 침실에 숨는데, 그 방에서 모자의 주인 아르망과 직면한다. <덕 수프>의 치콜리니와 핑키, 그리고 레모네이드 판매장수가 벌이는 모자 쟁탈전도 만만치 않다. 치콜리니와 핑키는 시비가 붙은 레모네이드 장수의 모자를 바닥에 떨어트리기, 은근슬쩍 바꿔 쓰기, 발로 차기, 발에 걸기, 겹쳐 쓰기, 세 사람의 세 모자를 연달아 바꾸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돌려주지 않으며 그를 희롱한다. 결국 레모네이드 장수의 모자는 땅콩 기계에서 불태워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레모네이드 장수가 핑키에게 먼저 시비를 거는데, 새로 산 그의 흰 모자는 이 때도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가 땅콩 기계에서 불태워진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쓰던 제리의 행동은 자신이 루시와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의 자리를 점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그런데 그 모자가 이미 그녀의 침실을 점유한 아르망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남자라는 자리의 상실. 그러니 그는 응접실에 리슨 모자(母子)가 있는 건 안중에 없이 육탄전을 벌이는 것이다. 모자는 곧 자신의 존재다. 치콜리니와 핑키, 레모네이드 장수의 모자 쟁탈전도 마찬가지다. 모자만 바꿔 썼는데도 짧은 매 순간 그들 각자는 다른 사람인 듯 보인다. 모자를 잃으면 마치 전부를 잃은 듯, 모자로 희롱하는 것이 가장 기분 나쁜 놀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모자가 불태워질 때 보는 우리마저 놀랍고 황망하다. 타들어가는 모자를 바라보는 레모네이드 장수의 표정은 플로라, 러글스의 표정과 닮았다.
말도 안 되게 웃기는 이 모든 모자 쟁탈전에서 우리는 자리 바꾸기와 비슷한 맥커리의 리듬감을 확인한다. 제리의 손에 아르망의 모자가 들어오기까지의 움직임, 그가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는 움직임, 저글링을 하는 듯 이동하는 레모네이드 장수 모자의 위치 변경은 배경 음악이 들리지 않아도 마치 음악 같은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음악이 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저글링 하는 듯한 모자의 리듬뿐 아니다. 술 취한 존이 포켓볼을 칠 때 자꾸만 공에 빗맞는 큐와 큐를 손가락 사이에 넣으려고 반복하는 동작의 리듬(<식스 오브 어 카인드>), 총알이 쏟아지는 건물 밖으로 누가 나갈지 정하는 동작의 리듬(<덕 수프>), 개와 고양이와 말까지 동작과 멈춤을 반복하며 리듬을 만든다. 이런 움직임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으로 맥커리 영화는 음악 없이도 음악이 느껴진다. 그런데다 진짜 음악이 나오면 정신없는 이 자리 변경은 극에 달한다. 맥커리의 코미디에 사용된 음악은 그의 멜로드라마에 사용된 음악과는 완전히 다르다. 코미디의 음악은 문제를 일으키고 자리 변경을 가속화하는 음악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혼 소송>의 술 취한 루시가 자동차 라디오에 음악을 켰을 때 우리는 직감한다, 이미 사건이 벌어졌음을. 볼륨을 줄일 수 없는 음악 때문에 경찰과 사람들이 몰려들고 루시와 제리는 말 그대로 그 동네 트러블메이커가 되었다. 이혼 소송으로 사교계 추문의 주인공이 된 것과 유사하다. 우연히 클랙슨을 누르자 멈췄던 라디오의 음악은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때 다시 반복된다. 또 사건이 벌어졌고 경찰들이 출동한다. 심지어 엉덩이로 경찰 오토바이 클랙슨을 울려대는 루시의 움직임과 클랙슨 소리마저 소란스러운 음악이 된다.
루시가 미서부 부호인 리슨과 결혼하지 못할 것도 우리는 음악이 나오는 순간 예감한다. 리슨의 이상한 춤사위 때문에 루시는 레스토랑 내 모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이때 같은 음악을 한 번 더 주문하며 우아한 귀부인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한 그녀를 희롱하는 제리를 보라. 또 아파트에서 리슨이 ‘언덕위의 집’을 부를 때 어색해하는 그녀의 표정도 떠올리자. 이를테면 우아한 왈츠 같은 루시의 리듬과 미서부식 댄스의 쿵쾅거리는 리슨이 지닌 리듬의 부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루시가 연주하는 유려한 피아노 선율과 박자를 못 맞추는 음치 리슨(그의 이름은 보란듯이 listen이다)의 자아도취식 노래는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이 나왔고 그녀의 감정에 틈이 생겼다. 영화의 후반부, 자정을 한 시간여 남겨두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제리와 루시를 떠올려보자. 벽시계에서는 15분마다 음악과 함께 두 남녀의 축소판 인형이 튀어나온다. 튀어나오는 동작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음악이 더해졌다. 그러니 사건은 벌어진 것이다. 결국 벽시계 속 모자를 쓴 작은 제리는 춤을 추듯 루시의 칸으로 들어간다. 음악이 나왔고 두 남녀는 합방한다.
<밀키 웨이>의 음악은 더 직접적이다. 복싱 훈련을 하는 데 정말 어울리지 않는 왈츠가 사용된다. 설리반이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 객석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그 왈츠를 연주한다. 음악이 나오자 우리는 예감하고, 그 예감대로 설리반은 챔피언이 된다. <덕 수프>의 법정에서 전쟁을 선포하는 뮤지컬 장면도 마찬가지다. 네 남자가 춤과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자 법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같은 동작을 따라하며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그 광란은 인물들과 포탄이 끝없이 오가며 자리 바꾸기를 계속하는 전투로 이어진다.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음악이 더해지면 사건이 벌어진다.
맥커리 코미디의 비밀 하나
맥커리는 스튜디오에서 코미디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뭔가 다르고 이상하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사, 슬랩스틱 코미디의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육탄전, 뮤지컬 코미디의 춤과 노래 등 익숙한 장르 요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 다름의 비밀을 모두 찾을 순 없겠지만, 우리는 맥커리 코미디의 기이한 리듬만은 확인했다.
몸의 움직임, 사물의 움직임, 음악을 동반한 사건의 움직임, 자리를 변경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가치와 기준의 변화(움직임), 그 무수한 움직임의 반복과 차이, 이 모든 것의 부조화가 리듬을 만든다. 그리고 이 리듬이 그의 코미디를 완성한다. 예상을 빗나가는 자리 변경과 모자의 이탈과 광란으로 변하는 음악은 모두 맥커리만의 본능적인 리듬의 순간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신기하고 묘한 리듬, 이것이 맥커리의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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