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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 영화의 재조명 <해피 아워>2018-11-29
21세기 일본 영화의 재조명 리뷰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

 '재난 이후의 삶'

 

한창욱(부산영화평론가협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는 제목과 시놉시스만 놓고 본다면 30대 후반에 접어든 네 여성의 관계를 통해 삶과 행복의 의미를 말하는 잔잔한 드라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기대만큼 행복한 감정을 채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기 힘든 미스터리만 잔뜩 남긴다. 가장 미스터리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이다. <해피 아워>에는 수많은 말이 오가지만, 인물의 대화와 대화, 행동과 행동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공백이 자리하고, 이 공백은 5시간 17분의 러닝 타임 동안 수시로 나타난다. 준이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왜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야만 했는지, 사쿠라코의 아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이고, 사쿠라코와 남편은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나 있을지, 우카이는 대체 왜 낭독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후미는 왜 우카이를 따라 나와 그와 함께 밤을 보내는지, 이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을 미스터리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전략은 대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수많은 대화 장면을 보면서 그것이 쇼트-역쇼트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통 쇼트-역쇼트 구성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모습과 다른 사람을 모습을 번갈아 찍는 것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는 쇼트-역쇼트에 의해 잠시나마 인물의 시선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내면을 독해한다. 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런 방식으로 쇼트-역쇼트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감정선을 읽어내게끔 하기보다는 그저 두 방향의 에너지가 서로 오가는 상황을 보여주려는 듯이 장면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우카이의 워크샵이 끝나고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사쿠라코가 있는 쪽과 카자마가 있는 쪽을 번갈아 가며 찍는다. 이전 장면에서 우리는 카자마가 사쿠라코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것을 보았다. 이 앞선 장면은 식사 장면에서 카자마가 사쿠라코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나 그 반대쪽의 감정을 볼 것을 우리에게 기대하게 한다. 이러한 기대는 클로즈업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 카메라는 카자마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을 듣는 사쿠라코를 클로즈업함으로써 카자마의 제안을 거절했던 사쿠라코의 감정을 읽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 변화 여부에 상관없이 카메라가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관객의 해석 방향은 달라진다. 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는 좀처럼 그것을 유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인물의 감정 동요를 읽어내는 것은 인물이 행동이나 말을 통해 스스로 그 동요를 드러낼 때만 가능해진다. 앞서 제시한 장면에서 후미가 화를 내고 나가는 모습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때, 관객으로서 우리는 난감함에 봉착한다. 인물이 말하지 않으면 그 감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에서 각 인물이 겪고 있는 난감함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 가깝긴 하지만, 모든 비밀을 털어놓지는 못하는 먼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난감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말해주지 않은 것은 결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해피 아워>는 이 난감함을 관객에게도 전이시키려 한다.

 

    이런 장면의 예는 <해피 아워>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난감함을 안길뿐만 아니라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놓인 팽팽한 긴장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사쿠라코가 남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낼 때, 카메라는 그들의 시선축 한가운데에서 그들을 잡아낸다. 이런 방식으로 인물들의 대화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놓인다. 이는 영화의 중간 지점인, 2시간 27분쯤에 나타나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쿠라코와 후미, , 아카리 네 명의 여성들은 그제야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듯 말하는데, 이때 카메라는 인물들의 시선축 상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서사의 표면적 측면에서 해당 장면은 분명 네 여자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마치 인물들의 상호 연대나 교감보다는 그들 사이에 흐르는 아슬아슬한 긴장을 잡아내려는 듯 자리한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인물 사이에 놓인 경계들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전한다.

 

    나는 이 영화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방식 중 하나가 이 영화를 연대와 교감 같은 것으로 설명할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오해는 우카이의 워크샵 장면에서 비롯할 가능성이 높다. 우카이의 워크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그것을 통해 함께 일어설 수 있다는 점을 전한다. 일견 이 장면은 <해피 아워>의 전언인 듯 느껴진다. 마치 사람 자의 형상이 말해주듯, 사람이라면 지향해야 할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무척 수긍하기 쉬운 전언이기도 하다. 너무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의 관계. 그것은 사람 간의 관계, 인간(人間)의 관계를 교훈적으로 설명하는 손쉽고도 설득력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그런 지점으로 수렴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이 쌓아 올린, 쌓아 올린 것처럼 여겨지는 전언들을 다시 흩어 놓는다. 이 점은 우카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처음에 우카이는 현자와 같은 존재였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그도 사람들 간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로 자리한다.

 

    <해피아워>는 인물들을, 그리고 각 인물의 이야기를, 한 곳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산재시키려 한다. 그것은 정합적이기보다 부정합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정합적으로 완성된 행복이라기보다는 삶의 부정합성이란 상태에 가깝다. 그것은 재난과도 같은 삶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베는 큰 재난의 기억과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다. 우카이의 작업이 처음 눈에 띈 것 또한 그가 재난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들을 가지고 균형잡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재난의 기억을 담지한 장소를 통해 삶에서 일어나는 각기 다른 재난들을 말하려 시도한다. 그 재난들은 결코 쉽게 치유되지도, 쉽게 안정한 상태로 나아가지 않고 인물의 삶에 지워지지 않은 채 머무른다.

 

    거칠게 나누자면 이 영화는 후미가 일하는 아트 센터의 이벤트를 기점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카이의 워크숍 이전에는 네 여자의 우정과 삶의 기반들이 설명된다면, 워크숍을 기점으로 네 여자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한다. 그러면서 젊은 작가 노세의 낭독회를 기점으로 균열은 폭발하여 분열로 나아간다. 이러한 분열들은 이제 이 영화와 우리에게 과제를 남긴다. 무엇으로 그 분열을 다시 메울 것인가. 그리하여 어떻게행복해질 것인가. <해피 아워>는 그 무엇어떻게명시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탐색하려 한다. 준이 돌아오면 다시 함께 만나자는 아카리의 말은 분열을 메울 무엇어떻게를 찾는 것보다, 분열과 균열을 모두 메우겠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먼저 만나서 함께 시도해야 한다는 점을 전한다. <해피 아워>5시간 17분의 러닝 타임을 통해 결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분산적으로 포착하려는 형식을 취하면서 우리에게 그 분산의 시간을 인내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분산 이후의 삶, 재난 이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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