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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 기억되는 진주(Pearl)들을 위해 - 영화 <진주의 진주>2024-08-02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기억으로 기억되는 진주(Pearl)들을 위해 – 영화 <진주의 진주>


                                                                   송아름(영화평론가)


기억은 분명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 그때의 무엇을 붙잡아주는 것은 기억 그 자체라기보다 당시에 보았던 누구 혹은 무엇, 그 순간에 흘러나오던 음악, 그것을 들을 때 느껴지던 감촉이나 공기의 냄새,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던 공간과 같은 것들이 기억을 존재케 하는 실체일 것이다. 이를 붙잡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일은 이제 기억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그래서 이 상실의 슬픔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아니, 깊고 넓어야만 한다. <진주의 진주>가 붙잡고 있는 곳, ‘삼각지 다방’이라는 공간을 지키려는 분투는 이 상실을 겪고 싶지 않은 이들의 투쟁기일 것이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2


영화 <진주의 진주>가 그려낸 장면들은 무수한 상실을 상기케 한다. 주인공 진주가 기억을 더듬어 만들려던 영화는 촬영 장소로 약속된 카페가 철거되며 갈 곳을 잃고, 대안을 찾으려 도착한 경남 진주에선 예술인들의 터전과도 같았던 다방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연극과 미술, 음악인들의 열정이 서린 삼각지 다방은 영화의 열정까진 남아내지 못할 상황 앞에서 갈등의 원인이 될 뿐이다. 물론 그 이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 공간을 이런 방식으로 유지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 조금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으로의 전환. 영화는 이를 우악스럽고 계산적인 상황으로 그려내기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충분히 설명하며 이 공간을 지키려는 이들의 분투를 역시 배치한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3


주목해야 할 것은 <진주의 진주> 속 기억들이 비단 공간의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으로도 제시된다는 점이다. <진주의 진주>에서 삼각지 다방을 놓고 싶지 않은 이들이 기대는 것은 이곳이 무조건 지켜야 할 공간이라는 당위이다. 다방을 지키는 것은 어떠한 법적 이유가, 혹은 경제적 부흥이 전제되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간을 지키려는 이들이 택한 방법도 그 공간을 지켜오던 몸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직접 플래카드를 쓰고 붙이며 담당자를 찾아가 목소리를 높이고 호소했다. 이 모든 것은 이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미 힘을 잃어버린 방식들이었는지 모른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그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낙오와 등가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4


바로 여기에서 <진주의 진주>가 중요하게 그려낸 기억의 가치가 드러난다. 이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중요한, 누적만으로도 순진하게 가치를 지녔던 그래서 분명 낡았음에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 이것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또 누군가에겐 삶이었으며, 누군가에겐 바라마지 않는 무엇을 얻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확신. <진주의 진주>는 ‘삼각지 다방’과 이를 지키려는 이들의 낡은 방법 속에 이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담아두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삼각지 다방의 간판을 다시 켜며 그리고 아직 이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다방 주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그려내며,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 기억들을 사라질지 모르는 무엇을 지키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주인공 진주의 옷깃에 묻어 있던 페인트 자국이 그곳을 떠날 때까지 남아있던 것처럼 결코 쉽게 지워낼 수 없는 것으로 말이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5


<진주의 진주>가 소재로 삼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처럼 조금은 낡아버린 기억 속에 놓여 있다. 장소 헌팅조차 쉽지 않은 옛 기억을 영화로 만들려는 신인 감독, 지금의 전부인 양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만 몇 명의 관객 앞에서 선보이게 될지 짐작도 할 수 있는 지역의 작은 극단, 관광지로도 특정 지역으로도 뇌리에 깊이 새겨지지 않은 지방의 한 소도시 등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소멸이라는 섬뜩한 명칭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허물고, 새로 지어, 그럴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는 강요가 발전이라는 이름으 로 기억을 위협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비록 한물간 논리를 펴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너무 오랫동안 쌓아오며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특별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그 자체가 가치라는 것을 영화는 투박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6


사라진 것들에 대한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주의 진주>는 처음 진주를 내려간 이의 시선을 통해 현재의 상실이 나와 우리의 것이라는 시선을 좀 더 명확히 했다. 그리고 그 상실을 밀어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지워질지도 모를 기억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하려 했다. 아마도 무엇인가를 지키는 방식은 생각보다 촌스러울 것이라고, 그만큼 아무 이유도 없이 달려들어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거라고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그래도 다행히 바라던 결말을 보여주었다. 물론 현실에선 과거의 진주(Pearl)는 더 이상 진주가 아니라며 무수한 울타리를 펼쳐댈 것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과연 우리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굳이 가치를 따져가며 남겨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꽤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 <진주의 진주> 스틸컷 이미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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