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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다섯 번째 방>, 역기능 가족의 초상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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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 역기능 가족의 초상
김경욱(영화평론가)
존 브래드쇼의 저서 『가족』에는 버지니아 새티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전체 가족의 96%가 역기능적이다.” 브래드쇼는 이 말이 “가부장적 전제군주 시대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면서, “민주주의 시대에 살면서 전제군주 시절의 규칙들을 가지고 있는 가족은 모두 역기능이 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것은 곧 작동을 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기능이 아닌 건강한 가족은 구성원들이 제 기능을 잘하고, 구성원들 간의 관계도 기능적으로 잘 굴러간다. 그렇다면 역기능 가족은 구성원들이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장애 또는 문제가 있고, 구성원들의 관계도 끊임없이 삐꺽거린다고 할 수 있다.
전찬영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2024)에 등장하는 가족은 역기능 가족의 한 모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엄마 효정은 오래된 이층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세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가다 상담사로 일하게 되면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사이 효정은 거처하는 방을 여러 번 옮겼는데, 남편과 20년 동안 한방을 쓰다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시부모가 기거하던 가장 큰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상담실이 필요해 2층으로 거처를 옮겼다.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독립적인 공간을 갖고 싶어 하지만, 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엄마의 공간에 침입하는 바람에 부부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효정이 ‘다문화 가정 부부 교실’의 강사이자, 가정 폭력을 다루는 상담사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부부는 칭찬과 격려,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라고 강의하지만, 이미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인지 정작 그녀가 남편과 뭔가를 함께 하거나 좋은 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볼 수 없다. 결국 효정은 원룸을 구해 독립함으로써, 남편을 떠나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된다. 그들의 맏딸인 전찬영 감독은 엄마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인물은 앞날의 대책이 보이지 않는 아빠 전성이다(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가족사가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영화에 대한 글은 결국 드러난 것을 중심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
전성이 태어났을 때 한국은 굳건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그런데 전성은 가부장으로서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해 결혼하고 나서 부모 집에서 살게 되고 가족을 데리고 독립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전성의 경제적 능력은 점점 더 떨어지게 된 반면, 효정의 경제적 능력은 점점 더 많아지게 된다. 전성이 애초에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랐다면, 효정이 돈을 벌고 전성이 집안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가족을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성은 가부장제가 급격하게 해체되어 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인 대구의 중년 남자에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전성은 아내와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술의 힘에 의존해 허울만 남은 가부장의 위치를 고수하려 함으로써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그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길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늙어가는 한국의 많은 중년 남성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전성이 감독인 딸에게 “아빠가 엄마보다 안 좋아도 좋은 사람 맞제?, 찬영이 니 마음에 아빠도 좋은 사람 맞제?”라고 끊임없이 집요하게 묻는 대목이다. 감독은 아빠의 애처로운 인정투쟁을 외면하며 말한다. “아빠가 매일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회피했다. 아빠를 이해하게 되면 이 모든 일들이 없던 일들이 될 것 같아 그를 용서하게 될까 두려웠다.” 만일 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효정은 상담사로서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용서는 아빠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거다. 용서하지 못하는 건 아빠와의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아빠와 분리되지 못한 채, 여전히 상처받은 과거 속에 묶여 있다는 증거이다. 성숙한 어른으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일어난 모든 부정적인 것을 용서하고 떠나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전찬영 감독의 다음 영화의 주인공은 아빠 또는 자기 자신이 되면 어떨까 싶다.
브래드쇼는 건강한 가족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다섯 번째 방>을 보면서, 브래드쇼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성숙한 민주주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자신의 자녀, 부모, 형제들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가족이 진정 민주적일 수 있어야만 우리가 진정 민주적으로 자연과 세계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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