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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애도 작업’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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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애도 작업'
김경욱(영화평론가)
김희정 감독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는 김애란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이다. 중학교 교사인 도경(전석호)은 물에 빠진 자신의 반 학생 지용을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는다. 그의 아내 명지(박하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의 죽음 앞에서 깊은 슬픔에 빠진다.
‘애도’는 프로이트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슬픔을 느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멜랑콜리아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멜랑콜리아의 원인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인 애도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았다. ‘애도의 기능은 살아남은 자의 기억과 희망으로부터 죽은 자를 떼어놓는 것’이므로, 길고 고통스러운 애도 작업을 통해 상실한 대상을 잘 떠나보내게 되면, 즉, 잃은 사람과 관계된 모든 기억과 기대를 되살리면서 그 사람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면, 서서히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애도 작업을 아예 시작도 하지 못하거나 실패하게 된다면, 멜랑콜리아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명지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명지는 사촌 언니의 초대로 폴란드(원작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가게 된다. 남편과 함께 했던 공간을 떠났지만, 그러나 그녀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은 기억은 끊임없이 살아생전의 남편을 소환한다. 그렇게 그녀의 삶 속에 여전히 그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잠을 잘 때 그의 죽음을 깜박하고 옆에 있다고 여기다가 깨어나면 다시 절망에 빠진다. 처음 방문하는 낯선 공간이 궁금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법도 한데,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 머무르면서 잃어버린 남편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의욕 상실, 외부 세계의 관심 중단은 멜랑콜리아의 증상이다. 그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스마트폰의 ‘시리’뿐인데, 슬픔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큰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애도하지 못하는 그녀의 심리적 고통은 몸으로 나타나, 둥그스름한 분홍색 반점이 몸 전체로 대책 없이 퍼져나간다. 대리언 리더에 따르면, “애도하는 자는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고, 멜랑콜리아에 빠진 자는 죽은 사람과 함께 죽는다”.
그러던 어느 날, 명지는 폴란드에 유학 중인 예전의 남자 친구 현석(김남희)을 만나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성 십자가 성당을 방문해, 동생의 심장을 폴란드로 가져온 쇼팽 누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켰다 사망한 수많은 이들의 추모비 앞에서 눈물을 터트린다. 그런 다음, 현석과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무엇에서도 애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명지는 집으로 돌아오고,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원작에서 도경이 구하려 했던 지용의 누나 지은(정민주)은 편지를 통해서만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명지의 이야기와 지은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진다. 지은은 하나뿐인 가족인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전신이 마비된 상태다. 꿈에 나타난 지용이 “나 없어도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라고 한 말에, 그리고 동생 친구 해수(문우진)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지은은 서서히 살려는 의지를 갖게 되고 명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프로이트는 ‘애도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으며, 상실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애도에 저항하는 반항심이 있다’고 했다. 명지는 남편이 물로 뛰어들 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라는 원망 어린 질문을 반복하며, 누군가를 구하려고 자기 삶을 버린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운 감정이 분노와 다툴 때, 양가감정 속에서 애도 작업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편지의 한 대목,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좀 놓여요”에서, 명지는 비로소 애도의 실마리를 찾아내게 된다. 도경이 지용의 손을 잡은 마지막 행동은 ‘삶’이 ‘죽음’에게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삶’에게 뛰어든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마침내 명지는 남편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진다. 명지가 편지를 매개로 지은을 만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애도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이, 애도는 슬픔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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