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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엘비스> -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극2023-04-15
엘비스 스틸

 

<엘비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극

 

김경욱(영화평론가)

 

백인의 컨트리와 흑인의 리듬앤블루스를 결합해 대중문화를 영원히 바꿔놓은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세계인의 추앙을 받던 그는 왜 4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까? 배즈 루어먼의 <엘비스>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엘비스의 수입 절반을 갈취하고, 엘비스를 쉴 새 없이 일하게 만든 거짓말쟁이 사기꾼 톰 파커(톰 행크스)가 바로 그 악당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나 나 없이는 엘비스도 없었다고 단호하게 반박하는 톰은 일찍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그 주인공이 될 쇼맨을 찾아다니다 엘비스(오스틴 버틀러)를 발견하게 된다.

 

엘비스 스틸이미지

 

엘비스의 매니저가 된 톰은 시종일관 엘비스를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가 아니라 많은 수익을 가져다줄 쇼비즈니스의 상품으로 취급한다. 엘비스가 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 미국 사회는 청교도의 전통 아래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대였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하는 백인으로서, 현란하고 섹시한 춤동작으로 단숨에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오르자, 보수진영에서는 음란하고 저속하다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톰은 엘비스다운 엘비스의 개성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에게 턱시도를 입히고 춤동작 없이 노래를 부르도록 종용하며 텔레비전에 출연시킨다. 엘비스는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기성세대와 보수층의 요구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개성을 더욱더 밀고 나갈 것인지 갈등한다.

엘비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매번 톰의 교활한 권모술수에 말려든다. 엘비스를 화려한 청사진으로 회유하고, 금전 문제로 협박하고, 여러 가지 속임수를 쓰면서, 톰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챙긴다. 결국 엘비스는 톰이 인터내셔널호텔 사장과 맺은 장기 계약의 덫에 걸려, 노예처럼 혹사당하며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엘비스의 비극은 오로지 톰이 너무 악당이기 때문에, 또는 톰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너무 흡혈귀 같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여기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엘비스의 욕망이 얼마간 개입된 것은 아닐까? 엘비스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사기죄로 감옥에 갔고, 어머니는 가난에 시달렸다. 어린 엘비스는 자신을 만화 속 영웅이라 믿으며, 부모가 돈 문제로 고생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엘비스가 톰의 권유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한 대가로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상심한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며 술을 계속 마시다 세상을 떠난다. 그러므로 엘비스가 매번 톰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이유는 대중의 인기를 잃고 스타덤에서 추락해 경제적으로 실패하는 데 대한 공포,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엘비스 스틸

 

 

이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는 톰은 엘비스가 손절을 시도할 때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프레슬리 엔터프라이즈의 허울뿐인 사업총괄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무기력하게 톰의 주장을 반복하고, 엘비스는 하는 수 없이 굴복한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엘비스가 공연 직전 쓰러졌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무대에 오르게 하려고 약물 사용을 허락하는 대목이다. 돈에 눈이 팔린 아버지가 톰에게 아들을 팔아넘긴 셈이다.

몇 년 동안 계속된 인터내셔널호텔 공연이 매너리즘에 빠져들자 엘비스는 해외 순회공연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톰의 방해로 포기하게 된다. 톰은 1973, 엘비스의 하와이 공연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곳곳(한국 포함)의 텔레비전에 방영(대중문화가 전 지구적인 이벤트가 되는 순간) 되었으니, 월드투어 따위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엘비스는 점점 더 공연에, 팬들의 함성에, 약에 중독되어 가고, 아내마저 떠나가자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결국 그는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 자신이 즐겨 걸치던 번쩍거리는 의상 같은 라스베이거스의 공간에서, 발 없는 새처럼 쉴새 없이 퍼덕이다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엘비스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배즈 루어먼의 현란한 연출 솜씨는 라스베이거스 이상으로 화려하게 번쩍거린다.

비록 엘비스가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상품으로 철저하게 착취당한 희생자라고 해도, 끝까지 잃지 않았던 불멸의 목소리는 그가 대체 불가능한 예술가라는 것을 증명한다. 엘비스는 말한다. “노래가 없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고, 노래가 없으면 친구도 없고, 노래가 없으면 변화도 없고, 그래서 계속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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