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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마동석의 액션영화 <범죄도시3>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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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마동석의 액션영화 <범죄도시3>
김경욱(영화평론가)
2023년 6월 15일,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자료를 보면, 한국영화 개봉작(재개봉작 제외)은 18편이다. 그런데 <범죄도시3>(5월 31일 개봉)의 스크린수는 1,353개, 매출액은 46%(외화 포함 전체 매출액)이다. 나머지 17편 가운데 상영관이 가장 많은 영화는 <그 여름>(6월 7일 개봉)으로 34개, 매출액이 가장 높은 영화는 <비의도적 연애담 스페셜>(6월 14일 개봉)로 0.2%이다. 한편 내지 몇 편의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대부분과 거의 모든 관객을 차지하는 현상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며, ‘재미’를 수량화할 수는 없지만, 질문해 본다. <범죄도시3>은 나머지 17편 가운데 어떤 영화 보다 40배 이상 재미있는 영화인 것일까?
<범죄도시3>은 액션 장면을 최대한 많이 넣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내러티브를 설계한, 컴퓨터 게임 같은 영화다. 따라서 영화는 마석도(마동석)가 출근길에 자동차 접촉 사고로 패싸움을 벌이는 양아치들을 가볍게 제압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석도가 가는 곳마다 피 튀기는 액션 장면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는 악당들 사이의 난투극이 전개된다. <범죄도시> 1편에서 3편에 이르는 동안, 마석도는 액션영화의 하드 바디에서 ‘헐크’ 같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로 변신해 더욱 강력한 캐릭터가 되었다. 따라서 자동차에 치여도, 쇠 파이프로 머리를 맞아도, 야쿠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도, 마석도는 끄덕하지 않고 악당들을 차례로 제압해 간다. 마석도가 펼치는 시원한 액션과 양념처럼 가미된 코믹한 설정과 대사는 이 영화의 흥행비결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액션 장면이 계속되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드러나는 장면은 전혀 볼 수 없고 그저 무식하게 치고받고 일본도를 마구 휘두를 뿐이다. 심의에서 15세 관람가를 받아내기 위해 신체가 잘리거나 선혈이 낭자한 장면은 피해 가고 있지만, 너무나 폭력적이다.
6월 15일의 관객들에게는 18편의 한국영화(외화까지 포함한 개봉작은 58편)가 선택지로 있었는데, 절반 정도(<플래시> <엘리멘탈>까지 포함한 3편의 매출액은 87.3%)가 <범죄도시3>를 선택했다. 관객들은 1편과 2편을 통해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대부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나머지 영화를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하려면, 최소 14,000원과 몇 시간을 날려 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선택에 관한 레나타 살레츨의 말을 인용하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견디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의 우연성을 견디는 것보다 힘들 수 있다”. 따라서 <범죄도시3>은 전편의 흥행 성공에 편승한 안일한 시리즈물이지만, 올해의 천만관객영화로 등극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마석도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폭력은 정당한 것일까? 범죄 용의자들이 체포되지 않으려고 공격하는 데 대한 방어로서의 폭력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지만, ‘진실의 방’이라고 칭하며 용의자들을 고문하는 장면은 괜찮은 것일까? 관객들은 그 인물들이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연루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수사의 단서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관객은 그들의 악행을 확실히 목도 했지만, 마석도는 그렇지 않은데도 그들을 범죄자로 확정하고 당연한 듯 주먹을 휘두른다. 만일 그들이 <살인의 추억>(2003)에서 잔혹하게 고문을 당했던 용의자들처럼,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코믹하게 처리되는 ‘진실의 방’ 장면을 웃으며 즐기는 동안, 어느새 공권력의 폭력에 둔감해지게 될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이 진압봉으로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마구 내리치는 장면을 보았다.
<베테랑>(2015)에서 서도철 형사는 극악무도한 재벌3세 조태오와 명동 한복판에서 난투극을 벌이게 될 때, CCTV와 핸드폰을 든 구경꾼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먹 쓰기를 주저한다. 조태오는 그 틈을 타서 서도철을 공격해 쓰러트리고 구경꾼들을 위협하며 도망치려고 한다. 겁에 질린 구경꾼들 사이에서 아트박스 사장이 홀연히 나타나 용감하게 조태오를 꾸짖으며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다. 마동석은 이 특별 출연을 통해 스타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한 배우이다. 그러나 형사가 된 마동석의 마석도는 기득권층의 범죄자들이 아니라 조선족 조폭 두목,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살인마 그리고 마약 관련 형사와 일본의 야쿠자들과 대결한다. 물론 그들도 반드시 일망타진해야 하는 악인들이긴 하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8편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마석도가 대결하게 될 악당의 명단에 범죄에 연루된 부패한 정치인, 검사, 재벌, 사이비 종교인과 무속인 등, 한국 사회를 망가트리고 있는 주범들이 등장하게 될까? 그럼으로써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처럼, 마석도는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고 가는 주범들을 응징하는 한국형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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