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와 인문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좋은 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2023-11-27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미지


<나의 피투성이 연인>, ‘좋은 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김경욱 (영화평론가)


우리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그저 인생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일일 뿐일까? 그것은 인생에 의미가 없는 일이거나,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는 일일까? 특히 여성이 인생에서 무언가 이루려고 할 때, 아이는 결코 존재하면 안 되는 걸림돌일 뿐일까?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보면서 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 영화의 재이(한해인)는 두 번째 소설을 막 탈고한 촉망받는 작가이다. 출판사 편집자는 후속작까지 계약하자고 제의하며, 큰 기대를 내비친다. 그런데 재이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재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낙태를 결정한다. 그러나 재이의 파트너인 건우(이한주)는 비혼, 비출산을 약속했지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의사는 재이의 몸 상태로 낙태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건우는 아이를 낳자고 간절하게 설득한다.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인지, 건우의 설득 때문인지, 재이는 낙태를 감행하지 않는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미지2


출산과 육아 그리고 살림 같은 일과 병행하기 쉬운 직업은 거의 없겠지만, 특히 창작과 공부는 가장 어려운 분야일 것이다. 창작과 공부에는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벗어나 심신의 여유 속에서 집중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재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없지만, 임신하기 전까지의 그녀는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오직 재이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헌신적인 파트너로서, 돈도 열심히 벌고 살림도 열심히 하는 건우를 옆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이는 작품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좋은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글쓰기만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이에게 임신은 완벽했던 환경이 붕괴하는 위기로 다가오게 된다.

만일 이때 재이가 자신은 오로지 글을 쓰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이며, 자신의 창작 작업을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정했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낙태하고 건우와는 헤어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건우와 아기에게 벌어질 비극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재이는 나르시시스트이자 이기주의자(창작과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요구되는 속성일 수도 있다)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미지3


재이는 임신에 따른 다양한 신체 변화와 통증 등이 나타나자 글쓰기가 잘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며 작가로서 경력이 단절될까 불안에 사로잡힌다. 등단을 하지 못해 낙담하던 후배가 문학상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엄청난 시기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재이는 아이를 키우며 작가 생활을 하는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듣기도 하는데, 그 선배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자 작가의 삶과 엄마 역할을 병행할 수 없다는 생각은 더욱 강화된다. 재이의 후배가 ‘이기주의자’라고 지적했듯이, 재이는 시종일관 뱃속의 아이를 끔찍한 이물질로 취급한다. 재이는 동물에 대한 연민으로 채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아이에게는 어떤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모성애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순간, 작가로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강박증 속에서 재이는 끊임없이 술을 마시다 결국 태아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재이는 죽은 채 태어난 아기를 단 한 번도 안아주지 않으며, 아기의 유골함조차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미지4


재이가 오직 자신의 문제를 놓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건우는 재이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수입을 늘리려고 학원 분점의 원장을 해보라는 학원 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언제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온 건우는 이번에도 새로운 일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러나 집에 오면 재이가 끝없이 불평불만을 토해내고, 학원 원장은 건우를 교활하게 이용할 궁리만 한다. 계속 지쳐가던 건우는 결국 학원 원장을 해치고 감옥에 간다. 건우가 재이에게 “미안하다”고 할 때, 재이는 “미안하다”는 답변 대신, “우린 악몽을 꾼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악몽일 수 있겠지만, 건우에게 감옥은 현실이다.


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이미지5


건우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 망가졌던 가로등이 켜지자 재이는 걸음을 멈춘다. 아마도 재이가 걷는 길이 어둡지 않도록 건우가 거듭 민원을 넣었고 그래서 가로등이 고쳐졌는데, 재이는 그것을 알까? 더 나아가 재이가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건우가 가로등처럼 환하게 빛을 밝히며 옆에 있었다는 걸 그녀는 깨달았을까?

결국 아기가 죽고 건우가 감옥에 가는 희생을 치른 다음, 재이는 신작 소설 ‘Birth’를 출간하는 성공을 거둔다. 재이는 그 끔찍한 사건을 “악몽을 꾼 것뿐”이라고 했는데, 악몽을 통해 자신이 소설가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하게 된 것 같다. 아울러 여전히 나르시시스트이자 이기주의자로서, 재이는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진 건우(감독은 그가 얼마의 형을 선고받았는지 명시하지 않는다)를 악몽의 일부로 치부하며 잊어버리고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신간 출간 축하 자리를 갖자는 출판 담당자의 제의를 거절한 재이가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내내 자판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재이는 자신의 원하는 삶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뭔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과 중독 상태에 빠져버린, 마치 ‘글쓰기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다음글 <흐르다>, 아빠에게 가는 ‘험난한’ 길
이전글 <두 사람을 위한 식탁> :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